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6·25전쟁 러 조종사 참전 인정한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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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7월 27일은 북한에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 또는 전승절이라고 하고 이날을 명절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정전협정 체결일이라고 부르고 이날 쉬거나 또는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진 않습니다.

이번 주 내내 북한은 이날을 계기로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켰습니다. 노동신문을 보니 “우리 공화국은 세계 최강을 호언하던 미제와 그 추종세력과의 대결전에서 승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선전이 아닌 북한이지만, 사실 전승절은 거짓말의 압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6·25전쟁을 북한은 미제가 일으켰다고 하는데, 실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했습니다. 이건 우방국이라고 하는 중국이나 러시아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지금까지 공개된 비밀자료를 보면 전쟁 준비 과정도 너무 자세하게 잘 묘사돼 있습니다. 한국전을 일으켰다고 하는 미제는 1950년에 한국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모두 7만 명이었지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군은 1949년 6월 30일부로 전부 철군했고, 군사고문단 500명만 남겨놓았습니다.

철수할 때 미국은 심지어 땅크, 대포, 군함, 비행기 등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시 가지고 나갔습니다. 비슷한 시기 소련군도 돌아갔는데, 소련은 비행기와 땅크, 포 등을 모두 인민군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6·25전쟁이 시작될 때 북한은 당대 최신의 전차인 T-34를 몰고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보유했던 땅크는 258대로, 이 기갑 무력은 당시 아시아 최대였습니다.

반면에 한국에는 당시 땅크는 한 대도 없었고, 심지어 땅크를 막을 대포도 없었습니다.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포가 가장 직경이 큰 것이 57㎜였는데, 철갑탄도 없어서 북한군 전차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병력도 2배, 공군과 해군 모두 한국군에 비해 압도적이라 결국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까지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인데 지금까지 북한이 계속 미제의 선제공격이었다고 선전하니 북한 사람들은 그걸 사실로 믿습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 중에는 6·25전쟁이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전쟁의 참화가 가신 지도 벌써 71년이나 됐습니다. 이젠 북한 사람들도 먹고사는 생각만 하다 보니 전쟁을 누가 일으켰던 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심지어 “북침이든 남침이든 뭐가 중요한데. 지금 우리가 먹고 사는데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사람도 많습니다. 벌써 3대 세습이 이뤄지고 4대 세습을 준비 중이고 북한 주민들은 세습 정권의 노예로 전락했는데 71년 전에 전쟁을 누가 일으켰냐를 가지고 따지는 일은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요. 오히려 왜 6·25전쟁에서 한국이 이기지 못하고 지금 분계선에서 주저앉아 우리 팔자가 이 모양이 됐냐고 따질 사람이 더 많지는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6·25전쟁의 진실을 통해 김일성 시대부터 여러분이 얼마나 거짓말에 속고 살았는지를 알 필요는 있습니다. 옛날부터 거짓말을 했는데 지금 얼마나 더 잘하겠습니까.

지난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우리 조종사들이 수만 번의 전투 비행을 했다”고 말입니다.

1990년대 초반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에 6·25전쟁 관련 비밀문서 300개를 보내준 적이 있지만, 러시아 대통령 입에서 6·25참전 사실을 시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소련의 비밀문서에는 6·25전쟁 기간 소련 조종사들이 중국 지원군 복장을 하고 단동과 심양 비행장에서 모두 6만 3,229회 전투 비행을 했고 연합군 전투기 1,309대를 격추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물론 미군 비행기 떨어진 것보다 러시아 미그 15기는 더 많이 떨어졌죠.

그런데 이런 사실이 북한의 어느 책에 실려 있습니까. ‘인민들속에서’ 등의 서적을 보면 김일성이 북한군 조종사들의 공중전을 봤다는 내용들이나 잔뜩 실려 있었습니다. 북한 조종사들은 6·25전쟁 초기에 반짝 참가했다가, 이후 막강한 공군력을 가진 미군이 참전하면서 다 추락해 후퇴 이후엔 북한 공군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6·25전쟁에서 소련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상전을 도맡은 중국은 중국군 참전 숫자를 60만 명에 사상자 15만 명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크게 축소한 것입니다. 1953년 5월 중국군이 최대 규모였을 때 135만 명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참전 연인원으로 따지면 200만 명은 넘게 참전했고, 사상자는 20만 명 이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1953년 5월에 중국군이 135만 명이 참전했을 때 북한군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10만 명 미만이었습니다. 가장 치열했던 서부, 중부 전선은 중공군이 다 맡았고, 북한군은 동부 몇 개 고지에서만 싸웠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자랑하는 것이 고작 1211고지 전투나 351고지 전투밖에 없는 겁니다. 38선 부근에 고지가 수백 개가 있는데, 그 두 개 고지에서만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북한군이 하도 규모가 작으니 김일성은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펑더화이)한테 가서 시키는 대로 하는 처지였습니다. 이랬던 북한이 6·25전쟁을 김일성의 영군술이 나은 승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번 푸틴 방북 발언을 통해 “어, 6·25전쟁 기간 소련 공군 조종사들이 수만 번 참전했어?”라고 놀랐다면,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이 얼마나 거짓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길 바랍니다. 거짓말에서 헤어나는 첫 번째 걸음은 의심부터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의심을 하다보면 북한의 선전이 모두 새빨간 거짓말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