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벌이는 ‘괴뢰 말투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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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달 초에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이 과거 범죄로 처벌을 받은 청년들을 적극 포용했다고 홍보하는 사진들을 소개하더군요. 이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달 30일 탄광이나 건설장 같은 험지에 자원해 새 출발을 한 '뒤떨어졌던 청년들‘ 9명을 만나 “어렵고 힘든 부문에 탄원 진출해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대견하게 여긴다”며 격려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너무 우스웠습니다. 김정은이 만났다는 과거에는 뒤떨어졌지만, 탄광과 건설장에서 만나 새 출발을 한다는 청년들의 사진들이 나왔는데, 김정은이 악수하는 사진도 나오고, 또 9명 쭉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들은 어떤 죄를 지었기에 뒤떨어진 청년이 됐을까 상상해봤습니다.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면 ‘접견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용서가 가능한 ‘범죄’의 범위에서 나름 짐작해봤는데, 깡마른 청년들은 생활고 때문에 도둑질을 했을 것 같고, 키 큰 청년들은 주먹질하다 잡혔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과 사진 찍는 자리에서도 발을 쩍 벌이고 양옆 청년들과 팔짱을 낀 배포 큰 청년도 보였는데 피부도 하얗고 영양 상태도 좋은 이 청년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생각해봤는데 혹시 보지 말라는 영상물이나 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가 걸린 잘 사는 집 자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괴뢰 말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많은 청년들이 체포됐지요. 벌써 전쟁을 선포하고 1년 가까이 돼 가고 있는데 단속은 점점 심해지고, 거기에 계속 새로운 ‘괴뢰 말투’들이 지정돼 내려오는데, 그걸 다 외우고 실수하지 않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듯합니다.

처음엔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괴뢰 말투로 지정됐는데 가령 연인 사이에 “오빠야, 자기야” 했다간 괴뢰 말투를 쓰는 범죄자가 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번 청년절인 8월 28일에 새로 내려온 방침을 제가 입수해 보니 더 기가 막혔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괴뢰 문화의 졸렬성, 부패성을 똑바로 인식시키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짜고들 것. 청년들 속에서 친인척 관계가 없는데도 ‘오빠’, ‘동생’이라는 괴뢰 말투를 쓰면서 불건전한 사상을 유포시키는 행위를 근절하도록 할 것”.

형제나 친인척이 아닌 관계에서 오빠, 동생이라고 부르면 이젠 범죄자가 되는 것이네요. 연상이나 동갑이면 “철수 동지”, “영희 동무” 이런 식으로 부르고, 나이가 어리면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겠죠. 하지만 북한에 한국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지 20년도 더 되는데, 어릴 때부터 그 영향을 받아 오빠, 동생하며 큰 청년들은 하루아침에 저도 모르게 튀어 나가는 호칭을 쉽게 바꾸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빠, 동생뿐만 아니라 새로 하달된 방침에는 괴뢰 말투의 잔재를 완전히 쓸어버리기 위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표현들이 잔뜩 나열돼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괴뢰 말투로 지정된 표현들을 보니 이런 것들이 지정됐습니다. ‘파격적이다, 이례적이다, 특례적이다’는 말은 절대로 쓰지 말 것. ‘단언하건대, 강조하건대, 정세 하에서, 조건 하에서, 금후, 사회적 거리두기’ 등도 괴뢰 말투라 피해야 합니다. 괴뢰 말투가 아니지만 피해야 할 단어도 지정돼 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하여 ‘회고’라는 말을 쓰지 말 것”이라 내려온 것으로 보아 앞으로 ‘회고모임’, ‘회고음악회’ 이런 행사는 열리지 않을 듯합니다. ‘친인민적’, ‘친현실적’이란 말은 ‘망탕(마구)’ 쓰지 말아야 할 단어가 됐습니다. 정말 할 일도 없네요.

제가 볼 때는 북한에서 해외 영상매체를 보는 청년들은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행에 제일 앞장서는 청년입니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엔 전 세계가 열광합니다. 제일 앞서가는 문화를 뒤떨어졌다고 하니, 제가 볼 땐 김정은이야말로 북한에서 제일 뒤떨어진 인간입니다. 이렇게 북한에선 ‘앞서다’와 ‘뒤떨어지다’의 뜻도 남한과 반대로 해석이 되는군요.

그런데 북한 보도를 보면서 웃긴 일은 김정은이 만난 청년들을 1998년에 제작된 영화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의 주인공 류승남에게 빗대 소개하며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제가 몇 년 전에 입수한 109상무 단속목록에 ‘장성택 역적의 여독청산과 관련하여 회수해야 할 전자다매체 목록’과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춰지는 영화’로 동시에 올라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여주인공인 김혜경이 처형됐기 때문인데 북에서 김혜경은 장성택의 여자였고, 애까지 있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금지시킨 사유를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줄기는 뿌리에서 자란다’는 영화를 언제는 반동 영화라 보지 말라고 해놓고, 이번엔 그 영화의 남주인공을 빗대 모범적으로 살라고 하니 참 웃음이 나옵니다. 이젠 상영금지에서 풀렸나요? 언젠 이거 보면 반동이라면서요. 노동당 선전선동부도 이 박자 저 박자 맞추다가 맛이 간 것 같습니다.

한국은 오빠, 동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호칭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면 뭐가, 왜 문제가 됩니까. 요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라고 부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해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전 세계의 지탄을 받습니다. 여성들은 공부도 못하게 하고 눈만 내놓고 다니는 시꺼먼 부르카란 천을 쓰게 하고 이를 어기면 정말 가혹하게 처벌합니다. 북한을 보니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이 떠오릅니다. 김정은 역시 시대를 역행한다는 점에서 탈레반과 닮았습니다. 도대체 북한에선 뒤로 역행하지 않는 것이 뭐가 있나요. 김정은이 인민들 잘살게 만들 고민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별것도 아닌 단어를 일일이 지정하며 금지시키니 마니 씨름 질이나 하고 있으니 북한이 언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이현주,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