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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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시다시피 한국은 3월 9일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서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국민의 힘은 예전에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불리다 지금 국민의 힘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까지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고, 민주당 정권도 권력을 내주게 됐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정당인 국민의 힘과 민주당은 대북정책이 전혀 다릅니다. 민주당은 북한과 대화도 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정책인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에 왜 끌려다니냐, 그냥 북한에서 대화하자면 하고 도발하면 강하게 반격하겠다는 정책이죠.

어차피 문재인 정부 내내 북한이 특별히 경제 지원을 받은 것도 없으니 북한 입장에선 크게 잃을 것은 없다고 봅니다. 경제 지원은 남쪽이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 거절해서 받지 않은 것인데 윤석열 정부라고 해도 김정은이 지원 좀 해달라고 요청하면 해주긴 할 거라 봅니다. 김정은 입장에선 도발하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하는 윤석열 정부가 더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처음 추진하는 일이 청와대 이전입니다. 임기가 시작되는 5월 9일부터는 청와대에서 집권하지 않고 용산에 있는 현재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바꾸어 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걸 두고 한국에선 뭣 하러 돈 들여서 옮기냐 반대한다는 의견과 지금의 청와대는 시민사회에 동떨어져 있으니 용산에 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가자, 말자고 열심히 주장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북한과 한국이 다른 점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 와서 청와대 이전 논란을 보면 대통령이 가겠다고 하면 가는 거지 한국 사회는 뭐 이렇게 규율이 없이 혼란스럽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논쟁과 토론 과정을 거쳐 정책이 진행되니 독재를 막고 합리적 판단으로 결정이 진행되는 겁니다.

아무튼, 윤석열 당선자의 의지가 실행에 옮겨지면 여러분이 아는 청와대는 두 달 뒤면 한국 권력 상징의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청와대 모르는 북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 봅니다. 북한에서 1980년대 말 보천보 전자악단에서 ‘북악산의 노래’라는 것이 나왔는데, 그때 저는 한국의 청와대 뒷산을 어떻게 우리가 노래할 수 있지 싶어 놀란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노래는 금지 노래 항목에 들지 않고 불리는지 모르겠네요.

청와대는 일제 강점기인 1937년 5월 7일 조선총독관저가 경복궁 뒤에 지어지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한국의 대통령이 모두 이곳을 사용하면서 청와대는 지난 70여 년 권력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 청와대는 공원으로 만들어져서 국민들에게 완전 개방될 예정입니다. 청와대 자리에 가서 산책도 하고, 청와대 건물 둘러보다가 뒷산에도 올라가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북한은 과거 청와대 공격을 여러 차례 시도했죠. 1965년에 청와대 인근 집을 하나 접수해서 이곳에서 박격포로 청와대를 포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간첩 4명 중 2명이 체포되고, 2명은 총에 맞고 북에 달아났습니다. 1968년 1월 북한은 124군부대 31명에게 청와대 습격 임무를 주어 남파했는데 전원이 함경도 출신 대원들이었고, 소위 계급을 다 달아서 내려 보냈습니다. 이때는 분계선 철조망도 변변히 없어 쉽게 임진강을 넘어와 청와대 500미터 근처까지 접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만 경찰에게 들켜서 29명이 죽고, 한 명이 투항하고, 한 명은 북한에 살아 돌아갑니다. 투항한 김신조 소위는 한국에서 목사가 돼서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북에서 자랄 때 어느 책에 이 습격 사건을 지리산 인민유격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라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죠. 1968년까지 무슨 유격대가 있었겠습니까. 아무튼 이 사건 이후 북한은 특수부대 파견으로는 한국 대통령을 없앨 수 없다고 판단해 1983년 버마 랑군 폭발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때에도 전두환 대통령은 살아남았습니다. 남쪽은 김일성을 제거하겠다고 시도한 적이 없는데, 북한은 한국 대통령 제거하겠다고 참 부단히도 애를 썼는데 성공 못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을 옮겨가려고 하는 용산은 140년 동안 외국 군대의 주둔지로 사용되던 장소였습니다. 북한에서 용산 하면 미군 기지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용산은 아주 전략적 요충지라 13세기 말 고려에 쳐들어 온 몽골군이 일본 정벌을 위한 병참 기지를 여기에 설치하면서 군사 기지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3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대륙 침공을 노리던 일본군이 다시 용산에 후방 병참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본격 상주한 건 1882년부터인데,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이 용산기지에 지휘소를 세웠고, 이후 청일전쟁 발발 뒤인 1894년 일본군 8천여 명이 상륙해 용산을 조선 진출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번갈아 가며 용산을 각각 해양 및 대륙 공격에 필요한 교두보로 삼은 셈인데, 해방 후 미군이 일본 기지를 접수하면서 주한미군사령부가 여기에 쭉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한국과 미국 사이에 용산 기지 반환 협정이 체결돼, 여기 있던 미군은 평택으로 옮겨가고 용산 미군기지 자리는 시민 공원으로 바뀔 예정이었습니다. 시민 공원 앞에 이제 한국 대통령 집무실이 설치되게 되면 오랫동안 외세 강점의 상징이던 용산이 이제 드디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게 됩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대통령 집무실의 명칭은 시민 공모로 결정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신문 방송에서도 청와대라는 말이 사라지고, 새로 결정된 용산 집무실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겠죠. 청와대는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역사 속 이름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