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명의의 비상식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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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한반도를 덮친 집중호우로 남북이 동시에 피해를 보았습니다. 한국은 전라남도 남해 부근 마을들이 제방이 붕괴돼 큰 피해를 보았고, 북한은 황해도 은파군에서 제방이 터졌습니다. 8월 초에 고기압과 저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딱 자리 잡고 여기 저기 집중적으로 퍼붓는 바람에 피해 양상이 과거와 달랐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어디선 비가 오지 않고 그 옆에선 바케쯔로 퍼붓는 것처럼 오고 하니 피해 본 곳은 엄청 피해보고 아닌 곳은 피해가 크지 않습니다.

북한은 황해도 은파가 그런 집중 호우의 피해를 보았는데, 북한 매체를 보면 연일 은파군 지원 물자 소식이 실립니다. 김정은이 일본 렉서스 승용차를 몰고 나타나 자기 명의의 식량을 보내준다고 하고 중앙당 간부들이 보내는 수재 지원 물자도 갑니다.

사실 이번에 비가 제일 많이 온 곳은 강원도 평강군으로 알려졌는데 은파 이야기만 나오지 다른 곳의 피해소식은 없더군요. 김정은이 인민을 사랑하는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단히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피해를 본 다른 곳에는 왜 지원 물자를 보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이 김정은이 자기 명의의 예비식량을 은파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한 것이고 이걸 받겠다고 또 은파 사람들이 줄 지어 행사를 하고 눈물 흘리고 하는 겁니다. 아니 김정은 명의의 예비식량이 뭡니까. 그게 결국은 다 북한 농촌에서 걷어간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쌓아두었다가 피해를 입은 곳에 준다고 하는데, 그럼 그렇게 빈 창고는 그냥 비워두겠습니까. 나중에 또 농민들에게 걷어서 채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보면서 저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김정은이 점점 과거 봉건 왕조 흉내를 더 열심히 내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봉건 왕조 시절에 구휼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곡이라고도 했는데 흉년이나 재난을 당하면 왕조나 각 지방에서 보관하고 있던 비상식량을 나누어주고 형편이 나아지면 약간의 이자를 붙여 다시 받는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가 과거 왕조 기간 내내 있었는데, 백성들은 홍수 피해를 입으면 구휼미를 내어달라고 요청하고 지방 관청 등이 이를 수락해 내줍니다. 아무리 왕조라고 해도 이걸 구휼미라고 하지 왕의 명의의 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휼미 제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2000년 전 고구려 시대인 194년에 진대법이란 것이 나왔는데, 음력 3월에 곡식을 대여하고 음력 10월에 반납하는 제도였습니다. 나중에 고려 시기에는 흑창이라는 기관을 두어 빈민을 구제했고, 조선시대 초기엔 의창이란 기관을 만들어 이자도 없이 쌀을 대여해 주었습니다. 왕조 시대조차 구휼미를 대여하면서 왕의 명의의 식량이란 말을 하지 않았고, 받는 백성도 사랑과 배려를 운운하며 눈물 줄줄 흘리지도 않았고, 그 쌀을 받겠다고 나와 전달식이니 하는 행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게 뭡니까. 아마 한반도 역사상 왕의 명의의 쌀을 내준다고 생색내는 것은 김정은이 유일할 것입니다. 자기가 농사도 짓지 않는데, 농민들에게서 걷어간 쌀이 어떻게 자기 명의의 쌀이 됩니까? 강도입니까? 그리고 손 하나라도 더 피해복구 건설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식량 전달식을 하고 눈물 흘리게 만들고 이게 뭡니까.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희극을 북한이 쓰고 있습니다. 재난을 당한 곳은 아무 조건 없이 국가가 나서 도와야 합니다. 그 정도 능력도 없으면 국가가 아닌 것입니다. 꼭 김정은이 달려가서야 특정 지역 한 곳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하고, 또 이걸 신문에 며칠이고 실으면서 생색을 내고 이게 희극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또 김정은이 갔다는 이유로 중앙당에선 또 뻔하죠. 우리가 가만있으면 또 피해를 보겠다 이러니까 간부들 쥐어짜서 돈이고 물자 모아서 보내겠죠.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도 인민반 회의를 열고 장군님이 이렇게 걱정하시고 장군님 명의의 쌀까지 내주는데 우리가 가만있어서야 되겠냐며 또 돈을 모으겠죠. 안 봐도 뻔합니다.

그렇게 생색은 생색대로 다 내놓고, 이제 가을이 되면 군량미 명목으로 슬그머니 각 농장에서 낸 쌀로 창고를 채워놓겠죠. 이듬해 또 재난이 발생하면 장군님이 보내준 쌀이라고 또 보내주고 할 겁니다.

원래 군량미 창고 쌀을 오래 보관하면 썩습니다. 전기가 늘 오고 습도 관리 철저히 하는 한국도 쌀을 5년 이상 보관하기 어려운데 북한은 3년 만 보관해도 쌀이 곰팡이 끼고 벌레 먹고 할 겁니다. 그럴 때마다 새 쌀로 갈아주어야 하는데, 이번 홍수 피해로 마침이다 싶지 않았을까요? 새로 갈아야 할 쌀을 몽땅 퍼주고 가을에 또 그걸 받아 채우면 되니까요.

사실 북한에 한 20여년 산 경험으로 저도 서울에 앉아서 이렇게 훤히 보이는 것을 북한 사람들이라고 모르겠습니까. 한편으로 김정은은 얼마나 북한 인민을 우습게 보았으면 안하던 자기 명의의 식량까지 운운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도 이런 희극을 하는데 습관돼 살다 보니 북한 사람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군님 배려 전달식 한다고 하면 당연히 나가서 눈물 흘려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는 겁니다. 이런 사회가 70년 넘게 유지되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점점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들여지고 바보가 돼 갑니다. 딴 생각을 하고, 합리적인 추론을 할수록 자기만 괴롭고 머리 아프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데 습관이 되는 겁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희극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