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에서는 강원도 김화와 함경북도 김책 등에서 새집들이 완공됐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더군요. 김화 같은 경우 읍은 물론 17개 리도 초토화됐던데 빨리 건설은 했습니다. 그런데 새집들이 한다면서 연출해 찍은 사진이긴 하지만, 저는 조선옷을 입고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는 가족들이 죽은 사람들이 꽤 많을텐데, 저렇게 춤을 추고 싶을까.” 물론 그들이 추고 싶어서 추었겠습니까. 가족 잃은 사람들은 평양에서 내려 온 간부들이 다 떠나고 나면 집에 들어가 죽은 혈육이 생각나 눈물을 흘리겠죠.
김화읍 같은 경우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8.5㎞, 즉 20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전쟁 때 한국군이 조금만 더 올라갔어도 그들은 벌써 오래 전에 지금 지은 새집보다 더 좋은 집에서 따뜻한 더운 물이 나오고, 매끼 흰 쌀밥을 먹으면서 살았을 겁니다. 북에서 산 죄로 수많은 혈육을 잃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북한 언론에 보면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이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당의 부름을 따라 일어선 사람들, 당의 사랑에 눈물짓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니고, 뒤에 가선 눈물 대신 원망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북한을 보면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낍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북한 해군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온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해군에서도 제가 모르는 사고들이 많이 났더군요. 저는 북에 살면서도 그런 얘기 일절 못 들었습니다. 언론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언론이 해주지 않은 이야기들은 결국 제가 방송에서 여러분들에게 전달해 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해군 참사 이야기 들었던 것을 여러분들께 전하겠습니다. 대표적인 해군 참사 3가지를 전하겠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으니 많은 분들이 모르는 이야기일 겁니다.
우선 2013년 11월 2일 북한 언론에 소개된 사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김정은의 사랑을 전한다고 그랬는지 예외적으로 보도가 됐습니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다 10월 중순에 희생된 구잠함 233호의 지휘관과 해군들의 묘를 찾았다고 보도했고, 김정은은 묘비에는 묘주의 이름이 있어야 한다면서 죽은 해병들의 묘주를 자청하면서 자기 이름을 묘비에 적으라 했습니다.
이 사고는 나중에 알아보니 동해 해상분계선에서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중인 구잠함에서 폭뢰가 폭발해 군함이 순식간에 사라진 사고입니다. 다 죽었으니 원인은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전문가들은 폭뢰 투하 상황이 돼서 신관을 맞추다가 폭발했을 정황이 가장 유력하다고 판단합니다. 시신도 못 찾아서 유품을 묻고 합장묘를 만든 뒤 김정은이 찾아가 은혜로운 지도자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연극을 편 겁니다.
두 번째로 큰 사고는 1984년 신포 앞바다에서 북에서 제일 큰 잠수함이 침몰해 50명 이상의 승조원들이 목숨을 잃은 사고입니다. 북한 이원군 차호에 북한 해군 5전단 소속 잠수함 기지로 잠수함이 들어가다가 대형 냉장운반선 ‘룡악산’호와 부딪쳐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사실 그 잠수함은 1940년대 소련에서 건조해 쓰던 것을 들여온, 그때도 사용연한이 오래된 고물이었는데 북에선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소련 함대까지 불러 인양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잠수함이 침몰해 잠겨있는 신포 앞바다에는 지금까지도 침몰 위치를 나타내는 부표가 떠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대형 사고는 1983년 10월 일어난 황해도 과일군 월사리 잠수함 11전대 병기창 폭파 사고입니다. 앞서 사고는 정말 사고였지만, 이것은 비판을 받은 분대장이 안에 들어가 자폭했기 때문에 북한 해군으로서도 지우고 싶은 악몽일 겁니다.
이 분대장 이름이 김선동이라, ‘김선동 사건’으로도 알려졌는데, 잠수함 전대 병기관리 대대에 근무하는 평양 출신의 중사였고, 제대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군의소 여자 간호원하고 연애를 하다가 들켜, 부대가 다 모인 장소에서 공개 비판하고 처벌받게 됐는데, 10년 복무하고 불명예 제대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니까 고민하다가 머리가 획 돌아서 다음날에 병기창에 들어가 자폭을 했습니다. 어뢰와 폭뢰 전문가니까 어떻게 폭파시키는지 잘 알죠.
그게 오전 10시쯤인가 날이 밝았는데, 목격자에 따르면 핵폭발이 일어난 줄 알았답니다. 버섯구름이 200m 이상 솟구쳤는데 갱도 안에 장약량이 수백㎏이 넘는 어뢰만 100발이 넘게 있고, 기뢰가 엄청 많았는데 그게 한꺼번에 터지니 어떻겠습니까. 병기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 근무조 등 40여명이 죽었습니다. 이 사고를 황해도 과일군에 오래 산 사람들은 다 기억하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전혀 모릅니다.
북한은 당시 수백 만 달러씩 주고 소련과 중국에서 어뢰를 수입했는데, 엄청난 외화가 하늘에 날아간 셈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평양의 김선동 가족, 친척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창 피가 끓는 젊은이들을 10년씩 가둬두고 연애도 못하게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20대 청춘에게 10년을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면 다른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김 씨 일가의 노예로 사는 북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해군의 3대 참사는 비록 오래전의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북한 당국이 꽁꽁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쳐 여러분들에게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려드린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는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은 언론이 아닙니다. 진정한 언론은 저처럼 바로 독재자가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을 파헤쳐 알려주는 게 진짜 언론입니다. 앞으로도 독재정권이 숨기고 있는 비밀들을 열심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