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이 학습해야 할 선대의 실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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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을 어디 가서 푹 놀다 온 김정은이 이번 주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18일과 마찬가지로 또 정찰위성 발사 관련입니다. 요즘 김정은의 관심사는 정찰위성에 온통 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찰위성이 북한에 왜 필요한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한국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북한이 어떻게 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쟁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김정은이 저렇게 쓸 데 없는 곳에 돈을 탕진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망할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봅니다. 인민은 배고파 허덕이는데,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 저렇게 군비경쟁에 돌입하면 북한이 견디겠습니까. 소련이 왜 망했습니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듯, 가난한 소련이 미국과 돈으로 경쟁하려다 제풀에 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찰위성 하나 쏘려면 막대한 돈이 듭니다. 미국 기준으론 정찰위성 한 기에 2억 달러 정도 듭니다. 그리고 정찰위성은 하나만 올려선 의미가 없습니다. 최소 5기는 쏴야 2시간 단위로 감시가 됩니다. 그래서 김정은도 여러 개를 쏘겠다고 하는 것인데, 저런 헛발질로 북한을 말아먹으면 바깥에서야 잘한다고 박수를 쳐줘야죠.

쓸 데 없는 일에 돈을 탕진하는 것은 북한이 김일성 때부터 내려온 전통입니다. 한번 사례를 들어볼까요. 김일성은 특히 70세 이후 잇따른 헛발질로 자기가 만든 북한을 거하게 말아먹고 죽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든다면, 1986년에 완공된 서해갑문 건설엔 6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1970년대 소련 기술자들조차 “안 짓는 게 낫다”고 결론 낸 것을 김일성이 밀어붙였다고 합니다. 담수자원이 늘어나고 남포와 황해도가 연결됐지만 지금 돌아보면 부작용이 더 심각합니다. 얼지 않던 남포 앞바다가 매년 수십 일씩 결빙돼 남포항이 마비되거든요. 물 흐름이 멈춰서 그런 겁니다. 얼지 않을 때도 선박이 갑문을 통과하느라 지체돼 남포항 물류 능력은 확 줄었습니다. 서해갑문은 한강 하구를 갑문으로 막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김일성은 동시에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와 사리원카리비료공장 건설을 밀어붙였습니다. 1980년대 북한 사람들은 두 공장만 건설되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연간 비날론 10만t, 카바이트 100만t, 메탄올 25만t, 질소비료 90만t, 염화비닐 25만t, 가성소다 25만t, 탄산소다 40만t, 단백질 사료 30만t, 카리비료 50만t 등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러면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다고 쉼 없이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공장은 건설비만 100억 달러 이상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공장 모두 한 번도 가동되지 못했죠. ‘산소열법’이라는 카바이드 핵심 생산 기술이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우수환이라는 박사가 실험실에서 석탄과 석회석으로 카바이드를 만들었는데, 과학기술에 무지한 김일성이 대규모 생산은 힘들다는 다른 과학자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두 공장 모두 지금은 폐허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서울올림픽에 대항해 1989년 유치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60억 달러짜리 이벤트 행사로 끝났습니다. 당시 북한의 한해 예산이 40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막대한 돈을 어리석게 탕진하다보니 몇 년 뒤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사태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완공되지 못한 채 우뚝 솟아있는 105층 류경호텔은 1980년대의 실패 사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위의 사례들을 김일성의 탓만은 아니고, 김정일에게도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김정일이 통치하던 때엔 돈이 없어 탕진 못했을 뿐인데, 대신 핵개발에 돈을 탕진했죠.

김정일 사망 1년 전에 노동신문이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 같은 특대형사변’, ‘인공위성이 단번에 몇 개나 날아오른 것 같은 놀라운 소식’이라며 찬양하던 공장이 있었습니다. 함흥시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재가동됐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김정일이 시찰했을 때만 비날론 몇 톤 생산하고 다시 가동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2.8비날론 공장이 가동될 때도 북한은 잘 산적이 없는데 그거 재가동했다고 특대형 사변이라고 떠들고, 숱한 훈장 퍼주고 할 때부터 참 어리석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탕진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짓다가 방치한 원산갈마해양관광단지나 평양종합병원도 사례가 되겠지만, 더 치명적인 실패 사례는 순천인비료공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 5월 1일 김정은은 자신의 사망설을 종식시키며 공장 준공식을 화려하게 열었는데 이게 사기였습니다. 이후 3년 동안 가동된 적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 원인은 황린전기로용 천연흑연전극이 계속 부러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3년째 이 문제를 풀지 못해 인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학공장은 특성상 배관들이 엄청 많은데 가동이 수년 동안 중단되면 배관 부식이 심각해져 사실상 다시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순천인비료공장도 김일성시대 순천비날론의 운명을 따라갈지 궁금합니다.

이런 현실에서도 김정은은 최근 정찰위성을 여러 개 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온통 거기에만 정신을 팔고 있으니 참 답답하지만, 1980년대의 김일성처럼 그렇게 망하는 길을 택하겠다니 그냥 할 말은 없습니다.

비료공장 흑연전극 하나 못 만들면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정찰위성은 제대로 만들지 의문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한숨이 나오는 것은 과학기술분야를 시간을 정한 내기처럼 호언장담하며 접근하는 태도입니다. 김정은은 선대의 실패 사례들을 다시 펼쳐보며 과학기술은 때려죽여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 한 번 실패하면 결과는 치명적이라는 교훈부터 배웠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