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서울살이] 300명 숙청, 해산된 평남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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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8일 서울은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115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장마철 한 달 동안 내릴 비가 몇 시간 만에 내린 것입니다. 서울 동작구는 1시간 강우량이 141.5mm를 기록했는데, 이건 5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폭우라고 합니다.

지대가 낮은 강남, 영등포, 동작구 등이 갑자기 물에 잠겼고,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물에 잠긴 차량만 1만2,000여 대나 됐고, 14명이 사망 실종됐습니다.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이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인구밀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망, 실종자 숫자가 많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인명피해에도 한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마 평양에 5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니 100년에 한 번 올 수 있는 폭우가 내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수천 명이 사망했을 겁니다. 2008년 평양에 홍수가 나서 몽땅 잠겼던 것도 100년에 한 번 오는 홍수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이 이 정도면 북한이라고 무사했겠습니까. 서울만큼 오지는 않았지만, 평양도 폭우로 대동강이 인도까지 넘쳐나 낮은 지대가 물에 잠긴 모습이 티비에서 나왔습니다. 북한 중앙TV에선 홍수를 철저히 방지하라고 주문했지만 가난한 북한은 홍수를 피해 갈 능력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저의 북한 내부 정보원에 따르면 8월 폭우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평양 인근의 탄광, 광산이었는데, 특히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탄광과 회창군 회창광산 등이 침수돼 광산 노동자와 주민 등 500여명이 사망·실종됐다고 합니다. 매년 홍수를 겪는 북한에선 이런 인명 피해가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지역은 7월 말 호우에도 수많은 갱도가 물에 잠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득장탄광은 북창화력에 석탄을 대는 핵심 탄광인데, 이곳이 침수되자 평양 전기 사정이 급격히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당장 탄광을 살려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숱한 인력이 동원돼 복구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와중에 기록적 호우까지 겹쳐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이 보고되면 간부들이 무사할 리가 없겠죠. 그래서 평안남도 당 간부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 상황을 축소해 보고했는데 이게 김정은의 ‘조사장악선’에 의해 발각됐다고 합니다. 아래 간부들의 보고를 신뢰할 수 없는 김정은은 ‘조사장악선’이라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는 비밀 조직을 가동하고 있는데 북한의 대다수 간부는 이런 것을 잘 모릅니다.

화가 불같이 난 김정은은 즉시 평안남도 시·군당 일군 회의를 소집했는데, 회의장에서 평안남도 최고 책임자인 도당 책임비서와 2인자인 조직비서, 선전비서 등이 체포돼 끌려갔다고 합니다. 피해지역 책임간부들까지 포함해 회의가 끝났을 때 체포된 간부들이 무려 300여 명이나 됐다고 들었습니다. 하긴 숙청하는 거야 북한이 전문이니 300명은 아무것도 아니겠죠. 거기서 끝나지 않고 김정은은 평안남도 당위원회를 해산시키고 중앙과 각 지방당 조직에서 간부를 선발해 새 도당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회의 도중 김정은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노동당의 이인자 조용원 조직비서가 통솔하는 조직지도부 역시 산하 당 기관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호된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용원 조직비서는 김정은을 대신해 각종 회의를 주재하는 등 북한에서 김정은 패밀리를 제외하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결국 집사의 신세일 뿐이죠. 다행히 그는 해임되진 않았습니다.

이어 이달 4~5일 이틀 동안 평양에선 국가재해방지 사업총화회의가 열렸는데, 북한 TV가 방영한 영상 속에서 김정은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더군요. 하지만 김정은이 아무리 격노하고,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숱한 간부들을 체포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의 자연재해는 경제난이 만든 인재이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의 강하천 관리는 사실상 방치됐습니다. 하천 관리 기업소들이 보유한 차량과 굴착기 등 장비는 장부에만 올라있는 고물이 태반입니다. 김정은이 매년 거창하게 벌여놓는 평양 건설 등 각종 공사판에 동원할 장비와 연료, 인력이 부족한데, 강하천 관리에 투자할 간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뙈기밭 때문에 벌거숭이가 된 산은 비만 조금 와도 무너져 내려 북한은 폭우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2년 전 태풍 ‘마이삭’ 때에도 검덕지구에선 수천 채의 집이 홍수로 사라졌습니다. 강원도 김화군에선 임남저수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긴급 방류를 시작했는데, 수천 명의 김화읍 사람들이 이를 피하려 뒷산에 올라갔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한 민둥산이 붕괴되는 바람에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수천 명이 사망하고 1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2016년 함북 북부 지역 홍수, 수천 채의 집이 파괴된 2015년 나선시 홍수 등 북한의 폭우 피해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국가재해방지사업총화회의 직후인 8일 김정은은 동서해 연결 대운하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한국도 이명박 정부 시절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내놓긴 했는데, 이는 강바닥을 파내 운하로도 쓰고 홍수도 막겠다는 방안입니다. 김정은도 그걸 타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운하 건설이 오히려 더 큰 홍수를 부른 사례도 많습니다. 북한의 우물 안 수리학계 수준도 미덥지 않지만, 김정은의 의도에 반해 말할 수 있는 과학자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일 큰 문제는 북한에 운하를 건설할 힘이 있을지 여부입니다. 치산치수, 그것도 국력이 받쳐 줘야 잘 할 수 있습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공연히 더 많은 인민을 못살게 만들기만 할지 걱정이 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