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방탄소년단을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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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한국에서 기자로 16년 동안 살면서 누구도 두려움 없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글쓰기 무서운 대상이 하나 생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아닙니다. 그럼 김정은? 그것도 아닙니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은 누구라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서운 대상은 단 하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20대 가수들입니다.

이들이 너무 인기가 좋으니, 함부로 비판했다가는 그 가수의 팬들에게 저는 인터넷에서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팬이라면 누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유명 가수들에겐 팬들이 몇 십, 몇 백만씩 있죠.

올해 4월에 한국 가수들이 평양에 가서 공연했을 때 공연단에는 레드벨벳이라는 4인조 20대 여성 가수 그룹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제가 "북한은 10만 명이 동작을 맞추는 나라인데, 저 네 명이 가서 율동을 보이면 감동하겠냐"고 썼다가 레드벨벳의 팬들에게 혼이 났습니다. 북에서 와서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다 이 정도 비난은 양반이고, 아무튼 온갖 욕을 다 먹었습니다. 그때 아이돌에 대해선 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요즘에 전 세계를 휩쓰는 20대 한국 아이돌을 보니 그런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하네요.

요즘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가수 그룹은 '방탄소년단'이라는, 여러분들에겐 다소 좀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름을 가진 그런 7인조 보이밴드입니다. 20대 남성 가수들이기 때문에 보이란 이름이 붙었고, 밴드는 여럿이 함께 노래하는 팀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가수팀은 걸밴드라고 하겠죠.

이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유명한지 며칠 전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했는데, 2만 석 관람표가 단 몇 분만에 다 팔렸습니다. 제가 공연 영상을 봤는데, 유럽 전역에서 몰려 온 팬들의 반응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친 듯한 환호에 고막이 찢어질 듯 했고,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닌 듯 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실려 나가는 팬들도 있었고, 공연이 끝나니 아쉬워 목 놓아 우는 청소년들 천지였습니다.

아마 북한 사람들이 그 장면을 봤으면 깜짝 놀랐을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저들은 뭣에 홀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겠죠. 북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 환호라면 김일성이 나타났을 때 만세 부르며 몰려오고 눈물 흘리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방탄소년단에 대한 환호와 열광은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적 인기를 설명할 때 여러분들에겐 하늘같은 수령님,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령 이들이 최근에 최신 곡을 하나 인터넷에 올렸더니 불과 하루 만에 전 세계에서 5000만 명 이상이 봤습니다. 이것도 세계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론 아이돌의 공연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뭔지도 알아듣기 힘듭니다. 40대 나이라 그런지 저는 외국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가 더 좋고, 이번에 평양에 가서 공연했던 이선희나 조용필 이런 나이든 가수들의 노래가 더 좋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요즘 청소년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게 또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절대 없는 일이죠. 사람마다 취향이 있고, 유행이 있는 법이고, 제일 중요하게는 나이별로 감수성이 다 다르죠. 이 방송을 듣는 분 중에 자식이 있는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자기 자식도 요새 왜 저렇게 노는지 잘 이해 못하지 않습니까.

저도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을 잘 모르긴 하지만, 이들의 세계적 인기엔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압니다. 제가 두 달 전에 프랑스 파리를 갔는데, 파리 어느 큰 건물을 돌아가다 놀랐습니다. 그 건물 주변에서 백인, 흑인, 남녀 할 것 없이 열개 넘는 젊은 청년들의 무리가 저마다 휴대전화로 영상을 틀어놓고 춤 연습을 하던데, 하나같이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다수가 따라하는 춤과 노래는 방탄소년단의 것이었습니다. 제 보기에도 방탄소년단이 춤을 정말 잘 춥니다.

이 보이밴드는 활동을 시작한지 한 5년쯤 됐는데, 아마 그 전에 2~3년 정도 안무를 맞추는 훈련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경력이 10년을 넘기기는 어렵겠죠. 그걸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북한에선 청년들을 만 16살에 군대에 뽑아가서 10년이나 군 복무를 시키지 않습니까. 군에 가는 청소년 중에 얼굴 잘 생기고 춤에 소질 있는 사람만 뽑아서 특수부대 훈련시키듯이 10년만 훈련시키면 북한이라고 유명한 아이돌이 나오지 못할까 하고 말입니다. 거긴 뽑으면 뽑혀서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곳이니까요.

물론 세계를 선도하는 음악과 춤이 문화적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사는 북한에서 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정은이 마음먹고 북한 특색을 가지고, 또 세계 사람들도 좋아할만한 공연단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무슨 괴물이 나오던 나오긴 할 것 같긴 합니다. 단순히 그냥 남쪽 아이돌을 모방한다고 해도 적어도 동작 정도는 더 기막히게 잘 맞추지 않을까요? 요즘 방탄소년단뿐만 아니라 한국 20대 가수들이 전 세계를 주름잡는데, 그 코리안 가수라는 유명세에 살짝 빌붙어 노스코리아에서 튀어나온 보이그룹, 걸그룹을 키우면 김정은에 대한 관점이 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북한 청년들도 참 불쌍합니다. 남쪽 청년들은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데, 똑같이 노래 좋아하고 춤 좋아하는 한 민족으로 태어났지만, 북쪽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10년 동안 자신의 소질을 죽이고 산골짜기에서 부업과 공사판으로 젊은 시절을 다 낭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재능 있는 여성들도 아리랑 공연 같은 행사장에서 개성이 하나도 없는 꼭두각시 춤이나 추고 있으니 정말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