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쪽에서 유명 북한 음식들 정작 알고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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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에서 살다보면 각 지역 음식을 대표하는 식당들이 정말 많습니다. 실례로 전주비빔밥, 목포 낙지, 춘천 닭갈비, 부산 돼지국밥 이런 식입니다. 북에도 평양온반, 양강도 언감자떡, 자강도 찰수수음식 등등 그리고 보니 머리에 딱히 떠오르는 북한 지방별 대표음식이 별로 없네요.

아무튼 그렇게 지역 대표음식이 있는 것처럼 여기도 지역별 대표음식이 있습니다. 보통은 경상도 지방보다는 전라도 쪽에 맛있는 지방 토종 음식이 훨씬 많아서 전라도 맛집 기행이라는 여행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전라도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유명한 식당들 들려 음식 먹어보는 이를테면 보고 먹는 여행이죠. 저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만 시간 내기가 쉽지 않네요. 나중에 한번 다녀와서 다시 느낌을 방송으로 이야기해 드리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쪽에는 식당들이 100만 개 가까이 있다 보니 음식 종류도 다양합니다. 식당이 몇 개 없는 북쪽보다는 훨씬 음식 종류가 많죠. 제 회사 주변만 봐도 걸어서 10분 안에 있는 식당을 다 꼽으면 한 천 개는 넘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다보니 경쟁이 치열한데 그러다보니 남쪽 음식으로도 모자라 나중에 북쪽 대표음식이라고 하는 식당들도 정말 많습니다.

저번 시간에 제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그 둘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북한 음식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대표적인 북한 음식들도 있습니다. 저기 강원도 속초에 가면 아바이마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긴 실향민들이 모여 살아서 말투도 함경도 말투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왜 거기에 모여 사는가 하면 1950년에 흥남에서 배를 타고 월남한 분들이 남쪽에 내려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나중에 통일되면 가장 먼저 고향에 가겠다고 분계선 가까이에 와서 이주해 살게 됐는데 그게 아바이 마을이 됐습니다. 알고 보면 참 눈물이 나는 사연이죠. 고향을 떠난 아픔, 고향에 대한 향수, 이게 저도 당사자여서 잘 느끼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감정입니다.

아무튼 그 아바이마을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아바이순대와 가재미식혜입니다. 저는 북에 있을 때 어느 상식책에서 각 지방 대표음식을 설명하면서 함경북도 대표음식은 가재미식혜, 평안북도 대표음식은 노치 뭐 이렇게 설명돼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책에만 있을 뿐 현실에서 가재미식혜 먹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가재미식혜가 여기 남쪽에 와보니 있더군요. 아니, 북한 사람이 남쪽에 와서야 "아, 이것이 고향의 대표음식이구나" 이러면서 먹으니 참 기가 막힌 일이죠.

저에게 북한의 대표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북에 식당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으니 무슨 대표음식이 변변히 있습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식당이라면 몇 개 있는 것이 그나마 출장자나 대학 기숙사생이나 가는 곳처럼 인식돼 있었고, 고난의 행군 거치면서 장마당 주변에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또 이때는 맛을 가려서 먹는 것이 아니고, 그냥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식당이니 맛이니 지역 전통음식이니 이런 것이 언제 따질 새가 있습니까.

아무튼 가재미식혜를 먹으니 좀 먹을 만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아바이순대라는 것을 먹으니, 제가 웬만하면 음식을 안 남기는 사람이지만, 맛이 없어서 남기고 말았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북에선 아바이순대를 먹냐고 하는데, 북에선 그런 순대 먹기는커녕 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1950년대 이전에는 그런 순대가 함경도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거든요.

순대만큼은 북에서 먹던 순대 정말 먹고 싶습니다. 겨울 언 시래기에 쌀 넣고, 내장 넣고, 피 넣고 이렇게 만든 순대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순대는 쌀 대신 당면을 넣고, 시래기도 넣지 않습니다. 중국 조선족 순대는 기름지게 느끼하고, 아무튼 고향음식 중에 순대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의 하나입니다.

여기 서울에 신의주찹쌀순대라는 간판을 내건 순대집이 많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 신의주가 찹쌀순대로 유명하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신의주찹쌀순대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그 유래를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평양찹쌀순대가 더 나아보이는 데….

평양냉면, 함흥냉면, 아바이순대, 가재미식혜, 신의주찹쌀순대 뭐 이 정도가 남쪽 사람들이 다 아는 북한 음식 이름입니다. 정작 북에는 평양냉면을 제외하면 이런 음식이 없는데 말이죠. 제가 잘 모르겠지만 과거 일제 때 북에 이런 음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이 있습니다. 음식은 시기별로 진화합니다. 남과 북이 60년 넘게 갈라져 있는 지금 이런 음식은 이름만 북한 음식이지 사실은 여기 남쪽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진화한 사실상 남쪽 음식입니다. 정작 북한 사람들이 와서 먹으면 맛이 없다고 못 먹을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북에서 먹었던 음식을 바탕으로 음식점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아쉽게도 그리 성공하는 식당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대로 여기 남쪽 사람들은 북쪽 음식이 입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한두 번은 북한 음식이 어떤지 호기심에 가보겠지만 그 이후엔 여기 식당이 오죽이나 많습니까, 자기 입맛에 익숙한 남쪽식당을 가는 겁니다.

서울 주변에 탈북자가 하는 모란각이라는 평양냉면집이 있는데, 여긴 한 15년 넘게 버티고 있습니다. 한때는 많이 성공해서 분점도 전국 곳곳에 내는 등 유명했는데, 요즘엔 잘 안되나 봅니다. 하지만 제게는 입에 맞아서 멀어서 자주는 못가도 이따금씩 찾아가 먹습니다.

벌써 오늘도 시간이 다 흘렀네요. 고향음식 이야기하니 저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