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란 노래가 있지요. 북한에선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노래는 김정일이 5대 혁명가극 중 하나인 ‘당의 참된 딸’을 창작하면서 1971년에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장군님이란 호칭도 3대째 세습됐으니 지금은 김정은이 그리운 장군님이겠죠.
김정은을 자주 보면 좋을지 나쁠지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겁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요즘 김정은을 보기 진짜로 힘듭니다. 최근만 봐도 1월 1일 소년단 행사에 잠깐 얼굴 비치고 1월 한 달 동안 내내 사라졌습니다. 한 달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도자란 사람이 한 달이나 실종돼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북한은 참 기이한 곳이긴 합니다.
김정은이 사라지면 남쪽 전문가들은 “중요한 결단을 두고 숙고 중”이란 판에 박힌 대답을 내놓곤 합니다. 제가 숙고하는지, 아님 어느 특각에서 잘 노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아무리 숙고를 한다고 쳐도 한 달 사라진 것은 좀 너무한 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1월엔 김정은이 사라질 만한 중요한 이유가 두 가지나 생겨났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은이 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제가 했던 생각을 한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평양의 코로나 재확산입니다. 평양에 유열자 즉 발열환자가 급증해 25일부터 닷새 간 봉쇄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은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이 공개한 북한 외무성 공지문을 통해 남쪽에도 알려졌습니다.
저와 연락하는 대북 소식통도 현재 평양엔 발열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주변에 온통 열이 나는 환자들인데,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평양 사람들도 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코로나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나 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설사 진단을 받는다고 해도, 코로나면 어떻고 감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법도 없습니다. 병원에 약이 없기 때문이죠. 그나마 비상으로 깔아놓고 있던 약은 작년 5~6월의 대유행 때 탈탈 털어 다 썼습니다. 이후 보충할 방법은 없습니다. 가동되는 의약품 공장도 거의 없는데다 국경 봉쇄로 수입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약도 주지 않고 체온을 재서 보고하라고 하니 사람들이 잘 할 리가 만무합니다. 열이 난다면 가둬두고 밖에 나가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다가 혹 나오면 위반했다고 처벌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런데 김정은의 처지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무서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 토론에서 김여정은 “방역 전쟁의 나날 고열 속에 심히 앓으시면서도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민들 생각으로 한 순간도 자리에 누우실 수 없었던 원수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오빠가 발열자였다는 사실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인데, 5~6월의 발열자는 사실상 모두 코로나 환자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김여정의 말대로라면 김정은은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정은처럼 북한에서 특등 초고도 비만 환자는 회복했어도 위험합니다.
지난달 19일, 유럽심장학회(ESC)가 발간한 잡지에는 코로나 감염자 7,584명과 비감염자 7만 5790명을 대상으로 후유증이 얼마나 가는지 평균 18개월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그걸 보니 코로나에 감염됐을 경우 완치 이후 약 3주간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4.3배나 높아지고,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은 무려 81배나 높아졌다고 합니다.
코로나 감염 후 18개월이 지난 뒤에도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은 1.4배,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은 5배나 높은 상태가 유지됐습니다. 완치된 지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김정은은 지금 후유증이 강한 위험 구간에 있는 셈입니다.
지난달 18일, 한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다른 하나의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국 내 확진자 847만 명을 조사해보니 재감염자는 1회 감염자보다 치명률이 1.79배나 더 높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걸리면 첫 번째보다 좀 나을 줄 알았더니 더 위험하다고 하네요.
자, 사정이 이런데, 김정은의 건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김정은은 이미 충분히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코로나가 큰 후유증을 남기는 심혈관 질환은 김 씨 집안의 치명적 약점이자 가족력이기도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모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지 않습니까.
심근경색의 4대 위험인자는 흡연과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인데 김정은은 누가 봐도 오래전부터 4대 인자 모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람은 설령 날씬하다고 해도 심근경색 발생 위험성이 6배나 높은데, 초고도 비만에 가족력까지 있으면 훨씬 더 위험해집니다. 여기에 코로나 재감염까지 된다면 일반 사람보다 죽을 확률이 대충 몇 십 배 더 높아지네요.
코로나 말고 김정은이 외부 노출을 자제할 만한 두 번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올해 북한에 23년 내 가장 심한 추위가 닥친 것입니다. 심혈관 환자는 가장 더운 날과 가장 추운 날을 조심해야 합니다. 김일성은 한반도의 폭염 기록을 연이어 세우던 1994년 7월에 사망했고, 김정일은 매서운한파가 들이닥쳤던 2011년 12월에 숨졌습니다.
심혈관 환자에게 미치는 코로나의 악영향과 후유증, 재감염자의 치명률 증가, 기록적 한파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가족력을 가진 초고도 비만환자 김정은에게 있어 1월은 참 두려운 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김정은 처지라도 밖에 쉽게 나가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사라지면 북한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안녕히 계십니까. 일 좀 해주세요.’ 이렇게 지금이야 말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김정은을 불러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