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은이 지난달, 평양 화성지구에 1만 세대 주택을 또 짓는다고 착공식에 참가했더군요. 색안경을 딱 끼고 나타나 또 아파트 거리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북한이 그럴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평양에 5년 동안 5만 세대를 짓겠다고 공언하고 첫 해에 1만 세대를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에 건설한다고 했는데 그걸 아직 완공 못했습니다. 올해 4월 15일까지 마무리한다고 하는데 그게 계획대로 된다 해도, 첫해부터 모든 역량을 깡그리 쏟아부어도 미진한 공사가 둘째 해에는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런데 저에겐 ‘화성지구’란 지명이 생소해서 행사장 사진과 화성지구 건설 조감도 등을 위성지도와 비교해봤습니다. 그러다 깜짝 놀랐는데 아니, 바로 화성지구 착공식을 가진 저 장소가 제가 대학 때 석 달 동안 죽을 고생을 한 곳이고, 또 북한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런 나라에서 살지 못 하겠다”고 맹세한 장소였습니다. 제가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끼었던 그때 쯤 태어난 청년들이 오늘날 다시 그곳에 모여 과거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의 비인간적 노력동원을 다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설 조감도를 보니 이번 착공식 장소는 순안공항에서 금수산기념궁전 들어오는 도로와 합장강이 만나는 곳입니다. 저는 1995년 12월부터 2월까지 석 달 동안 바로 그 곳의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에 동원됐습니다. 금수산기념궁전 꾸리는 공사의 일환으로 주변 합장강 정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당시 김일성대 외문학부 영문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저의 학년 100여 명은 하필 제일 추운 겨울에 나갔죠. 기숙사에서 저기까지 걸어서 한 시간 넘게 가야 했는데 우리가 가진 작업 도구는 집에서 갖고 나온 정, 해머, 삽, 곡괭이 따위가 전부였습니다.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휴식 공간으로 쓸 움막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꽁꽁 언 땅에 정을 박고 교대로 해머를 휘둘러봐야 겨우 밤톨만 한 흙이 떨어져 나왔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열흘 만에 겨우 기둥을 몇 개 세우고 수십 명이 빼곡히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움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강에 나가 강바닥을 파는데 이건 완전 얼음입니다. 담가(들것) 하나에 담을 흙을 파는데 네댓 명이 달라붙어 한나절씩 걸렸습니다. 학생 간부라서 안 하고, 돈 많은 놈은 뇌물 주고 빠지고, 여자라서 봐주고 하다 보니 실제 일하는 사람은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학생들도 열심히 일할 리 만무했습니다. 더구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기숙사 밥 몇 숟가락을 먹고선 배고파서 일을 할 수도 없었죠. 석 달 동안 일했지만 겨우 강에 가로세로가 5m, 깊이가 사람 키만 한 웅덩이를 하나 파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도중에 최태복 노동당 중앙위 교육비서가 벤츠를 타고 직접 격려하러 온 것이 기억이 납니다.
동원 기간이 끝날 때가 됐는데 과제 수행이 너무 턱없이 미달하니 책임자로 나왔던 교수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뛰어다녔습니다. 결국 몇 km 떨어진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공병국에서 굴착기 1대를 반나절 빌려 쓰기로 했습니다.
조건은 디젤유 100리터와 굴착기 바가지에 담배와 술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도 외제 담배여야 하며 술도 밀주가 아닌 공장술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습니다.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는 부잣집 자식들이 몰려오는 곳이니 돈은 걷으면 어찌 어찌해서 나왔습니다. 철수하기 3일 전쯤에 드디어 군관 1명과 병사 1명이 굴착기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그날 우리는 제방에 앉아 굴착기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우리가 석 달 동안 파놓은 웅덩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큰 웅덩이가 순식간에 파지더군요.
바가지에 술과 담배 막대기를 가득 채우고 돌아가는 굴착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김일성대 학생 100여 명이 3개월 동안 추위에 덜덜 떨며 곡괭이와 해머를 휘두르며 한 일이 굴착기 반나절 작업량보다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이런 무지한 사회는 망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그렇게 강바닥을 많이 팠으니 자랑하고 싶었는지 다음날 조선중앙TV 기자들이 왔습니다. 하긴 각 대학이 분담한 구역 중에선 그렇게 많이 한 구간이 없으니 기자들도 뭔가 소개하고 싶겠죠. 우린 이번엔 옷을 입고 합장강 얼음을 깨고, 남녀 할 것 없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얼음물에 들어가 열심히 삽질해 흙을 파내는 연기를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촬영한다고 벌벌 떨며 연기를 했고 저녁 9시 텔레비죤 보도 시간에 “김일성대 학생들이 충성의 마음을 안고 얼음물에 뛰어들어 강을 파낸다”고 소개됐습니다. 평양도 그땐 늘 정전이라 대다수가 그 보도를 보진 못했는데 몇 명이 보고 어제 연기한 것이 그럴듯하게 나왔다고 말해주더군요. 그 이후부터 북한 TV에서 무슨 물에 뛰어들어 뭘 공사한다는 영웅적 뉴스 나오면 하나도 믿지 않게 됐습니다. 몽땅 거짓 연기일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석 달 동안 추위와 얼음물과 싸웠던 합장강변에 김정은이 1만 세대를 짓겠다며 나타났습니다. 김정은 앞에서 결사관철을 외치는 건설자 중 많은 사람들은 제가 죽을 고생을 했던 1990년대에 태어난 청년들일 것입니다. 결의대회가 끝나면 또 과거 제가 그랬듯이 언 땅에 삽질을 하겠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통치자가 바뀌었지만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삽질하는 백성들의 삶은 한 세대가 지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화성지구 주택 건설 착공식을 보며 26년 전 저 장소에서 “이런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고, 또 망해야 돼”라고 분노했던 젊은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망하지 않고 인민 역시 대를 이어 노예의 삶을 살고 있으니, 저의 분노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