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부끄러운 평양 지하 궁전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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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하마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뜬금없이 북한 땅굴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밀고 들어가면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땅굴에 숨어 버립니다. 가자 지구에 파놓은 땅굴의 총연장 길이는 500㎞가 넘는데, 이것이 북한 기술로 건설됐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나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북한이 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대단한 땅굴 건설 실력을 갖고 있는 줄 알겠네요.

북한의 굴 뚫는 실력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한 번 더 이야기해 봅시다.

공교롭게 북한이 최근 지하터널을 자랑하더군요. 지난달 노동신문은 평양 지하철이 개통 50주년을 맞았다며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민의 지하 궁전, 지하 평양을 일떠세워준 어버이 수령들의 하늘같은 은덕을 잊지 말라”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하 궁전의 확장은 35년 전에 멈춰 서 있는 상태입니다.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0년 동안 총연장 34㎞의 2개 노선과 17개 역을 만들었는데 이후엔 더 건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 지하철은 대동강을 건너지 못하는 반쪽짜리이기도 합니다. 대동강 남쪽의 동평양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통에서 소외된 2등 시민이라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대동강 관통 노선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하저터널이 붕괴돼 100여 명이 죽는 참사를 포함해 다섯 차례의 시도에도 끝내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돈이 없어 평범한 지하철 연장 작업도 못 하는 지금 실정에선 하저터널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지요.

한국에는 북한이 서울 지하철까지 연결하는 비밀 땅굴을 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자면 서울과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개성공단 인근에서 시작해 약 40㎞나 남쪽으로 조용하게 파들어 와야 합니다. 대동강 하저도 뚫을 기술이 없는 북한이, 한강이나 임진강 바닥을 폭약도 안 쓰고, 삽과 마대로 파서 넘었다는 이야기인데, 가능한 얘기일까요.

난제는 그뿐이 아닙니다. 숱한 버력(암석)은 어떻게 처리하며, 수십㎞ 밖에서 땅굴의 물을 퍼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양수기는 어떻게 감출 수 있을까요. 군사분계선 이북을 손금 보듯 하는 한국이 그걸 모를 리가 없습니다.

1983년 탈북해 땅굴 관련 증언을 남긴 신중철 대위 이후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더 왔지만, 땅굴을 파는데 동원됐거나 또는 사돈의 팔촌 중에 관여했다는 증언도 없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 중에서도 북한이 판 땅굴 정보를 알려준다면 한국에선 아마 몇백만 달러의 포상금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남쪽에선 북한이 판 땅굴이 모두 4개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땅굴은 1990년에 발견되긴 했지만 굴착 형태를 통해 다른 땅굴과 건설 시기가 같은 1970년대 판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김일성은 베트남(윁남) 전쟁에서 미군이 땅굴 때문에 고전하자 적의 배후에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파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파들어 오던 땅굴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남방한계선조차 넘지 못하고 발각됐습니다. 가장 많이 내려온 것이 군사분계선에서 1.5㎞ 정도 더 내려왔는데, 이것도 남방 한계선을 통과 못했죠.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오면 폭약 소리나 함마 두드리는 소리가 다 들리게 됩니다.

땅굴의 용도는 선제공격용입니다. 북한이 남침으로 한국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고작 1970년대 중반까지였습니다.

이후엔 한미연합군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선제공격으로 남침한다는 꿈을 접은 지 오래지요. 금강산발전소 건설을 위해 45㎞의 도수터널(산, 강 밑을 굴착해 낸 터널)을 판 것이 마지막 대규모 땅굴 건설이었는데 군단급 병력이 1996년까지 10년 동안 동원됐습니다. 이때 2만 5,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증언도 있는데, 그게 과장됐다고 쳐도 최소한 수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것은 여러분들이 다 아실 겁니다. 북한의 땅굴 기술은 이미 수십 년 전 수준에 멈춰 있습니다. 백두산 선군 발전소 건설할 때도 함마와 정대로 파들어 가는 방식은 그대로였습니다.

지난해 10월 김정은은 동서 대운하를 파겠다고 전 세계에 큰소리를 쳤지만, 실제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정이니 최근까지 열심히 땅굴을 판 하마스가 오히려 북한에 땅굴 건설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세계에서 땅굴을 가장 잘 파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한국처럼 면적당 터널 숫자가 많은 나라도 없습니다.

서울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고 고층 건물이 꽉 찬 도시의 하부에는 지하철 터널이 겹겹이 거미줄처럼 건설돼 있습니다. 평양 지하철 정도가 지하 궁전이면, 서울은 지하 천국입니다. 오랜만에 어딜 가면 못 보던 지하 차도가 뚝딱 건설돼 있어 놀랄 때가 많습니다.

길이가 50㎞가 넘는 지하 터널도 한 개 건설사가 달라붙어 41개월 만에 완공합니다. 한강 밑을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을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강도 아닌 서해와 남해 바다 밑 80m 지하에 10리~20리씩 해저 터널도 많이 건설됐습니다.

지금도 서울 지하 40~50m 깊이에 최고 시속 200㎞로 열차를 달리게 하는 급행 철도 노선이 3개나 뚫리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횡단하는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강원도 구간은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고, 빙빙 돌지도 않고 직선으로 쭉 가게 만들다 보니 70%가 터널과 교량으로 돼있습니다. 직경이 14m나 되는 거대한 굴착 기계가 폭약도 안 쓰고 굴을 쓱쓱 파들어 가는 것을 보시면 아마 혀를 내두를 겁니다.

아직도 6.25전쟁 때 갱도 만들던 식으로 함마와 정대로 굴을 파다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북한을 보면 참으로 안쓰럽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