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총선과 김정은의 심정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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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 전파라는 위기 속에 이번 주 무사히 국회의원 선거를 마쳤습니다. 의석 300석 중에 민주당이 180석 이상 차지하고, 미래통합당은 110석쯤 차지한, 이를테면 민주당의 압승이었습니다. 이런 결과에 김정은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어느 당이 압승하던 남북관계는 결국 북미관계에 종속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 한국이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올해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또 지금 미국이 코로나 사태로 정신이 없어 북한에 신경 쓸 여유도 없습니다. 결국 올해까지 북한은 계속 제재 속에서 그냥 살아야 합니다. 트럼프가 재선이 돼도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로 보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고, 트럼프가 떨어져도 새 대통령이 트럼프만큼 북한에 관심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북한은 제재 국면을 빠져 나올 묘수가 별로 없고, 한국 국회의원 선거가 어떻게 되던 김정은에겐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탈북자가 2명이나 당선됐습니다.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대사관 공사와 꽃제비 출신의 지성호란 청년이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물론 이들은 힘이 빠진 미래통합당 의원이라 남북관계에 큰 역할을 하기엔 제한이 많지만, 어쨌든 목숨 걸고 독재국가를 탈출한 용기가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김정은이 태양절에 참배하려 나타나지 않았던데, 권력을 잡은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건강에 뭔 일이 생겼는지 아님 기분이 울적한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요즘 기분 좋을 일이야 전혀 없죠. 게다가 지금 김정은은 실질적 권력자인 김평해 노동당 부위원장 겸 간부부장을 숙청하고 그의 라인을 제거하느라 정신없을 듯합니다.

북한은 여러분이 잘 아시겠지만, 김정은 밑에 이설주, 김여정, 현송월 정도만 목숨이 안전한 왕족에 들고 나머지 간부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꼭두각시입니다. 그런 꼭두각시에도 서열은 있는데 실질적 권력 서열 1위는 최룡해도, 박봉주도 아닌 김평해였습니다.

북에선 인사권을 쥔 사람이 권력을 쥐었다고 할 수 있는데, 김평해는 노동당 내각 보위성, 보안성 중앙재판소 검찰소 무력성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책임일군, 즉 중앙당 정치국에서 비준하는 간부 사업을 하는 책임자였죠. 가장 높은 등급의 간부 임명을 맡고 김평해 밑의 부부장, 과장들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중앙당 비서국 비준대상 간부 임명을 담당했습니다.

김평해는 모든 고위급 간부들의 해임, 임명, 조동 등을 김정은에게 건의하고 또 지시를 받으며, 당정군의 모든 고위간부들의 재임기간, 미배치 간부 등을 꿰고 있다가 김정은의 히스테리적인 인사조치에 맞게 적합한 인물을 선발하여 건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자랑했습니다.

중앙당에서 오래 일한 사람을 지방에 파견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순환 경력을 갖게 한다거나 보안, 보위, 군의 당 사업 경력이 없는 간부들이 해당 경력을 갖추게 할 시점을 정하는 등 ‘경력과정안’도 그가 정해왔습니다.

이런 인간계 권력 1위인 김평해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격 해임됐고 올해 초부터 ‘김평해 일당’ 숙청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에 이어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대숙청이 시작된 것입니다.

올해 2월 말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이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농업당당 부위원장이 해임됐는데, 이들은 모두 김평해가 키운 부하들입니다. 김평해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평안북도 도당 조직비서, 책임비서를 지냈는데, 도당 책임비서 중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평안북도입니다. 신의주에 북한의 각 중앙기관 산하의 무역회사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명절 때마다 최소 수십 만 달러를 뇌물로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죠.

특히 김평해가 평안북도를 쥐고 있던 시기엔 파철, 구리, 목재 등이 중국에 대거 팔려 나갈 때로, 북한 무역일꾼들은 1995년~2005년 사이를 외화벌이 황금기로 평가합니다. 이런 황금기에 황금의 자리에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지만 김평해는 20년을 장기 집권했으니 처세술이 비상하죠.

당연히 재산도 많이 축적했을 것인데, 김정일에게서 충신 중의 충신이란 조용한 감사 인사까지 받은 것을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많은 액수를 상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책임비서로 있을 때 둘째 아들은 신의주 시당 간부부장을 지냈는데, 사생활이 부화방탕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았는데도 부친이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워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도 결국 숙청이란 뻔한 말로를 피해갈 수 없었고, 2월에는 그가 평안북도를 연고로 키웠던 김능오 평양시당 위원장, 이학송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 등 심복들이 모두 출당·철직됐습니다. 이학송은 김평해가 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시기 신의주 시당책임비서를 지낸 인물인데, 평북 도당 책임비서 자리가 황금계란이라면 신의주 시당 책임비서는 황금계란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김평해 일당’으로 몰려 함께 숙청된 북한 고위간부는 올해 1분기에만 50여 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김정일 시대 말기 간부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북한 권력의 가장 큰 세력을 숙청하는 와중에 김정은의 심기가 어디 편하겠습니까. 강력한 대북제재로 무역이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게다가 코로나로 스스로 문까지 닫아 매고, 이렇게 빗장이 잠긴 집안에서 열심히 숙청이나 하고 있는데 올해 내내 그러고 살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거지왕 김춘삼’이란 책을 봤는데, 거지 중에서 아무리 왕을 해봐야 어차피 그냥 거지일 뿐이더군요. 김정은의 지금 신세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