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박미향 죽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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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얼마 전에 박태성 최고인민회의 의장 겸 노동당 선전비서가 처형됐다는 첩보를 북에서 받았습니다. 진위여부를 계속 주시해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박태성은 2월16일 이후 사라졌고, 이후 북한에서 중요한 대회들이 많이 열렸는데 반드시 참석해야 할 박태성은 계속 불참했습니다. 그러니 숙청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 말고도 북한에서 계속 전해오는 정보들은 어제는 누가 죽고, 오늘은 누가 죽었다 이런 것들밖에 없습니다.

2주 전에는 국가공훈합창단 지휘자가 공개 처형됐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북한에서 공식 서열로는 김정은 빼고 5번째, 노동당 서열로는 3위인 박태성이 처형됐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하루라도 사람 죽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것일까요.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할까요. 워낙 처형이 일상화되니 이제는 누가 죽었다고 해도 놀랍지도 않습니다. 공개적으로 처형된 사람보다 또 비밀리에 죽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경우는 진실이 알려지는데 꽤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고위 간부는 김 씨 가문에 충성을 바치다가 개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던 예술인이 죽으면 저는 참 분노하게 됩니다.

2013년에 은하수관현악단 처형할 때는 북한 최고의 바이올린 실력자인 문경진, 정선영, 색소폰 연주자 김형일 등 쟁쟁한 해외 유학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해에 또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최웅철도 죽고, 한 여학생의 일기의 주인공 박미향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박미향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박미향이 왜 죽고, 어떻게 죽었는지 그 내막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북에서 입수한 비공개 문건에 박미향 실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가 실려 있었습니다. ‘109상무’가 내부 자료로 작성한 ‘콤퓨터에 입력시키지 말아야 할 전자화일 목록’을 보면, 금지된 북한 영화나 음악 목록이 19페이지나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박미향의 대표작인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는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쳐지는 영화, TV극’이라는 10번째 단속항목에 올라있는데, 박미향은 왜 ‘역적들과 그 관련자’에 포함됐을까요.

2007년 개봉된 한 여학생의 일기는 박미향을 띄워준 영화입니다. 북한은 김정일이 직접 영화를 다듬어 명작으로 탄생시켰다고 선전했고, 김정일이 실제로 영화를 극찬하며 ‘모두가 보게 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전체 주민이 의무 관람도 했습니다.

북한에선 박미향이 한 여학생의 일기 외에 출연작이 없어 유명한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데, 박미향은 해외에선 최웅철보다 더 유명해졌던 배우입니다.

한 여학생의 일기는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국제영화제를 포함해 4~5개의 세계 주요 영화제에 출품돼 상영됐습니다. 서방에서 일반 상영된 첫 북한 영화였고, 박미향도 함께 서방에 널리 알려졌는데, 불과 6년 뒤에 그는 사라졌습니다.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제가 박미향의 숙청 비화를 들었는데, 그의 부친은 박광철 외무성 간부처장이었습니다. 외무성 간부처장이면 얼마나 힘이 있을지 여러분들도 아시겠죠. 당연히 달러가 많았을 것이고, 힘과 돈으로 밀어줘서 박미향이 영화 주인공이 됐죠.

박미향은 얼마 뒤 평양날파람 주인공인 이룡훈과 애인관계가 됐다고 합니다. 이룡훈은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는 돈이 많아 배우가 됐습니다. 북한 영화계는 촬영비나 소품비가 부족해 부자집 자식들이 돈을 대고 영화 주연을 꿰차는데, 일본 귀국자 출신인 이룡훈은 부자집 자식들을 거느리고 고려호텔 등 고급 호텔과 식당을 주름잡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연애도 잠시, 이룡훈은 애인을 한 순간에 빼앗겼습니다. 박미향을 뺏어간 남자는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오른팔인 이룡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노동당 행정부는 돈과 권력을 다 움켜쥔 무소불위의 파워를 갖고 있었으니, 이룡하의 아들이 낙점했다면 돈만 많은 이룡훈도 별 수 없죠.

박미향은 이룡하의 며느리가 됐는데, 얼마 안돼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됐습니다. 12월 12일 장성택 판결에 앞서 11월 말에 그의 심복인 이룡하와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 장성택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 장성택 조카사위인 최웅철은 먼저 비밀 처형됐습니다.

이룡하의 며느리 박미향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됐습니다. 보통 남자가 관리소에 끌려가면 시집 온 여자들은 이혼시켜 살려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리룡하는 워낙 거물급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엮였는지 박미향까지 남편이랑 끌려가게 됐습니다.

관리소에 끌려가면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짐승 취급을 받게 되는데,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 관리소 간부들의 성노예가 된다는 것은 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양 간부들 속에선 박미향이 관리소로 끌려가다 차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어차피 자살을 하나 살아서 다시 나오지 못하는 관리소에 끌려가나 별 차이는 없는 겁니다.

박미향은 1990년대 최고 배우였던 최웅철과 똑같은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최웅철은 장성택 맏형 장성우의 딸이 그와 살겠다고 낙점하는 바람에 애인과 결별하고 장성택 가문의 맏사위가 됐습니다.

최웅철과 박미향의 비극적 운명 이후 요즘 북한 예술인들은 고위 간부 집안과 결혼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합니다. 직위가 높을수록 숙청될 위험이 비례해 커지기 때문이죠. 그렇게라도 결혼에 의한 위험부담은 조금 덜어낼 순 있겠지만, 사실 북한에서 연예인 자체가 안전한 직업은 아닙니다.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쥘수록 목을 치는 망나니 김정은의 칼날과 가까워지는 곳이 북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은 여배우 박미향 죽음의 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