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더욱 살벌해질 김정은의 공포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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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음력설 연휴는 잘 보내시고 계십니까. 그동안 고단했던 일상 중에 모처럼 술 한 잔 하면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음력설이 지나면 아마도 더 어려운 시절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어려울 전망인지 이번에 김정은이 신년사도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김정은은 북미 관계가 의도대로 풀리지 않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고 자인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다”고 말했습니다.

딱 제가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에 들었던 선전하고 똑같습니다. 그때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백두의 칼바람 속에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혁명 선열들의 피를 이어 받아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기어이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 뒤 25년이 지났지만, 허리띠는 풀린 적도 없고, 북한은 여전히 고난의 행군입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 씨 가문만 3대 세습으로 떵떵거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김정일이 전원회의에 한 말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김정은도 고민이 클 겁니다. 경제가 파탄나면 민심 이반은 필연적이 아닙니까. 주민을 통제하려면 외부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하거나, 내부적으로 공포통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외부 도발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행동이 예측불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인 카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총사령관을 제거했듯이 북한에 도발에 상응한 군사적 보복을 가한다면 김정은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을 향해 수십 년 동안 “미국이 무서워하는 위대한 장군”이라 세뇌시켰는데, 미국의 공격을 받고도 가만있으면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에 보복하려니 감당할 자신도 없습니다. 결국 김정은이 확실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부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불안한 민심을 강압적으로 억누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제 추측이 아니라 김정은이 실제 그렇게 마음먹은 듯합니다. 제가 북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말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열리기 전 김정은이 정경택 국가보위상을 불러 김정일의 동상을 보위성에 다시 세울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건 뭡니까. 다시 신임을 하겠으니 공을 세우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우상화 작업에 드는 동상도 국가에서 세워주지 않다보니 보위성은 지금 동상 건립 자금 모금을 열심히 벌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들도 이게 사실인지 물어보십시오.

사실 김정은 집권 이후 김정일 단독 동상을 구내에 제일 처음 세운 것이 국가보위성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2012년 10월 동상 건립 행사에 김정은도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1월 이설주 외가쪽 친척인 강기섭 민용항공총국장이 보위성에 끌려가 취조를 받던 중 사망하자 김정은이 대노했습니다. 그는 김원홍을 즉각 해임시켜 조사를 받게 하고 보위성 간부 3명을 처형했고 그것도 화가 풀리지 않아 “국가보위성은 수령님들의 동상을 모실 자격이 없다”며 동상을 즉각 해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동상 세우라는 것은 이젠 공을 세우란 뜻입니다. 보위성이 공을 세운다면 뻔하지 않겠습니까. 간첩 잡아내고, 반동 잡아내고 그런 거 하겠죠. 이미 양강도 혜산에서 올해 초부터 한국, 중국과 통화하던 여러 사람이 잡히고 이들을 통해 전화를 했던 수백 명이 체포됐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몇 명 찍어서 작품을 만들겠죠. 아마 조만간 미제 또는 한국에 의한 간첩단을 적발했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대적인 반간첩 투쟁과 내부 처형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건 곧 북한 내부에 피바람이 분다는 뜻입니다.

보위부가 조작하는 간첩 사건은 과거에 보면 참 유치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6년 7월 16일에 제가 북한 노동신문에 이름이 10번씩이나 났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북한 보위부가 단둥 국경에서 고현철이란 탈북자를 납치해 고문한 뒤 간첩이라고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를 중앙방송에도 내보내고 노동신문에도 한 개 면이나 실었습니다.

저를 언급한 내용을 보면 “주성하 놈은 ‘동아일보’ 기자의 탈을 쓰고 미국과 괴뢰정보원의 막후조종을 받으며 우리 주민들에 대한 유인납치 만행을 감행하고 있다. 또 주성하 놈은 미국과 남조선의 유인납치 단체들 사이에 자금을 중계해주고 연계를 맺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잰 숄티의 ‘디펜스포럼’은 남조선의 ‘북 인권’ 단체들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반공화국 모략단체인데 주성하는 바로 이 단체와 연결돼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거기 등장한 탈북민 이름에는 다 ‘인간쓰레기’라고 지칭하면서, 저에겐 그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제가 탈북민 출신으로 북에서도 유명한 동아일보 기자한다는 것은 알려지면 안 되니까 그런 겁니다.

그런데 제가 기자일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유인 납치단체까지 지휘하겠습니까. 수잔 숄티라는 미국 인권운동가는 만나본 적도 없는데 참 추접스러운 기자회견이 아닐 수 없고 보위성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머잖아 여러분들은 또 이런 식의 간첩단 발표를 보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이런 걸 막을 힘은 없지만, 그냥 주성하의 지시를 받는 간첩을 잡았다는 치졸한 시나리오는 없길 바랄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제발 걸려들지 마시고 몸을 잘 보존하시길 바랍니다. 설날부터 이런 걱정스러운 당부를 하게 되는 저의 마음도 안타깝습니다. 부디 올해 무사히 보내고, 내년에도 저의 신년 방송을 꼭 다시 듣게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