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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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2월 말에 평양에서 또다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양 예술인들을 모아놓고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짓이 김정은의 지시로 벌어졌는데,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은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라고 합니다.

예술인들을 갑자기 모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북한에선 이렇게 예술인들을 모이게 하면 좋은 일은 거의 없고 꼭 끔찍한 광경만 보게 되죠. 그날도 예술인들은 벌벌 떨며 오늘도 누가 죽는 건가 하고 생각하며 갔더니 아닐세라 한 남자가 묶여 있는데 그가 바로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였다고 합니다.

이름을 제가 조현우라고 들은 것 같은데, 북한 소식통과의 통화 음질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류현호라는 지휘자는 있더군요. 조현우가 따로 있는지, 아니면 류현호를 제가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휘자가 처형된 것은 확실합니다. 지휘자면 250명 규모의 합창단에서 음악 파트를 총괄하는 간부죠. 수석 지휘자이자 단장인 장룡식이 중장인 것으로 미뤄볼 때 지휘자는 소장 아니면 대좌 계급입니다.

그가 죽음을 당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 김정은이 이설주와 함께 만수대예술극장에 나타났습니다. 오전에 이설주와 함께 금수산 참배를 마치고 저녁에 공연을 본 것입니다. 이설주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약 13개월 만인데, 지난해 1월 25일 김경희가 나타났던 설 명절 기념공연 관람 이후 처음입니다. 모든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공연을 관람하는 가운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훈국가합창단과 주요 예술단체의 예술인들이 출연해 김정일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이날 공연 사진을 보면 김정은과 이설주가 아주 만족해서 웃고 있는 사진이 나옵니다. 이날 공연 때 그림자 요술이라는 것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북한 티비에서 이 공연 영상을 방영했기 때문에 저도 볼 수 있었는데, 남자 마술사가 나와서 그림자가 비낀 천 뒤에서 여성을 나타나게 했다 없어지게 했다 하는 요술이더군요. 이런 식의 요술은 이미 다른 나라에는 많은데, 북한도 이번에 흉내 내서 하나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고 김정은이 아주 잘했다고 치하를 했다고 합니다.

북한에선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가 끝나면 꼭 총화사업이라는 것을 하죠. 김정은의 반응을 소개하고, 뭐가 김정은에게 만족을 주었고, 뭐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는지 총화를 한 뒤 포상과 처벌을 하는 의례 행사입니다. 보통 이런 것은 강연회를 겸한 학습일에 하는데, 2월 16일이 화요일이니 학습일은 토요일인 20일이었을 겁니다.

이날 공연에 참가한 각 예술단체들이 강연회 겸 말씀 전달식이란 것을 가졌는데, 이때 김정은이 그림자요술을 잘했다는 치하를 했다는 소위 말씀이 전달됐습니다.

문제는 학습이 끝난 뒤 공훈국가합창단 지휘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별 걸 다 치하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보건대 그림자요술은 아주 엉성했나 봅니다. 그냥 웃으면서 “그림자 마술, 그게 뭐 대단하다고 그따위 것을 다 치하하냐”하고 소곤거렸겠죠. 그런데 이걸 어떤 놈이 신고한 것입니다. 지휘자는 바로 그날 저녁에 체포됐습니다. 그리고 체포된 지 이틀 뒤에 공개 총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자세히 말하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인데, 그 자리에 앉아서 지켜봐야 하는 예술인들은 어떻겠습니까. 지휘자는 자동보총수 3명이 나와 10미터 정도 거리에서 한 탄창을 다 쐈다고 합니다. 자동보총 한 탄창에 30발이 들어가니 3명이서 90발을 한 사람에게 쐈다는 말이죠. 90발을 맞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형체가 없어지고 너덜너덜해집니다. 시신을 사람이 들 수가 없으니 삽을 들고 나와 퍼서 마대에 싣고 차로 싣고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끔찍하시죠. 저도 이런 끔찍한 이야기하기가 싫습니다만, 북한에서 살면 공개 총살을 안 보고 살기 어려울 것이니 그 광경이 어떨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2013년 은하수관현악단 숙청 때는 남녀 연예인 무려 10여명을 앞에 내다 세우고 더 많이 쐈다고 합니다. 임신한 여성 연예인도 포함돼 있었는데, 지켜본 연예인들을 앞줄부터 일어나 세워서 그 걸레처럼 된 시신들 주변을 돌게 했다고 합니다.

그때 기절하는 사람, 오줌 지리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런 것을 한번 보면 평생 가는 정신적 충격이 머리에 자리 잡습니다. 북한의 예술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것을 한번만 봅니까. 계속 보는 것이죠. 그런 끔찍한 장면을 보여줘서 너희들도 까딱하면 이렇게 죽는다는 것을 뇌리에 새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북한에선 이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마의 행동이 수시로 벌어지고, 그런 행위를 통해 공포감을 주어 체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공훈합창단은 김정일이 ‘선군혁명의 나팔수’라고 지칭하면서 1995년 12월부터 2011년 사망 전까지 63회나 공연을 공식 참관한 악단입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의 기둥으로 인민군대를 내세운 것처럼, 음악정치에는 공훈합창단이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은도 공훈국가합창단을 내세웠죠. 2017년 2월 22일 창단 70주년을 맞아 로동신문에는 김정은이 했다는 말, “공훈합창단 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핏방울 같고 살점 같고 정말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 소개됐습니다.

핏방울, 살점 같아서 그렇게 핏방울, 살점 다 튀게 잔인하게 죽였나 봅니다. 그런데 이번 처형은 어쩌면 시작일지 모릅니다. 점점 경제난에 빠져드는 김정은이 사회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체포하고 총소리를 내는 것 밖에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들이 생겨날지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