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평양에서 열린 골프애호가 경기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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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또 농촌지원 기간이라 모두들 땡볕 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1년에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농촌 동원을 다녔습니다. 영양단지 심기, 모내기 다 해봤는데,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너무 힘들죠. 그나마 가을엔 먹을 것이라도 있지만, 봄에는 정말 주린 배를 움켜쥐고 농촌 동원을 다녔습니다.

한국에 오니 농촌 일은 다 농기계가 하는데, 여긴 정말 농사 편하게 짓는구나, 언제면 북한 사람들도 저렇게 농사를 지을까 싶어 너무 부러웠습니다.

인민들은 이렇게 고생길로 내몰고, 김정은은 또 어디 가서 놀고 있는지, 지난달 18일 국가우주개발국에 갔다가 지금까지 한 달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도자란 사람이 이렇게 게으를 수가 있습니까.

이런 와중에 최근 북한 매체가 보도한 내용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봄철골프애호가경기’라는 것이 평양 골프장에서 열렸답니다. 북한에서 골프를 치려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죠? 여러분들은 골프란 것이 어떤 운동인지 알고 있나요.

저는 북에서 살 때 ‘민족과 운명’이란 영화에서 한국 대통령 박정희가 골프를 치는 장면이 나와서 ‘아, 저렇게 하는 운동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골프공을 멀리 날려서 구멍에 넣는 경기구나, 그 정도만 알았지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선 골프는 철저히 부르죠아 운동이기 때문에 전혀 소개하지도 않고 장려하지도 않습니다. 골프와 함께 또 금지하는 운동이 야구죠.

대부분의 나라들은 야구 경기가 주말 오후나 저녁에 시작돼 4시간 정도 열립니다. 축구처럼 프로팀들이 있고, 주말에 주로 경기가 열리죠.

그런데 북한 당국이 4시간씩이나 주민들이 야구에 정신이 팔리도록 놔둘 리가 없죠. 그 시간이면 일을 시키던가, 하다못해 강연회라도 해서 사상 선전을 해야죠. 그나마 축구는 1시간 반 짜리니까 야구보다 훨씬 짧습니다. 또 축구는 공 하나와 공터가 있으면 다 할 수 있지만, 야구는 그렇지 못합니다. 야구 방망이, 야구공, 글로브 등 장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북한이 인민이 좋으라고 그런 것을 공급할 리가 없습니다. 제가 보니 야구도 축구 못지 않게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야구보다 훨씬 더 부르주아 운동이 골프입니다. 골프는 일단 무조건 넓은 잔디밭에서 해야 합니다. 잔디밭이 하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18개나 있어야 합니다. 사람 먹을 강냉이 키우기도 힘든데, 잔디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관리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북한에는 국제 기준의 18홀 골프장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남포시 강서구역 태성호반에 있는 평양골프장입니다. ‘민족과 운명’에서 박정희가 골프 치던 곳입니다.

골프는 넓은 잔디밭과 함께 또 장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골프를 배우려니 골프채만 2,000 달러 넘게 주어야 합니다. 이외 옷, 신발 이런 것도 필요하고, 카트라고 타고 다니는 전동차도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골프는 웬만한 경제력이 없으면 하기 어렵습니다. 평양골프장은 1987년 4월 15일 김일성의 75회 생일에 맞춰 총련 기업가들이 돈을 내서 만든 것입니다. 누가 골프를 쳤을까요. 김정일은 골프를 쳤습니다. 물론 아주 잘 한 건 아니고 가끔 쳤습니다.

평양골프장의 주요 고객은 조총련 상공인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아시안 게임 등이 열리면 북한 대표라고 선수들이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만히 보니까 모두 40대들이었습니다. 골프도 젊어야 잘 치지 40살이 넘으면 근력이 떨어져서 잘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누구인가 봤더니 모두 조총련계 한량들이었습니다. 일본이야 골프를 많이 치니 일본에서 좀 쳤다는 아마추어들이 북한 대표팀 명찰을 달고 나간 것입니다. 성적은 한심하죠. 문제는 북한에선 그들보다 골프를 더 잘 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번 골프대회에는 코로나 때문에 해외 방문객도 없을테니 누가 나갔을까요. 북한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능력자들의 직업이 뭔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하다시피 골프에는 수천 달러의 장비가 필요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하는데, 일도 하지 않고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얼핏 생각나기엔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있었던 사람 중에 골프채를 좀 만져본 사람이 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니 경기에 출전했다는 사람들의 자세가 너무 엉성하더군요. 저도 누가 “골프는 서서하는 운동 중에 가장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해서 배웠고, 지금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선수란 사람들이 저보다도 못 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저보다 골프 더 잘 치는 사람이 몇 백만 명은 될 겁니다.

아이러니 한 일은 그렇게 골프를 장려한다는 북한이 금강산에 한국 기업이 지은 골프장은 싹 밀어버렸습니다.

아니, 골프장이 뭔 죄입니까. 남이 뺏어가는 것도 아닌데 힘들게 만들어 놨으면 사용하면 되는 거지, 그거 왜 남쪽에서 만들었다고 몽땅 없앱니까.

김정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인데, 같은 이유로 현대가 금강산에서 운영하던 해상호텔도 몽땅 철거해 버렸더군요. 그거 4,500만 달러 들여 만든 건데 한국이 나가면 그냥 쓰면 되지 왜 되지도 않는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몽땅 없애 버립니까. 북한이 풍족한 나라도 아닌데, 김정은은 왜 저렇게 부셔버리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한편으로 또 평양에 건설판을 벌여놓고요.

멀쩡한 골프장은 밀어버리고, 또 인민은 알지도 못하는 골프경기대회를 연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저는 정말 북한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선 인민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죽어라 일하는데, 한쪽에선 골프경기를 벌여놓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북한이야 말로 진정한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