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언제 나오나 했는데 김정은 초상휘장이라는 것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이제 북한 인민은 할아버지 김일성은 존재도 몰랐던,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에서 숨겨져 살아야 했던 첩 고용희의 셋째 아들 김정은을 신으로 떠받들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와서 아무리 화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미 북한은 김정은에게 꽉 잡혀 있고, 반항은 죽음이라 노예의 굴레를 벗기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노예의 굴레를 만든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의 부모 세대입니다. 그들의 업보를 지금 여러분들이 받고 있습니다.

‘초상휘장’이라는 것도 왜 생겨났는지를 알면 여러분들은 그걸 달고 다니기 부끄러울 겁니다. 부끄러운 역사의 산물로 ‘초상휘장’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였던 1968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모택동은 정작 그런 지시를 내리진 않았습니다만 당시 홍위병들이 자기들이 모택동을 추종하는 견결한 혁명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모택동 초상휘장을 만들어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일종의 자신이 누구의 편인지 증명하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북한에선 홍위병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니 간단히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1960년대 모택동은 중국을 중공업화해서 7년 내로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내로 미국을 추월한다며 대약진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경제엔 무지했던 모택동은 그런 식으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이걸 본 떠 북한은 천리마 운동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경제란 그런 강압적인 방식으론 전진은 커녕 오히려 급격히 퇴보합니다. 그래서 농사도 다 망쳤는데, 모택동은 자기 위신만 중요해서 인민들은 헐벗고 있는데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 쌀을 마구 퍼줍니다. 김일성이 예전에 ‘뿔럭(블록)불가담운동’을 한다면서 북한도 배불리 먹지 못했는데 아프리카에 마구 퍼준 것과 같습니다.
대약진 운동 기간 최소 3,000만, 최대 6,000만 명이 굶어 죽고 수백만 명이 숙청됩니다.
참다못한 류소기, 팽덕회, 등소평 등 고위 간부들이 단합해 모택동 퇴진 운동을 벌였고, 모택동은 권력자의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런데 모택동은 권모술수 하나는 뛰어나 그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간부들에게서 버림을 받으니, 권력을 잡기 위해 멋도 모르는 젊은 청년들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반동들과 자본주의 세력들이 다시 사회에 침투하는데, 청년들이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연설합니다.
이에 모택동의 신임과 옹호를 받았다고 흥분한 청년들은 중국 곳곳에서 홍위병이란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기분 나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다 잡아다가 재판도 없이 저들 스스로 인민 재판을 하면서 죽이기 시작합니다. 교수, 예술가, 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과 정치인, 기업인들까지 반동으로 낙인찍혀 거리로 끌려 나와 매를 맞고 죽어갔습니다. 6.25전쟁 때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팽덕회는 나중에 국방장관도 했는데, 모진 고문을 받아 망가져 결국 몇 년 뒤 죽었습니다.
팽덕회가 그 정도면 다른 누가 안전하겠습니까. 국가주석 류소기도 홍위병에게 잡혀가 처참하게 고문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감옥에 가서 죽었고, 당서기 등소평도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집단농장에 끌려갔고, 등소평 아들은 고문에 못 이겨 투신자살을 시도해 평생 불구가 됐습니다. 이들은 김일성도 수정주의자라고 타도하라 했습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 학살의 시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정적들을 숙청한 모택동은 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은 뒤 홍위병 운동 중단을 선언합니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죠. 모택동은 홍위병들에게 “젊은 학생들은 농민에게 배워야 한다”고 농촌 하방 운동을 지시합니다. 이 아둔한 집단광기는 이때에도 발휘돼 홍위병들은 줄지어 농촌에 갔는데 그걸로 끝입니다.
이들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야 했고, 반항하는 학생들은 끌려 나가 수백 명 단위로 처형됐습니다. 문화대혁명 때 공식적인 사망자는 170만 명, 비공식적으론 최대 2,0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머리 좋은 지식인들의 씨를 말리다보니 중국은 모든 면에서 수십 년을 후퇴했고, 수천 년 내려오던 찬란한 문명의 유산들도 거의 다 파괴됐습니다.
홍위병들은 그들 스스로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믿었던 중국을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하면서도, 자신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때로부터 50년 넘게 흘렀습니다. 지금도 홍위병 생존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자기 입으로 자기가 홍위병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숨겨야 할 과거였기 때문입니다. 이게 홍위병 사건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아부할 생각에 정신이 나가있던 김정일이 홍위병들이 단 배지를 보고 ‘아, 이거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1970년부터 북한도 김일성 배지를 초상휘장이라고 달고 충성심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홍위병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중국의 모택동 초상휘장은 몇 년 안 돼 없어졌지만, 북한은 지금 반세기 넘게 아직도 홍위병의 유산을 충성심의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어느 나라도 그런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걸 달지 않으면 거리에서 단속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아직도 북한에선 김 씨네 초상화, 초상휘장 등을 구한다고 불 속에 뛰어들고,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그것부터 꽁꽁 비닐에 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김정은 독재정권이 붕괴되면 여러분은, 과거 홍위병들이 그랬듯이 김정은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던 시절을 너무나 부끄럽게 여길 겁니다. 중국의 미친 광기는 불과 10년도 채 가지 않았지만, 북한의 광기는 8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김정은 초상휘장은 광기의 시대의 상징이자 유물이며, 지금은 여러분이 그에게 종속된 노예임을 보여주는 낙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