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떠올린 슈타지와 보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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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중하순에 저는 열흘 동안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동서독 지역을 다니며 취재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해 배우지 않아 전혀 모르고 있을 겁니다. 독일 통일은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인데, 시대와 실수가 겹쳐서 만들어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대라고 하면, 1985년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개혁개방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단초가 됐습니다. 그가 이런 정책을 펴니 동구권 국가들에서도 우리도 소련처럼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고 저마다 시위에 나섰고, 이런 시위가 동독에서도 벌어졌습니다. 동독 지도부는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서독으로의 여행 간소화 절차를 발표하려 했는데, 공산당 대변인이 그만 실수로 이 절차가 오늘밤부터 시작되니 동독 사람들은 서독으로 건너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동독 사람들이 이 말이 진짜냐 싶어 베를린 장벽에 몰려나와 진짜로 건너가보기로 했는데, 경비를 서던 군인들도 군중이 공산당 대변인이 밝힌 말이라고 했더니 선뜻 막지 못하고 주저했습니다. 이렇게 돼서 수만 명의 주민이 서부 베를린으로 넘어갔는데 결국 장벽의 시대가 끝난 것이죠.

소련이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동독 지도자들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면, 대변인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를 보면 서독은 인구가 6000만 명이나 되고 동독은 4분의 1 수준인 160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동독이 인구나 면적, 경제력에서 비교가 안 되니 독일의 통일을 막으며 저항해봐야 의미도 없고, 그냥 흡수통일 된 것입니다.

동독 지역을 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것이 동독 사람들이 공산당 시절을 회상할 때면 꼭 치를 떨며 슈타지 이야기를 합니다. 슈타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감시했고, 억눌렀는지를 30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슈타지는 북한으로 치면 보위부입니다. 저는 베를린에 있는 슈타지 박물관도 갔습니다. 그 박물관은 과거 슈타지 본부가 있던 곳입니다. 즉 북한으로 치면 보위부 사령부가 나중에 보위부의 범죄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안하지만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슈타지는 보위부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지금 중국 공안보다도 더 나아 보이는 양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감시만 했고, 또 반체제 인사들을 잡아다 수감은 했지만 사람들을 죽이진 않았습니다. 공개처형도 없고, 비밀처형도 없었습니다. 반체제 사범이 있으면 돈을 받고 서독에 보내던가, 서독에 보낸 뒤 오지 말라고 입국을 막았습니다. 이 얼마나 꿈같은 일입니까. 사령관실을 가보니 너무 검소했습니다.

동독의 지도자들은 완전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파쇼와 투쟁했던 투사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치 정부 시절에 소리쳐 외쳤던 출판과 언론의 자유, 발언의 자유를 공산당 시절이 되자 한순간에 말을 바꾸어 처벌하길 주저했습니다. 북한 김 씨 일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동독은 1971년부터 서독 티비를 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북한에서 남조선 티비를 보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동독 사람들은 퇴근해 와서 서독 티비가 재미있으니 그걸 보다 잤습니다. 사는 땅은 동독인데 보는 것은 서독인 겁니다. 그런 생활 18년을 하다보니 장벽이 붕괴됐습니다.

동독 공산당 시절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한스 모드로프 전 총리를 이번에 베를린에서 만나 왜 동독 지도부는 서독 티비 보는 것을 허용했는지 물었습니다. 91세인데 아직도 매우 정정하더군요.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지 정책은 관철시킬 수 있을 때만 해야 한다.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권력을 잃게 된다. 당시 기술적으로 금지해 봐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금지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막지 못하면 북한처럼 본 사람을 총살하면 될 수도 있었지만 동독 지도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동독 지도부는 라이프치히라는 곳에서 1989년 9월에 최초로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무력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최초 시위라는 것이 고작 10명 정도 청년들이 나와 자유로운 나라를 원한다는 플랜카드를 펼친 것에 불과하죠. 북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음 가족까지 몰살됐을 겁니다. 동독은 끝까지 인민들을 죽이려 하진 않았습니다. 불과 3개월 전에 중국 지도부는 천안문 광장에서 수만 명의 젊은 대학생들을 탱크와 장갑차로 밀어붙이며 유혈사태를 일으켰지만 동독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통일이 됐을 때 동독 지도부들 중에 반인륜적인 범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또 놀라웠던 일은 통일이 되자 슈타지 요원들이 제일 빠르게 변신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슈타지에서 쌓은 정보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경비회사, 보험회사, 공해제거 회사 등을 차려 크게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원래 슈타지는 독일에서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뽑혀 가던 곳입니다. 서독에서 태어났다면 세계적 기업들의 임원으로 일했을 사람들이 동독에선 슈타지가 제일 좋은 자리니까 거기에 고용돼 일했죠. 한반도가 통일되면 보위부 요원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지만, 과연 보위부원들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보위부원들은 감옥에 가야 할 겁니다. 다 기록되고 처벌됩니다. 피해자는 잊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방송을 듣는 권력자들은 앞으로 나중에 어떻게 통일이 될지 모르니 인민들에게 제발 악행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도 살고 가족도 살고, 통일 후에 사업가가 될 기회도 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