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상영금지 영화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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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북한을 다루는 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북에서 정보는 물론, 자료도 주기적으로 받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받는 것은 아니고 비밀 내부 정보원들을 통해 받는 것인데, 최근 여러분들이 받았던 강연들의 자료들도 거의 다 제 손에 들어옵니다. 가령 3월에 진행됐던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소탕하라는 강연 자료도 있고, 코로나 방역을 철저히 하라는 자료도 있고, 자수하라는 자료도 다 입수했습니다.

그런데 입수된 자료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109상무’가 작성한 회수 삭제해야 할 영화나 음악 등의 목록으로 무려 19페이지나 되더군요. 북한 내부에서 영화나 음악 유통에 어떤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지 이것만 봐도 딱 알 수 있는데, 그걸 보고 나서 “이걸 다 없애면 도대체 북한 사람들은 뭘 볼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일의 10월 9일 지시에 따라 2004년 만든 109상무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집집마다 불의에 검열을 해서 보지 말라는 영화나 음악을 듣는지 찾아냅니다. 그런데 아무 거나 다 단속할 수는 없으니 어떤 영화나 드라마, 음악이 안 되는지 자세히 적시한 통제 목록이 있더군요.

제가 입수한 통제 기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성택 역적의 여독청산과 관련하여 회수해야 할 전자다매체 목록이었습니다. ‘미래를 사랑하라’, ‘소원’, 성강의 파도 1,2부‘는 북한이 자랑하던 영화인데 상영 못하게 됐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냐면,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죽었다는 말이겠죠. 목록만 봐도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죽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상영 금지 영화 목록 중에 몇 개만 제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의 경우 여주인공 김혜경이란 여성이 장성택의 정부였다는 소문이 퍼졌죠. 애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40대 초반에 처형됐습니다. 저도 김혜경이 한창 예쁠 때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를 북에서 봤는데, 미인박명이라고 참 아까운 배우가 죽었습니다.

6부작 ‘대흥단책임비서’도 김정일이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칭찬까지 받았는데 남자 주인공 최웅철이 장성택의 조카사위라서 처형됐고, 영화도 매장됐습니다. 최웅철이 출연한 영화가 많은데 다 사라졌죠. 최웅철은 장성택 맏형인 장성우의 딸이 이 배우에게 반해서 최웅철을 애인하고 헤어지게 한 뒤 자기가 차지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 씨 집안의 딸이 찍었는데 안가고 견디겠습니까.

물론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되는 배우들도 권력자와 그런 사이가 되면 혜택이 많으니 자기 의지도 작용하긴 했겠죠. 북한이 불후의 명작이라고 선전하던 ‘민족과 운명’, ‘곡절많은 운명’ 등 김정일의 입김이 엄청 들어간 영화도 줄줄이 있습니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노래 목록도 잔뜩 나오는데 ‘꽃파는 처녀’는 왜 부르지 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의 경우 화면반주음악 60곡, 62곡 등이 압수 목록에 올라 있는데, 이건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 배우들이 죽었다는 의미겠죠.

장성택 이름을 찍은 목록 말고도 앞에 또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춰지는 영화, TV극 목록이 또 나옵니다. 가령 ‘먼 훗날의 나의 모습’,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 ‘사랑의 거리’ 이런 영화는 김혜경이 여주인공이라 그렇다 쳐도, ‘한 여학생의 일기’ 같은 것은 김정일이 극찬하면서 전 국민이 다 보게 하라는 특별 지시까지 내린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목록에 오른 이유는 주인공 박미향이 숙청됐기 때문이죠. 박미향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는 북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제가 다음 시간에 따로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화면반주음악, TV극, 신년음악회 공연, 만화 등 분량이 엄청 납니다. 차단 목록을 제가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너무 많아서 저는 북한 주민들이 이 방대한 차단 목록 다 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것은 걸리고, 어느 것은 괜찮은지 한 달 외워도 다 알기 어렵겠습니다.

이걸 다 빼앗아 없애면 북에서 볼 영화나 드라마는 있을까요. 북한은 요새 영화, 드라마 거의 만들지 못하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쯤엔 1년에 10편 정도는 겨우 만들었는데 요샌 만들지도 못합니다. 새로 만들지도 못해, 과거 잘 만들었다고 자랑했던 것은 다 없애고 있습니다. 외국 영화도 보지 말래, 자기들이 만든 영화도 보면 잡아간대, 이거 무슨 재미로 살까요.

목록을 보면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대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에서 연예인 제일 많이 건드린 자가 누굽니까. 김정일 아닙니까. 중앙당 청사 근처에 예술인 아파트 따로 지어놓고 집무실에서 지하로 연결해 심심하면 찾아가던 자가 김정일입니다.

이 배우, 저 배우 다 건드리고 새 배우가 나오면 기존에 건드렸던 여성 연예인을 또 심복인 간부에게 하사하듯 넘겨주고, 그 간부도 고위 권력자이니 적당히 건드리고 또 자기 아래 심복에게 넘겨주고, 이런 것이 북한입니다. 이에 대해선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배우가 김정일이 오라는 데 어떻게 안 갑니까.

김정일이 그러니 장성택이나 최룡해 같은 심복들도 맨날 따라하고 그러죠. 북한 여성 연예인 중에 권력자의 노리개가 아닌 연예인이 있을까요. 단언컨대 없습니다. 권력형 성범죄는 북한이 아마 세계 1위일 겁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자기가 그러니까 간부들도 관대하게 봐주어서 이걸로 처벌도 되지 않습니다. 입을 열면 죽으니까 고발도 없고, 언론도 없으니 기사화할 곳도 없습니다.

이게 북한의 핵심 속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썩어빠진 자들이 권력을 쥐고, 인민을 썩었다고 괴롭히고 숙청하는 이상한 북한이라는 괴물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