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인민이 주인이라는 북한의 실체

0:00 / 0:00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 일요일이 노동절이었는데, 노동신문이란 이름을 걸고 전문 궤변만 늘어놓는 그 신문이 1면 사설에서 이런 주장을 하더군요. “자본주의 사회는 1%밖에 안 되는 특권층이 거의 모든 재부를 틀어쥐고 99%의 대중을 억압한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고 인민들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북한 매체의 특성이긴 하지만, 이런 철면피한 선전을 접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옵니다. 한국이 1%가 다 틀어쥔 나라로 매도하는데, 지난해 한국 가구 평균 순자산을 보면 4억1452만 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즉 남쪽에서 평균적 가구는 40만 달러의 자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인 서울은 가구당 자산이 7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억압받는 대중이 70만 달러씩 소유하고 있는데 그 잘난 사회주의 북조선은 어느 수준인가요?

한국은 소득수준으로 볼 때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11억 원으로 100만 달러가 넘었고, 하위 20% 가구의 자산은 1억7000만 원으로 15만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격차는 6.7배입니다. 세상 어느 나라나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격차는 이 정도로 있지요. 북한은 6.7배가 아니라 엄청 더 벌어졌죠. 인구의 20% 이상 차지하는 간부와 하위 20%쯤 드는 탄광노동자의 자산 격차가 6.7배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사회주의만이 사회적 불평등을 없앤다는 황당한 말은 더욱 욕이 나왔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계급제도가 철저하게 고착된 곳이 바로 북한이고, 북한은 1960년대 만든 계급제도가 여전히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김 씨 왕조가 세습되는 것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데, 문제는 북한은 인민대중까지 사회적 지위가 세습되고 있는 극악한 봉건 사회라는 것입니다.

출신성분. 이건 다 알죠. 북한에서 태어나면 기본군중, 복잡한 군중, 적대계급 잔여분자라는 3대 계층으로 구분되고, 이 3대 계층은 상위 혁명가 성분부터 하위 지주, 자본가, 일제관리 자손까지 56개로 자세히 분류됩니다. 이 출신성분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북에 출신성분만 존재합니까. 출신성분이 가로의 씨실이라면, 세로의 날실에 해당하는 사회성분이라는 것이 또 비밀리에 존재합니다. 사회성분은 노동자, 군인, 사무원, 농민이라는 4개 계급으로 구성되죠. 태어날 당시 부친의 직업으로 자녀의 사회성분이 결정되고, 이는 직업상의 신분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성분은 수평적이지 않습니다.

우대 순서로 따지면 첫 번째가 노동자, 이와 비슷한 레벨의 두 번째가 군인, 세 번째가 사무원, 네 번째가 농민입니다. 농민은 상위로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농민의 자식은 90% 이상 농민이 됩니다. 10년 군 복무를 마치고도 다시 농민으로 보내고 대학도 주로 사범대학에 보내 졸업 후 농촌학교 교사로 보내는 등 이 굴레는 철저하게 작용합니다. 수재인 경우 아주 희박한 확률로 굴레를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도시 대학 교원이나 연구사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이 경우에도 나의 사회성분은 여전히 농민이며, 과오 없이 은퇴해야 자식이 사무원의 사회성분을 얻습니다. 군관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식부터 군인으로 바뀝니다.

농촌에서 태어난 남성이 자녀의 사회성분을 바꿀 확률은 5%도 안 됩니다. 특히 농민은 노동자 성분으로 바뀌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농민 중 출신성분이 좋으면 농촌 간부가 되기도 하지만, 고위 간부는 어렵습니다. 지금 중앙당엔 사회성분이 농민인 간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무원은 외교관, 학자, 의사 등이 될 수가 있어 농민보다는 훨씬 좋은 성분입니다. 군인 역시 세습인데 북한군 장령의 대다수가 사회성분상 군인이라고 합니다. 충성도를 검증 받은 장령의 아들이 대를 이어 장령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입니다.

노동자는 상위 계급이지만, 분포도가 매우 넓어 진짜 노동자도 있고, 중앙당 간부도 있습니다. 이는 출신성분에서 갈렸기 때문이죠. 즉 날실은 좋은데 씨실이 안 좋아서 출세 못한 것입니다. 북에서 살면 내가 가로와 세로의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성분 서류는 철저히 간부부와 노동부 담당자 몇몇만 볼 수 있는 최상위 기밀서류이기 때문입니다.

농민은 대를 잇는 노비인데, 왜 이런 신세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토지개혁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해방 후 토지개혁 한다면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었다가 1950년대 후반 협동농장을 만든다며 다시 빼앗았는데 농민들이 격렬히 저항했죠. 그래서 김일성이 농민들은 이기주의자라며 치를 떨어 노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노동자들에겐 줬다 뺏은 일이 없어 반항할 이유가 없었지요. 농민이 노비라면 사무원은 흔들리는 갈대로 취급합니다. 북한에서 사회성분을 거슬러 올라가긴 거의 불가능하지만, 위에 있다가 김 씨 일가의 눈 밖에 나서 노비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예속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3대를 이어 혁명을 한다는 북한의 진실은 바로 이렇습니다. 왕조 독재 권력도 세습하고, 출신성분도 세습되고, 직업까지 세습되는 북한. 운명이 정해진 바둑판 위에서 태어나고 꼼짝할 수 없는 그물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북한이 누구나 원하는 직업 선택의 권리가 있고, 해외여행의 권리가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비난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분노가 솟구칩니다. 북한 독재 체제가 붕괴된 이후라야 비로소 여러분들은 현대판 세습 왕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