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0일 남쪽에선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됐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여당인 국민의 힘이 참패하고, 야당인 민주당과 야당 성향의 군소정당들이 압승했습니다.
한국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만 찬성하면 헌법도 개정하고 대통령도 탄핵한다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민심은 묘해서 이번에 민주당과 그의 편인 군소정당이 다 힘을 합쳐도 200석에 열서너 석이 모자라게 의석을 결정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될 걱정은 덜었습니다.
민주당은 남북 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은 정당이지만, 이번에 압승했다고 해서 남북 관계가 다시 좋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민주당 정권이 창출한 전임 문재인 대통령도 삶은 소대가리라고 각종 욕설을 퍼부은 김정은이 통일이란 말까지 없애라고 한 지금에 와서 다시 남북 관계를 좋게 가지겠다고 나설 리도 없습니다. 또 민주당이 다수당이라 해도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이 행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국회의원들의 주로 하는 일은 정부를 감시하고 법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국회의원도 만들지만 지방 의회 의원들도 만들어냅니다. 오늘은 이 법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볼까 합니다. 남과 북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비교되는 것이 법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북한을 보면, 정말 무법 국가의 표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과거 탈북했다가 북송됐던 개인적 경험을 떠올려 봐도 그렇습니다. 당시 저는 교화소에 끌려갈지, 관리소에 끌려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사관들은 “너는 김일성대 졸업생이라 훨씬 크게 처벌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넌 서울대 졸업생이라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할 게 뻔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에서도 베이징대를 나왔기 때문에 같은 죄가 더 중하게 처벌된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경력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는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주변 수감자들을 봐도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의 재판으로 선고를 받고 즉시 끌려가기 때문에 경험을 얘기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법이 있다고는 하나 아는 사람은 없었지요. 형사소송법은 법조인들이나 보는 줄 알았습니다. 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책으로 팔지도 않았고,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없었습니다. 설사 법을 알아도 재판정에서 따질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판사나 검사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훨씬 더 중한 처벌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선 김 씨 일가의 말이 곧 법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탈북했다 북송된 사람들만 봐도 김정일이 “관대히 봐주라”고 하면 우르르 풀려났고, 반대면 우르르 교화소로 끌려갔습니다. 김정일이 “사회 기강이 해이됐으니 총소리를 울리라”고 하면 별치 않은 죄로도 공개 총살됐습니다.
유훈통치란 개념은 설명조차 어렵습니다. ‘김일성저작선집’만 봐도 성경만큼 두꺼운 책이 100권 넘습니다. 김정일, 김정은의 말을 적은 책까지 모아놓으면 수십 트럭은 족히 되지 않을까요. 여기선 이 말을 하고, 저기선 저 말을 했지만 상관없습니다. 처벌할 땐 필요한 구절만 인용해 “수령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죄를 만들면 됩니다.
그렇다고 유훈이 절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얼마 전 김정은이 통일이란 단어를 삭제하라며 각종 기념물을 폭파해도 그가 유훈을 위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법 국가에선 법관이 그다지 권세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북한에선 기업들 털어 뇌물을 먹고 살 수 있는 검사 정도만 좀 위세가 있지만, 그들도 당 간부 앞에선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소신 판결이 불가능한 곳에서 판사는 허수아비일 뿐이고, 변호사는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북한에서 살다 한국에 오니 무슨 법이 그리 많은지 놀랄 때가 많습니다.
법이 힘이 있으니 법조인의 위세도 좋습니다. 판검사, 변호사가 되는 게 인생의 성공 잣대가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왔던 20여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점점 더 법이 득세합니다. 뭔 일만 터지면 법을 만들겠다고 떠들고, 정치적 문제도 법원 판결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다가 판사가 총리가 되더니, 검사가 대통령까지 됐습니다. 지금 양당 수뇌도 법조인 출신입니다.
이런 법조인의 전성시대가 일시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법이 많아질수록 법조인의 힘이 빠질 수가 없는데,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장악한 뒤로 법안이 너무나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기준 21대 국회가 발의한 법안이 무려 2만 6,637건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20년 전인 16대 국회에선 1,615건, 그다음의 17대 국회에선 5,728건의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게다가 법안을 많이 만들면 우수 의원이라고 표창까지 합니다. 이런 속도로 새 법들이 나오다 간 법전에 깔려 죽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됩니다.
이번 22대 국회도 임기가 시작되면 엄청나게 많은 법들이 쏟아져 나오겠죠.
한국은 ‘법치국가’라고 합니다. 법은 대통령도 어길 수가 없고, 아무리 세계적인 재벌이라고 해도 어길 수 없습니다. 즉 북한처럼 수령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해 통치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도 너무 많으면 그것도 또 문제이긴 합니다.
남과 북을 비교해 보면 참 차이가 너무나 극명해 놀라울 지경입니다. 같은 민족인데 한쪽은 법이 없어 무법천지이고, 한쪽은 법이 너무 많아 뭘 하나 하려고 해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그것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법치국가가 훨씬 더 좋은 사회인 것은 분명합니다. 법만 지키면 죽을 일은 없기 때문이죠. 수령의 기분에 따라 고무줄 잣대로 처벌받는 북한도 하루빨리 무법 국가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언제면 그런 날이 올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