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통치가 본격화된 북한

0:00 / 0:00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말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전원회의를 통해 김여정이 북한을 통치하는 최고 권력기관인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정식 임명됐습니다. 새 국무위원 명단을 보는 순간 저는 “북한에서 국무위원으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 동안 국무위원회에서 자리를 유지한 것은 김정은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철 통전부장 3명밖에 없습니다. 3기 국무위원이 새로 임명되기 전 앞서 말한 3명을 제외하고 모두 22명이 부위원장이나 위원이었는데 이중 20명이 사라졌습니다. 5년 생존율이 10%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 국무위원은 노동당 비서나 내각 장관급이라고 다 되는 것은 아니고 핵심 권력자 중의 핵심 권력자들이 되는 겁니다. 사실 부부장에 불과한 김여정은 직급으로 보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무위원회가 열리면 형식적 서열 외에 실질적 서열은 어떻게 될까요. 이게 확 달라집니다. 쉽게 말하면 김정은의 숙청에서 자유로운 순서로 서열이 매겨질 겁니다.

국무위원회가 초기에 만들어질 때 황병서가 초대 국무위원회 1부위원장이 됐는데, 그가 어떻게 됐습니까. 처형되지 않았습니까. 서열 2번째 자리도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볼 때 처형에서 제일 안전한 것이 누굽니까. 바로 김여정입니다. 국무위원회에서 계급이 제일 낮은 김여정이 이 국무위원회의 실질적 2인자입니다. 김여정은 노동당 선전비서 이일환이 있는데도 그를 제치고 부부장 직급으로 국무위원이 됐습니다만 북한에서 직급이 뭐가 중요합니까.

국무위원회가 열리면 다른 위원들은 과거엔 김정은 눈치만 보면 됐는데 이젠 두 명의 눈치를 같이 보게 됐습니다. 한번 회의 장면 상상해 보십시오.

과거에는 김정은의 표정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다가 “거 말이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우”하면 바로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마냥 움츠러들면서 “장군님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이래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옆에서 또 “거, 말이 안 되는 소리 하겠습니까” 하는 앙칼진 목소리가 날아오면 역시 목을 움츠려야 합니다. “김여정 동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래야 합니다. 김여정의 눈 밖에 났다간 바로 “오빠, 저 인간 못쓰겠어요” 이러면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분위기라면 회의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겠습니까. 김정은에게 조심스럽게 “이렇다고 합니다”고 한 뒤에 본능적으로 김여정의 표정까지 살펴야 합니다. 눈동자가 2배로 부지런해져야 하는 겁니다.

김정은이 올해 1월 노동당 제1비서 직책을 신설한 뒤 그 자리에 누가 올라갈까 논란이 많았는데, 이번에 김여정을 국무위원에 눈치도 보지 않고 앉힘으로써 명실상부한 후계자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국무위원회는 남매가 지배하게 된 셈입니다. 이 앞에선 모두 고양이 앞의 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을 만한 사람은 최룡해 정도인데, 최룡해는 권력이 하나도 없고, 허울뿐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라 책임질 일이 없습니다. 그건 욕먹을 일도 거의 없다는 뜻이죠. 그리고 국무위원회뿐만 아니라 북한을 대표하는 백두혈통의 상징이죠. 다 늙어서 굳이 죽일 필요도 없고요. 그러니 최룡해는 국무위원회에서 조금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김정은을 향해 “장군님 말씀이 정말 신통합니다”고 추임새를 넣어주거나 비판 받는 간부를 향해 “왜 고작 그런 것도 생각 못해 장군님께 심려를 끼쳐드리나”고 한마디씩 하면 죽을 일은 없는 겁니다.

최룡해 다음으로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사람이 조용원 조직비서인데, 조직비서는 사실상 북한 간부들의 인사권을 가진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권한으로 볼 때 노동당의 핵심 중의 핵심 자리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에 조직비서 자리부터 타고 앉아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20년 넘게 해먹었습니다. 간부 인사권을 틀어쥐어야 북한을 틀어쥔다는 것을 알았죠. 김일성이 죽은 뒤엔 조직비서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힘이 큰지를 알기 때문에 믿을 놈이 없어 주지 않고, 대신 조직지도부엔 부부장만 6명 정도 두고 실질적인 인사는 자기가 했습니다.

그런 조직비서 자리는 당연히 김정은 시대에도 가장 신임 받는 인물이 돼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조용원은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데 조직비서가 된 것으로 봐선, 능력 이상의 개인적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용원 정도를 빼면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습니다. 국무위원들의 목이 얼마나 가는지를 이미 다 봤기 때문에 정말 살얼음장 걸어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선 김정은의 말은 당연하고 김여정의 말에도 모두가 벌벌 떨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역사에는 권력자가 부인이나 아들 또는 딸을 2인자로 삼은 경우는 있어도 오누이가 권력을 쥐고 흔든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찾으려면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미인의 상징처럼 알려진 클레오파트라입니다. 그때는 왕조의 피가 일반인과 섞이지 말아야 한다며 남매끼리 결혼시켰고 클레오파트라는 18살 때 8살 아래인 남동생과 결혼합니다. 두 명은 부부이자 공동 통치자였는데 권력이란 것은 기원전 그 시대조차 나눠가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남동생이 크면서 왕좌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누나가 이겨 남동생을 죽였습니다.

남매 공동통치의 과거 사례는 이렇게 끝이 좋지 못했습니다. 김정은은 누이동생과 끝까지 싸우지 않고 오래오래 북한을 통치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김여정의 권한이 그리 크진 않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