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이 필요한 김정은의 절박한 처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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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설명절은 잘 보내고 계십니까. 음력설은 한 해 중에 쉬는 날도 제일 길고, 또 이런 저런 행사로 부대끼지 않아 그마나 제일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서울은 평창동계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설명절을 보냅니다. 올림픽이 국제대회라 음력설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평일처럼 경기가 열립니다.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여자 아이스호케이는 예선을 탈락했습니다. 상대인 스위스,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이런 나라들이 워낙 잘해서 상대가 안됩니다. 경기를 보니 워낙 수준차이가 심해서 축구로 치면 북한과 브라질이 붙는 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경기장에 등장한 북한 여성 응원단 230명은 정말 열심히 응원합니다. 이겨라, 이겨라 하면서 구호도 열심히 외치고, 집단체조로 단련된 평양 여성들답게 동작도 역시 로보트처럼 딱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걸 보니까 지금은 로보트가 스스로 사고도 하면서 사람을 닮아가고 있는 세상인데, 저기 북한은 세계의 흐름과 거꾸로 사람을 로보트로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원을 보는 남쪽 사람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신기해서 쳐다봤지만, 지금은 경기장에 어울리지 않게 저게 뭐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예전과 달리 북한에서 내려온 여성의 미모가 화제가 되는 일도 없고요. 그걸 보니 이젠 남쪽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차갑게 식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김정은이 핵무기를 만들어 한국을 협박해왔으니 동족이란 생각보단 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김정은은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달라붙었습니다.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을 내려 보냈고, 심지어 자기 동생인 김여정까지 특사로 파견했습니다. 이제 대북제재가 점점 북한의 목을 조여 오고 돈도 떨어지고 하니 한국을 구워삶아서 자기 편으로 만든 다음에 미국과의 회담에서 중재를 서게 만들고 싶나 봅니다.

김영남과 김여정은 올림픽 개막행사에 참가해 한국의 태극기가 게양되고, 국가인 애국가가 연주될 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북한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과 백두혈통이라는 김여정이 태극기에 기립해 예의를 지켜주는 것은 보기 좋았습니다. 일반 주민들이야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국의 애국가는 어떤 노래인지 알 수도 없고, 몰래 보거나 듣기만 해도 잡혀가는 실정입니다. 김여정까지 태극기 앞에 일어섰는데, 앞으론 다른 사람들도 태극기를 구경했다고 잡아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번에 북한 태권도단의 시범공연을 현장 무대 가까운 자리에서 봤습니다. 북한 기자도 제 가까운 곳에 앉아있었습니다. 안쓰럽게 한국에선 1980~1990년대에나 썼던 낡은 사진기로 열심히 관객들을 찍더군요. 그런데 제가 좀 두드러지는 자리에 서 있었는데, 배가 좀 나온 풍채 좋은 사람이 열심히 박수를 친다고 생각됐는지 자꾸 저를 향해 셔터를 누르더군요.

그래서 노동신문에 '우리의 태권도단 공연을 보며 열광하는 남조선 인민'이라며 제가 박수치는 사진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 신분을 알고 나면 그 사진사가 "동무, 하필 골라골라 탈북한 인간을 찍어왔나" 이러며 욕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 예술단은 공연 두 번하고 돌아갔는데, 그걸 보고 싶었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못 봤습니다. 물론 TV로 방영하는 것은 봤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이번 예술단 공연은 남쪽의 우려와 달리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노래가 없고, 한국의 가요들도 많이 포함됐습니다. 노동신문을 보니 김정은이 직접 여러 차례 현장에 나와 한국에 파견할 북한 예술단의 곡목 선정과 내용을 챙겼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신경을 써서 남쪽의 관심을 끌겠다고 노력한 것이겠죠.

김정은이 갑자기 돌변해서 남북관계 개선하겠다고 그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에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을 방문해달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북한이 먼저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대통령도 북에 갔고, 노무현 대통령도 갔는데, 매번 평양에 불러들이는 것이 사실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서울에 올 배짱이 없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이쪽은 그 정도 감수할 자세는 돼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오라고 한 것을 보니 뭔가 선물을 내놓을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그 선물이 뭘까요. 핵과 미사일을 양보하지 않고선 지금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도 진척될 수가 없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새해 신년 연설을 한 자리에 북한에서 장애인 꽃제비로 살았던 탈북자를 초청해 그가 살아온 삶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정권도 북한의 잔인한 독재보다 더 완전하고 잔인하게 자국 시민을 탄압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전쟁을 위한 대의명분을 쌓는 것은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를 향해 "독가스를 살포해 자국 임산부도 죽이는 악의 국가"라고 신년 연설을 한 뒤 진짜로 이듬해 이라크를 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습니다.

지금 평양에 미국이 전쟁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데, 북한 사람들도 외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는 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최악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국을 동아줄처럼 생각하고 붙잡자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매달린다고 될 리는 만무합니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기한다는 결심이 없는 한 미국은 끝까지 북한을 압박할 것이고, 북한 인민의 삶은 앞으로 계속 힘들어질 것입니다. 시간은 북한의 편이 아니라는 점, 김정은이 잘 깨닫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