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당대회가 끝났지만, 80일 동안 여러분들을 전투로 내몬 의미는 찾아보기 어렵네요. 당 대회에서 제시한 과업이란 것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쭉 북한에서만 살아와서 다른 세상을 알 수는 없겠지만, 경제에 5개년 계획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야 할 사회주의 역사의 유물입니다. 경제가 왜 전투입니까. 고지 돌격해 점령하듯이 앞으로 돌격해서 점령하면 승리하는 일일까요?
시장경제 국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산지표 과제는 국가가 정하지 않아도 각 기업이 알아서 정합니다. 잘 팔리면 많이 만들고, 안 팔리면 적게 만들고 하면서 수요를 적정하게 기업들이 조절하며 경제가 굴러갑니다. 여러분들이 장마당 가격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가격 국가가 정해줍니까. 술이 잘 팔리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술을 만들어 팔고, 그러다 너무 많이 공급되면 술 만들던 집들이 옷을 만드는 등 장사 잘되는 것을 골라서 업종을 변경하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에 자연스럽게 장마당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경제가 굴러가면 아주 순리대로 되는 것을 왜 억지로 목표를 정합니까. 그리고 그 목표를 정하는 인간들은 과연 경제란 개념을 아는 인간들일까요. 김정은부터 시작해 북한 간부란 인간들 중에 제대로 경제를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인간들이 지도하는 북한이란 것이 미래가 뻔하죠. 김정일 때부터 경제는 망조가 들었는데, 지도자란 인간들은 온통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북에서 온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 어이없었던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평양에는 김일성 때부터 김 씨 일가를 위한 전용 땅굴들이 많습니다. 1970년대에 벌써 김정일이 땅굴로 집과 집무실을 연결해놓고 그곳으로 출퇴근했습니다. 한국에 온 북한 공병국 소좌는 1980년대에 벌써 보통강구역 연예인 아파트와 김정일 집무실이 연결돼 이곳을 통해 김정일이 여배우들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1990년대쯤이면 땅굴이 얼마나 더 발달했겠습니까. 평양 지하철역에 들어가면 벽에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돼 있듯이 김정일의 땅굴도 바로 그렇게 호화롭게 장식돼 있습니다.
김정일의 땅굴 장식을 담당한 곳은 바로 북한 최고의 예술집단이 모여 있다는 만수대창작사인데, 만수대창작사에서 1990년대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때 공병국이 김정일을 위해 또 최소 수㎞의 전용 땅굴을 팠고, 만수대창작사가 이후 땅굴에 들어가 마감장식을 했습니다. 이때엔 타일을 박지 않고 그 긴 노선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장군님이 지나가는 동안 휴식을 취하게 한다면서 수백 미터는 산수화를 그리고, 또 수백 미터는 바다를 그리고, 또 수백 미터는 러시아 봇나무 즉 자작나무 숲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며칠 동안 자작나무 숲만 지겹게 보며 가는 것에 창안해 자작나무를 쭉 그려 넣은 것이죠. 이렇게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야 ‘장군님께 드리는 충성의 선물’이라고 땅굴을 개통합니다. 그렇게 개통한 날에 김정일이 기분 좋게 차를 타고 그 터널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바다가 그려진 구간을 거의 지나갈 때쯤 차를 세우더니 차에서 내려 그림을 열심히 살펴보더라는 것입니다. 한참을 이리저리 보더니 차에 타서 다시 왔던 구간을 돌아가라 하고 처음부터 또 차에서 올려다보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이상한데, 있어야 하는데, 안 보이네” 이러며 중얼거리는거죠. 옆에 사람들 모두가 긴장했죠. 한참을 그리 헤매더니 김정일이 “야, 오늘은 못 찾겠다. 내일 다시 찾아보자” 이러고 갔습니다. 부관들이 그게 뭔지 알아야 하니 “왜 그러십니까. 장군님”라고 물어봤는데, 김정일이 “바다에 갈매기들은 날아다니는데 갈매기알이 없잖아” 이러더랍니다.
그날 즉시 해당 벽화를 그린 만수대창작사 실장인 공훈예술가의 집에 김정일 부관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실장을 만나 아까 김정일의 행동을 이야기해주면서 “장군님이 갈매기알을 찾다가 끝내 못 찾았다. 그려 넣긴 했냐”고 물었죠. 미술가가 생각해보니 알은 그린 기억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알은 그리지 못했습니다”고 하니 부관들이 그럼 당장 가서 알을 그려넣자고 요구합니다.
이때 미술가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느끼게 되는 거죠. 이거 어떻게 처신하는가에 따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관동지. 저는 못 그리겠습니다. 이제 몰래 그렸다가 나중에 알려지면 장군님을 기만한 인간이 돼서 저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고, 가족도 다 죽게 되는데, 차라리 지금 저를 처벌하십시오.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부관들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이건 절대 처벌이 없다고 약속하니 무조건 그려야 한다”고 사정하더랍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부관들을 따라 땅굴에 가서 김정일이 어딜 놓쳤을까, 어디에 그려야 티가 나지 않게 슬쩍 갈매기알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온 밤 살펴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몰래 그려놓고 왔습니다. 김정일이 그 갈매기알을 3일 뒤에 찾았는데, “그래, 없을 수가 없지. 갈매기가 있으면 알이 있어야지” 이러면서 혼자서 너무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그후 만수대창작사에 장군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렸다고 선물트럭이 내려왔답니다. 이게 무슨 괴이한 집단입니까.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지도자란 인간은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인간들이 마치 2000만 북한 인민을 노예처럼 부리면서도 실제로 엄청 걱정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경제목표 운운하는 수작은 여러분들을 잘 살게 하려 하기보단 채찍질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라는 본질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