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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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북한에서는 김주애에 대한 우상화가 점점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15일에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서 총 3차례 ‘향도의 위대한 분들께서’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북한에서 ‘향도자’라는 표현은 지도자가 아니면 쓸 수가 없지요. ‘조선말대사전’엔 향도자를 “혁명투쟁에서 인민대중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고 그들을 승리의 한길로 향도하여 주는 영도자”로 설명합니다. 그러니 북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외에 다른 사람을 이렇게 수식할 수는 없습니다. 김여정이나 이설주에게도 절대 쓸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주애에게 썼다는 것은 현재론 내부에서 김정은의 11살 딸을 차기 지도자로 확실하게 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2022년 11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현장에 나타난 주애는 처음 호칭이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1년 반도 안 되는 기간에 ‘존귀하신’, ‘존경하는’, ‘조선의 샛별 여장군’ 등으로 점점 높아지다가 급기야 ‘향도자’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김정은을 배경에 두고 김주애를 부각시킨 사진도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정말 김주애를 차기 여왕으로 키울 생각이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여러 의견들이 엇갈리긴 하지만, 제 의견은 지금 당장 해석해야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 그런가보다’라고 받아들여도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김정은이 딸을 9살 때부터 노출시킨 것이 건강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견해엔 변함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40살도 되기 전에, 9세 자식에게 후계 세습을 준비시켜 자신의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느꼈다면 “내가 죽은 뒤 우리 가문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김정은이 급사하면 김주애는 물론 온 가족이 혼란 와중에 멸문지화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권력을 이양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후계자가 필요하고 그의 권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남성 중심의 북한에서, 5대까지 내려가면 성 씨까지 바뀔 위험을 감수하고 여성 통치자를 내세울 수 있을까요.

김정은은 원하면 언제든 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여러 명이 있으나 너무 어려서 그들이 클 때까지 주애를 과도기적 후계자로 삼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에 따라 김주애라는 여성 통치자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김정은의 생각에 따라 그것은 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딸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김정은이 딸을 너무 사랑한다면 후계자로 삼는 것이 괜찮은 선택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형 김정남을 세계의 면전에서 잔혹하게 독살했습니다. 이모부 장성택도 비참하게 끌려가는 장면을 연출하며 처형했습니다. 그것이 김정은의 뜻일 수도 있지만 김경희와 같은 주변 측근들의 강한 요구에 따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혈육을 죽여야 했을 김정은의 마음이 편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우울한 표정으로 눈동자가 풀렸던 김정은의 표정이 그걸 말해줍니다.

만약 나중에 아들로 후계자로 바뀐다면, 더구나 그 아들의 어머니가 이설주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통성을 가진 본처의 자식들부터 제거하려 들 것입니다. 김정은은 이미 맏형 김정남을 죽임으로써 형제의 피를 손에 묻혔습니다. 과거 역사 속 무수한 왕조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김정은이 딸을 너무 사랑하면 위험을 감수하게 하진 않겠죠. 다른 후계자로 교체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손으로 딸을 죽이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주애에게 권력을 넘기거나 아니면 지금부터 가장 아끼는 자식임을 보여주어 누구도 주애는 감히 건드리게 못하게 하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전 지도자가 가장 아끼는 모습을 동네방네 보여준 딸을 죽이면 다음 지도자가 과연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둘째 이유도 김정은의 체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2010년 10월 새파랗게 젊은 25살의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처음 얼굴을 드러내자 북한 주민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김정은의 경력이나 능력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었지요. 그래서 모두가 “어린애가 알면 뭘 알겠냐”고 수군거렸습니다. 김정은도 여러 차례 참을 수 없는 수모를 경험했을 지 모릅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자신을 무시한다며 숱한 사람을 죽였는데, 어쩌면 김정은은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일 지도 모르죠.

그것이 한에 맺혀 “내 후계자는 불쑥 튀어나오게 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통치자임을 인식시키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이유는 그나마 해외물을 먹은 김정은인지라 5대 세습까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20~3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전문가도 없습니다.

주애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는 최소 반세기를 더 통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북한처럼 사회주의를 사칭한 기형적인 왕조가 그렇게 오래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북한 주민의 마음은 김 씨 왕조를 떠났지만 현재는 극단적 공포통치로 겨우 유지할 뿐입니다.

북한의 경제적 미래도 밝지 않습니다. 김정은은 주애에게 자신이 죽을 때까지만 권력을 관리하고, 나중에 북한을 정상 국가로 되돌리는 부드러운 인계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진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김정은의 판단력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긍정적 희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발 김정은이 제가 언급한 이런 생각을 하길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