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수가 앞으로 솔직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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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제가 좋아하던 영국 프로축구 경기들, 미국 메이저 리그 야구 경기들 모두 중단이 됐습니다. 전염이 될까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인데, 저로서는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한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거의 사라져서 열흘 전쯤 야구경기가 다시 시작됐지만, 경기장에서 볼 수는 없고 텔레비를 통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올해 7월에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것도 1년 연기됐습니다. 내년에 올림픽이 열릴지는 그때까지 코로나가 잡힐지 봐야 합니다.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열심히 훈련했던 선수들은 정말 허탈할 겁니다. 북한에서도 올림픽 노리고 준비하던 선수들이 있을 것인데, 연기가 되니 안타깝겠죠. 선수 나이 한 살이 얼마나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내년에도 똑같은 경기력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긴 북한이 올림픽에 나와 금메달 딴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런데 금메달을 따면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북한 선수들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외신 기자들이 우승 선수를 인터뷰하면 항상 판에 박힌 대답이 나오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어 세계 언론에서 어이가 없어 재미가 있다고 보도하면 그걸 본 세계 사람들이 웃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승했습니까” 하면 “김정은 장군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니까” 어쩌고저쩌고 하고, 우승 소감 물으면 “장군님께 기쁨을 드려 너무 기쁩니다” 어쩌고저쩌고 하죠. 저도 딱 떠오르는 게, 2014년 아시안게임 때 역기 금메달을 딴 엄윤철 선수가 “어떻게 우승했습니까” 하고 묻자 “김정은 장군님께서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없지만, 달걀에 사상을 넣으면 어떤 바위도 깰 수 있다고 가르쳤고, 그런 가르치심이 힘의 비결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말이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황당한 말도 허용이 되는 북한 같은 곳에선 통할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죠. 계란에 사상을 넣던, 쇠덩이를 넣던 계란은 계란입니다. 그걸로 어떻게 바위를 깹니까. 북한 선수들의 이런 판에 박힌 대답은 세계의 비웃음이 되는데, 김정은이가 드디어 부끄러운 줄 좀 알았나 봅니다.

그래서 작년에 체육계에 이런 지시가 내려왔답니다. “앞으로 경기에서 우승해도 나와 당의 덕분이란 판에 박힌 말을 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말하라” 하고 말입니다. 뭐 이런 거까지 친히 지시를 내려주시느라 김정은이 참 바쁘겠습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지면 혁명화를 내보내지 말고, 책벌도 주지 말라고 했답니다. 이건 참 다행이네요. 또한 체육부분에서 “사상전, 속도전, 투지전을 벌여 경기마다 백전백승하자”는 구호판을 없애라 했답니다. 드디어 주제를 알았나 봅니다. 백전백승이 가당키나 합니까.

그런데 북한 선수들이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다 말 한마디에 팔자가 확 바뀐 전례가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 체육선수 중에 말을 제일 잘해 팔자 바꾼 대표적 선수가 1999년 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입니다. 그는 우승소감을 묻자 “결승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다 오글거립니다.

그런데 이 말이 김정일을 완전 감동시켰나 봅니다. 정성옥에게 북한 최고 훈장인 ‘공화국영웅’ 칭호와 벤츠 S500, 평양의 고급주택을 하사했고 우승 상금 6만 달러도 모두 갖게 했습니다. 원래 북한에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에겐 공화국영웅보다 낮은 노력영웅 칭호와 우승 상금 일부만 주었습니다. 그래서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5개나 딴 유도 스타 계순희도 노력영웅에 불과한데 정성옥은 한꺼번에 대스타가 됐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정성옥은 선군 시대의 영웅으로 정신적 풍모의 귀감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성옥도 몇 년 뒤 조선신보에 실수였는지 아무튼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정성옥 이후 국제경기에 나온 북한 선수들은 “장군님을 생각하며 힘을 짜냈다”는 상투적 대답을 내놓는데, 같은 말에 특허료가 두 번 지불될 리 만무하죠. 정성옥 이상의 혜택은 가지 않았습니다.

북에서 말을 잘해 자손대대로 득을 보는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면 태성할머니가 있죠. “수상님, 얼굴이 많이 축간 것 같은데 너무 근심 마십시오. 종파놈들이 인민생활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도 다 잘살게 되었으니 일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기지 종파놈들이 이기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합니다.”

당시 소련파와 연안파의 도전으로 큰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김일성이 훗날 “그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회고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도 있습니다. 그 말 덕분에 태성리 인근 협동농장 고위 간부는 그 할머니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받아 맡고 있고, 태성리는 물론 인근 농가들도 2층짜리 문화주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신세를 한탄할 때 “우리 집안에는 왜 말 잘하는 사람도 없냐”고 푸념합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집안에 말 잘한 사람보단 말 잘못한 사람이 없는 걸 큰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릅니다. 말로 팔자 고친 사람보다 말 한마디 실수해서 반동으로 몰려 목숨 잃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탈출해 마음껏 말할 수 있는 남쪽에 오니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여긴 어떤 말을 해도 죽이거나 수용소로 끌고 가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앞으로 자기 덕분이라 하지 말라고 해서, 북한 선수들이 솔직히 속내를 말할지 지켜보고 싶고, 경기에서 지면 혁명화도 책벌도 주지 말라고 했는데, 한국 선수에게 져도 그럴지 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언제 볼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