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에 한국에선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사고가 터졌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인데 1995년 6월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돼 532명이 사망·실종되고 940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은 이를 크게 보도하면서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에선 이렇게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간다고 선전했죠. 삼풍 백화점 참사는 낡은 건물을 무리하게 개조한 것이 원인이었고 이 사고 이후 건설 규정이 엄청 엄격하게 바뀌어 큰 붕괴사고는 없었습니다.
이 참사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저는 한국에 온 뒤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2004년 6월 삼풍 백화점 자리에 아크로비스타라는 최고급 아파트가 건설됐습니다. 저라면 수백 명이 죽은 자리는 께름칙해서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저기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파트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그 아파트에 살았고, 또 그의 부인인 김건희 씨도 같은 아파트에 살다가 나중에 둘이 결혼했습니다. 그걸 보고 저는 참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풍수가들의 논리에 따르면 대통령이 나온 자리는 길한 땅이 되겠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또 수백 명이 사망한 붕괴 참사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통령 당선이 확정돼 아파트를 나오는 윤석열 후보를 보면서 갑자기 평양 평천 아파트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4년 5월 13일 발생한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는 여러분들도 다 아실 겁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나와서 사과까지 했는데, 북한 역사에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사고에 대해 사과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겠습니까.
삼풍 백화점이나 평천 아파트 모두 전형적인 부실시공이 원인이 됐습니다. 평천 아파트의 경우 군인들이 건설을 맡았는데 철근을 거의 쓰지 않고, 저강도 시멘트가 대량으로 들어가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군인들이야 아파트 건설해봐야 떨어지는 게 없으니 공사장에 가면 어떻게 하든 자재를 빼돌려서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
당시 사망자 숫자는 북한이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고 3년 뒤 제가 평양에서 나온 한 북한 간부에게 물어봤더니 300명 정도로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개별 회사가 건설해 파는 아파트는 내부 미장까지만 해주기 때문에 골조만 세워지면 집을 산 사람들이 나머지 집 꾸리기를 하죠. 평천 아파트 역시 완공도 되기 전에 입주 예정자들이 들어가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집에 남아 작업을 하던 가정주부와 노인들, 건설 후속 작업을 하던 군인 수십 명, 개별 가정의 청부를 받은 건설 전문 인력들, 아파트 주변에서 놀던 어린이들, 밖에서 한담을 하던 다른 아파트의 노인 일부 등이 사망했습니다. 아파트 붕괴 현장에선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사망자 시신 수습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사람들부터 구조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그 다음에 잔해를 치웁니다. 그래서 붕괴 사고가 벌어지면 수습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세계의 이런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나라가 유일하게 북한입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굴착기와 차를 총동원해 불과 이틀 만에 붕괴 잔해를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잔해에 묻혀 있던 시신들까지 다 갖다 버린 셈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겁니다.
또 피해자들은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의 경우 사망자는 35만 달러 정도, 부상자는 경중을 따져 평균 10만 달러 남짓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위자료도 보험도 없어 이런 것이 다 무시가 됐죠.
붕괴된 아파트 자리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불과 몇 달 만에 똑같은 아파트가 건설됐습니다. 김정은의 배려로 건설된 아파트란 의미로 은정아파트란 이름을 달았고, 붕괴 전에 아파트를 샀던 사람들에게 다시 분양됐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비명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그 자리에서 살 리가 만무하겠죠. 북한 당국은 유가족들이 김정은의 은정을 거부하고 아파트를 팔고 떠나도 그때만큼은 이를 눈감아 주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은정아파트가 매물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사겠다고 줄을 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양 간부의 말에 따르면, 은정아파트가 엄청난 인기를 끈 이유는 겉으로는 김정은의 지시로 건설돼 튼튼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들은 했지만, 실은 수백 명이 사망해 액막이가 잘된 아파트라고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미신 같은 것을 믿지 않아 수백 명이 사망한 자리에서 살면 액막이가 되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삼풍 백화점 붕괴 터에서 대통령이 나온 것을 보고 놀라긴 했습니다. 만약에 북한에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남쪽 소식을 모르겠지만, 통전부 간부 등 일부 고위급은 이런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삼풍 백화점 붕괴 소식은 북한에서도 40대 중반 이상이면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쉬쉬하면서 “야, 그 남조선에서 500명 넘게 죽은 삼풍 백화점 붕괴 있지?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거기서 이번에 대통령이 나왔대. 우리도 평천 아파트 붕괴 사고 자리가 있지. 그런 터가 엄청 좋은가봐” 이러지 않을까요.
김정은도 한국 언론을 볼 것이니 어쩌면 “지금 평천 아파트 들어가는 놈들 야심가들이니 다 조사해보아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삼풍 백화점 붕괴 터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북한 평천 아파트에서 김정은을 몰아내는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오중석,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