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평양에서 북한돈 전용 전자카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전에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나래라는 전자카드를 발급해 주었는데 이제는 북한돈도 카드로 만들어 쓴다니 참 좋은 소식입니다. 물론 카드를 쓰려면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은행에 돈이 있어야 하고 또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아야 합니다. 지금은 쓸 곳이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초기니까 앞으로 점점 좋아지겠죠. 결국 보면 돈 있는 사람만 점점 더 살만한 나라가 되는 것 같습니다.
카드 이야기 나오니 옛날 대학 다닐 때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생각납니다. 영어 시간인데 크레딧 카드라는 단어가 문장 도중에 나왔습니다. 그래도 번역은 제대로 해서 선생님이 신용카드라고 말해주긴 하는데, 사진이라도 있으면 보고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알겠지만 도무지 머리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군요. 저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학생들이 다 갸웃하는 겁니다. 일단 카드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얼핏 떠오르는 카드는 집단체조 때 들고나가는 그런 큰 카드인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선생이 주패장만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 그럼 크기는 알겠는데 신용과 카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이니 당연히 신용이란 말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드에 신용을 어떻게 넣고 다니는지 그걸 아는 재간이 있습니까. 누군가 궁금했는지 "선생님, 그럼 신용카드는 어떤 겁니까" 하니까 선생도 외국에 나가본 일이 없으니 본 적이 있을 리 만무하죠. 그래도 어떻게 배운 것은 있어서 "이건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돈 대신 쓱 긁는 거다"고 대답해 줍니다. 그러니까 더욱 모르겠더군요. 물건 살 때 돈을 내면 되지 카드는 왜 긁는다지? 긁는다는 것도 왜 카드는 긁는 거지, 카드 겉면에 돈 액수가 적혀 있어서 긁어서 확인하는 건가?
궁금해서 또 물어보니 선생이 큰돈을 들고 다니기 힘드니 저 안에 돈을 넣어 대신 낸다는 지하면서 얼버무리며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카드에 큰돈을 어떻게 넣고 다니지? 이런 궁금증이 또 생기는 겁니다. 선생도 자꾸 질문이 이어지니 "나도 잘 모르니 그냥 그런 게 있다 하고 생각하면 되지 니들이 언제 쓸 일이 있겠니"하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20년도 안 돼 쓰게 됐네요.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는데 훗날에도 자꾸 신용카드란 것이 무엇일까 혼자서 자꾸 상상했지만, 북한의 환경은 상상 속에서라도 신용카드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열악했습니다. 그랬는데 한국에 오니 유치원 아이들조차 신용카드가 뭔지 다 압니다. 이제는 저도 지갑에 신용카드를 몇 개씩 갖고 다닙니다.
전자결재란 개념이 이제는 북에서도 시작됐으니 아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신용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이 사람의 금융정보가 카드에 기록돼 있는 겁니다. 이 카드를 상점이나 식당에 가서 대면 이 사람의 계좌 즉 은행 통장에서 그만큼 돈이 빠져 나갑니다. 불편하게 돈을 많이 갖고 다닐 필요가 없는 거죠. 저도 지갑에는 늘 100딸라 미만의 현금만 갖고 다닙니다. 어디 가나 신용카드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라는 것도 신용카드와 현금카드가 있습니다. 현금카드는 이 사람의 통장에 있는 돈만큼만 쓸 수 있습니다. 통장이 바닥이 나면 더 이상 카드를 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는 내 통장에 돈이 없어도 쓸 수 있습니다. 카드 만들 때 금융회사에서 내 조건을 다 따져봅니다. 어느 회사 다니는지, 돈을 갚을 능력은 있는지 따져보고 이 사람은 이만큼 써도 나중에 갚을 수 있다 이렇게 판단하고 먼저 쓰게 하는 겁니다. 돈 쓰고 한 달 뒤에 통장에서 빠져나갑니다. 그러니까 신용카드의 신용이란 이 사람의 돈을 갚을 능력, 이걸 말합니다. 그걸 모르고 북에서 그렇게 고민하면서 상상했죠. 아니, 신용을 어떻게 카드에 넣고 다니지? 이러면서 말입니다. 좋은 회사 다니고 월급도 많이 받으면 신용이 높아지고, 대학생처럼 벌지 못하면 신용이 낮아져서 조금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신용도 등급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입니다. 그러니까 은행에서 자꾸 전화 옵니다. 신용카드 한도를 높여주겠다고요. 그러니까 내가 마음대로 긁으라는 겁니다. 어차피 이 사람은 갚을 거니까 많이 쓰게 하는 게 좋은 거죠. 카드를 많이 쓰면 은행은 수수료를 먹어서 도움이 됩니다. 저는 그래서 내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어도 지금은 2만 딸라 정도는 먼저 당겨쓸 수 있습니다. 꾸는 것과 똑같은데 나중에 갚으면 되는 거죠.
그렇지만 신용 1등급이 그냥 된 건 아닙니다. 한국에 처음 와서 은행 거래 실적이 없으니 그때 정말 돈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정말 사람의 목숨이 걸린 긴급한 문제인데 제게도 돈이 없고 또 돈을 꿔주는 곳이 없습니다. 처음 왔으니까 금융거래 기록도 없고 신용이라는 것이 전혀 쌓인 게 없으니 은행에서 빌려줄 리 만무합니다. 절망적으로 헤매는데 어느 길가에서 누군가 신용카드 만들라고 합니다. 신용카드 만들면 먼저 500딸라 정도 돌려쓸 수 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맙게도 내게도 돈을 꿔주는 곳이 있구나 이러면서 너무나 감사하게 신용카드를 만들었습니다. 500딸라 정말 요긴하게 썼고, 한국에 신용카드가 수백 종류가 있지만 그 신용카드를 10년째 바꾸지 않고 씁니다.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제게 돈을 꿔준 유일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렇게 10년 쓰니 자꾸 더 꿔주겠다고 해서 귀찮네요. 신용이 높아지니 이제는 오히려 돈 빌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서글픕니다. 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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