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사회주의 협동농장, 한국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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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옛날부터 “한 해 농사 마무리했다”고 하면 그 해가 다 지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지금이 바로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농작물 가을걷이도 이젠 거의 다 끝났을 것 같고, 탈곡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때입니다.

올해 북한의 작황은 어떨까요. 북한에 식량이 많으려면 전체 식량 생산의 70%를 담당한 황해도와 평안도 농사가 잘 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4월과 5월엔 기록적인 가뭄이 닥쳤고, 6월과 7월에는 홍수로 피해를 봤습니다. 그래서 식량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높을 것 같지는 않은데, 북한 매체의 보도를 보면 마치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황해남도에 새 농기계 5,500대가 지원된 이후 북한 매체들은 그것 때문에 농사가 잘 된 것처럼 연일 보도합니다.

“연일 볏가을을 계획의 150% 이상 해제끼고 있다”거나 “포전에서의 낟알 털기 비중이 이전보다 4배로 증가했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는데, 그래도 차마 새빨간 거짓말을 하긴 싫었는지 가을걷이나 낟알 털기가 빨리 끝났다고 하지 풍년이 들었단 얘기는 없습니다. 가을걷이가 빨리 끝나선 뭐 합니까. 탈곡이 빨리 끝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논밭에 심은 곡식이 잘 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닙니까. 그것만 잘 돼도 탈곡은 천천히 해도 됩니다. 오히려 작황이 좋지 않으면 가을걷이나 낟알 털기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농촌에 보내주었다는 농기계를 보니, 기계 반, 사람 반의 힘으로 작동하게 된 것이더군요. 벼를 자르는 앞의 날은 휘발유 발동기로 동작하고, 이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힘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반자동인데, 저는 그걸 보면서 5,500대를 가동시킬 기름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3년 가까이 봉쇄가 이뤄지면서 북한 내부 휘발유 사정이 바닥인데, 저런 농기계를 돌릴 기름 역시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보내준 선물 기계이니 무조건 가동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다른 곳에 쓸 휘발유를 탈탈 털어서 그걸 돌려야 하는 것이 북한입니다.

농기계를 군수공장에서 만들어 보내줬다는데, 휘발유도 인민군 전시 예비용 연료를 턴 것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돌려서 쓴다 쳐도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북한 농촌은 사실 5,500대는 간에 기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농기계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농장이라면 필수적인 것이 트랙터인데, 매 농장마다 보유한 트랙터가 몇 대나 있을까요. 제가 지난주에 애기봉전망대라는, 맞은편에 북한이 훤히 보이는 산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북한을 살펴봤습니다. 그 전망대의 한강 건너편이 개풍군인데, 전망대에서 북한 쪽까지 거리는 1.3㎞ 정도 됩니다. 물론 망원경으로 보면 개풍 일대가 훤히 다 보입니다. 망원경으로 보니 최전방을 지키는 민경들은 초소 꼭대기에 옥수수를 말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 뒤쪽 논밭에선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논에 들어가 볏단을 들고 길옆으로 나르고 있었습니다.

벼 가을이 끝나서인지, 아님 그곳이 황해남도가 아니고 개성에 포함된 지역이라 그런지 김정은이 보내줬다는 그런 농기계는 한 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발목이 푹푹 잠기는 논에 들어가 볏단을 나르는 학생들을 보니 제가 예전에 북에 살 때 가을마다 농촌 동원을 가서 저렇게 볏단을 나르던 기억이 났습니다. 북한의 농사 방법은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 농촌 풍경이 매우 정겨운데, 남쪽에 온 뒤 서울에서 살면서 건물이 많아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서울 중심부 직장으로 출퇴근이 가능하면서도 농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김포공항으로 나가는 쪽에 아파트를 발견해 살아봤습니다. 그 아파트 앞에 서울의 마지막 논이 있었거든요. 한국에선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관찰해보니 몽땅 기계였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이 논에 들어가 걸어 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을엔 콤바인이 쭉 지나가면 볏짚은 뒤에 떨어지고, 벼는 콤바인 안에 찼다가 차에 자동으로 옮겨집니다. 논에 떨어진 벼를 다시 기계가 와서 일정 크기로 비닐로 둘둘 맙니다. 궁금해 알아보니 그 안에 효모를 넣어서 발효시킨 뒤 소 먹이로 쓴답니다.

이렇게 콤바인과 벼를 싣는 큰 양곡 차량, 볏짚 정리 기계가 셋이 가동되니, 북한 같으면 100명 넘게 하루 종일 매달려 낫으로 가을 할 면적이 반나절에 사람 두셋으로 끝납니다.

이후에도 농촌들 다닐 때마다 유심히 살펴보니 여긴 매 농가마다 농기계가 몇 대씩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정말 잘 산다고 감탄하다가 문뜩 든 생각이 콤바인 같은 기계는 1년에 하루 이틀 쓰면 끝인데 그걸 굳이 비싸게 사서 갖고 있으면 낭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알아보니 역시 시장경제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과거엔 농사짓는 집들이 저저마다 농기계를 장만했지만, 이젠 농기계도 필요할 때 빌려 쓰는 체계가 다 있었습니다. 농기계은행이란 곳에만 전국적으로 7만 대가 넘는 기계를 갖고 있습니다. 트랙터나 운반 차량 등 자주 쓰는 농기계는 집에 보유하되, 어쩌다 쓰는 수확기나 지게차 이런 것은 은행에서 쓰고 싶을 때 빌려 씁니다.

이게 얼마나 편리합니까. 한국의 농촌 체계를 들여다보니 여기야 말로 사회주의 협동농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북한은 어떨까요. 봉건 왕조의 중세시대 농사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봐야 할 듯 합니다.

국가 통치 체계가 왕조 체계이니 농사 방법도 왕조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농민들이 편해지려면 결국 시장경제 밖에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