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에서 쿠바가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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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은 지난달 14일 쿠바와 전격적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는데, 쿠바를 ‘형제의 국가’라고 하던 북한에 주는 충격도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형제의 국가라고 해도 둘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쿠바와 대한민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사실을 북한 인민에게는 알리고 싶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달 15일 이후 북한 매체에선 쿠바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쿠바가 북한을 버리고 한국과 손을 잡은 과정을 보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쿠바의 면적이 11만㎞로 북한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세계에서 북한과 가장 비슷한 경제 구조, 즉 과거 사회주의 시절의 정책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쿠바도 박제된 사회주의 박물관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쿠바 말고도 중국도 있고 베트남(윁남)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1970년대에 이미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베트남도 1980년대 도이모이 정책으로 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쿠바에는 아직도 배급제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빵도 주고, 심지어 계란도 나눠주는데 한달에 계란 6알을 줍니다. 직장에서 40년을 일한 쿠바 사람이 한 달 받는 연금이 1,500쿠바페소인데, 30알짜리 계란 한 판이 3,000쿠바페소에 팔리고 있습니다. 즉 한달 연금으로 계란 15알 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인데, 북한에 비해선 엄청 낫긴 하지만, 세상에 이걸 연금이라고 받는 나라는 북한을 빼면 쿠바 밖에 없습니다.

쿠바의 경제가 미국의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파탄 났다는 것도 북한과 흡사합니다. 쿠바는 공업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관광객이 오지 않아 경제가 요즘 너무 어렵습니다. 물론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굶어 죽는 사람도 없고, 북한에 비해 몇 배 잘삽니다.

하지만 그들 기준으로 볼 때 이전과 달리 살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니 실리를 찾아 경제력이 세계 10위 좌우인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기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제재니, 코로나니 하는 것은 쿠바 경제가 망한 진짜 이유가 아닙니다. 진짜 원인은 북한과 똑같이 한 가문이 너무 오래 집권했다는 것입니다.

1959년 쿠바혁명 이후 2021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공산당 총서기를 맡기 전까지 카스트로 형제가 62년간 통치권을 행사했습니다. 90세에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었지만, 그는 그나마 김일성, 김정일보다는 덜 뻔뻔해서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어 세습 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더라도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이 반미 이념을 내걸고 62년을 통치한 결과는 지금 매우 심각한 경제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경제를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하지만 독재자가 62년 통치한 흔적은 너무 뿌리가 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쿠바는 북한과 너무 다른 나라입니다. 쿠바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경제개혁을 실시하고 있는데, 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100명 이하의 기업에는 개인 경영을 허용했습니다. 북한이라면 이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간 쿠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서 송금을 받는 것에도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쿠바와 미국 플로리다와의 최단 거리는 해안선 기준 160㎞ 정도로 북한에 있는 목선 정도를 타도 하루면 도달할 거리입니다. 그래서 숱한 쿠바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관광업이 중단된 뒤 2021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쿠바인들이 무려 25만 명에 이르는데, 쿠바 인구가 1,100만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인구의 2% 넘는 사람이 적대국인 미국으로 간 것입니다. 이듬해에도 20만 명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쿠바 정부는 미국 밀입국을 시도했다고 처벌하지 않습니다. 북한으로 치면 인구 2,000만 명 중 한 해 4만 명씩 적대국인 대한민국으로 탈북하는데, 처벌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건너가 북한에 보내는 돈을 받을 수 있게 허용하고, 국가가 떼어먹지 않은 것도 상상할 수 없는 파격입니다.

북한이 탈북하면 죽이고, 수용소에 보내고, 한국에 간 탈북자 가족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해도 또 수용소에 보내는 것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심지어 2021년 수도 아바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도 누구도 잡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둘이 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쿠바는 미국 관광객도 어서 오라는 입장이고, 미국 등 자본주의 문화도 폭넓게 허용합니다. 요즘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쓸다 보니 아바나 공연장에선 주말마다 한국 음악에 맞춰 춤 경연대회가 열립니다. 한국을 좋아하는 모임에는 회원이 만 명이 넘습니다.

사회주의 쿠바 사람들도 빠져드는 한국 문화를 김정은은 반동사상이라며 가혹하게 처벌합니다. 아마 자기는 한국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몰래 볼 겁니다.

요즘 쿠바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것을 보면, 지금은 관광업이 중단돼 경제가 좀 어렵지만, 쿠바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김정은은 쿠바와 정반대의 정책을 폅니다. 사회주의식 지방 공장을 매년 20개씩 짓겠다고 하고, 탈북하면 반역자라 처형하고, 쿠바도 손을 내미는 경제강국 한국을 적국이라며 싸우겠다고 으르렁거립니다.

쿠바는 지금 62년의 독재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북한은 3대 세습에 4대 세습까지 하겠다고 기세가 등등합니다.

여러분, 이러니 북한이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침몰하는 배인 줄 알고 탈출하는데, 김정은 하나만 인민을 인질로 잡고 함께 침몰해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사회주의 세습 독재의 화석, 북한의 말로는 그 결과가 너무 뻔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