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분단, 민족의 분단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사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손을 맞잡고 넘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사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손을 맞잡고 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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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 한국에선 대통령 후보 경선이 마감돼 차기 대통령 후보가 두 명으로 압축됐습니다. 한나라당이 전신인 국민의힘에선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 후보가 선출됐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선출됐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내년 3월에 열려 5월부터 임기를 시작합니다. 대통령 선거까지 넉 달이 남았습니다. 판문점 회담 등으로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넉 달 뒤 사실상 끝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북한도 별다른 호응이 없고 미국과 중국 등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지금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이 뭔 이야기를 하던 관심 없고 이미 머릿속으로 이재명이 도움이 될까, 윤석열이 도움이 될까 이런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것입니다.

두 대선 후보의 대북 공약을 보면 파격적이라고 볼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고, 윤석열 후보는 비핵화 진전에 따른 단계별 남북 화해 정책을 펼치겠다고 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김정은 처지에서 볼 때 전혀 구미가 당길 만한 매력 포인트는 없어 보이는데 사실 지금 상황에선 어떠한 파격적인 대북정책 공약을 내놓아도,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김정은이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번 정권에선 김정은의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고 이름이 붙은 대북정책을 추진하자, 보수 정부에는 별다른 기대도 없던 김정은이 판문점에 나타났고 멀리 싱가포르, 베트남까지 행차하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열지도 못한 데다 대북제재는 더 강화됐고 대북지원을 받은 것도 없습니다.

물론 작년부터 코로나가 퍼지자 김정은은 이를 구실로 내걸어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 국경 문을 꽁꽁 닫았습니다. 결과 2년 동안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 등 우방국과의 교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죠. 어느 국가가 뭘 주고 싶어도 김정은은 받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김정은이 3년 전에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은 인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의지보다는 자기 권력의 안전을 어떻게 유지할지 그게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체제 안전 담보를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데는 한계가 있으니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에 잘 보여 불가침 협정을 맺으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잘 안됐습니다.

처음으로 국제 외교에 나선 김정은은 자기가 세상에서 얼마나 힘이 없는지, 세계가 자기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를 알게 됐을 겁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 문을 닫아 매고 죄 없는 백성들만 못살게 굽니다. 원래 무능하고 자존감이 낮은 가장이 밖에선 큰 소리도 못 치고 집에 들어가 힘없는 아내나 아이들만 화풀이로 때리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사는 법입니다. 남쪽에서 누군가 새롭게 대통령이 돼도 김정은은 또 망신당할까봐 나오기 무서울 겁니다.

그런데 사실 남쪽 사람들도 대북 관계에 큰 기대가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뭘 해도 김정은이 왼새끼를 꼬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아무리 좋은 협정도 지켜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지난 수십 년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공전하는 남북관계를 보면서 아니, 현상 유지도 안 되고 더 어긋나는 남북관계를 보면서 남쪽 사람들도 슬슬 지치기 시작합니다. 아니, 왜 대북정책은 우리만 펴는 거지? 왜 우리는 잘해주려고 해도 김정은은 계속 엇서나가는 거지? 왜 대북지원 해 주려 해도 거지처럼 살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받지 않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저는 차라리 남쪽에 대북정책이 없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북한은 위대한 김정은 주의를 내걸고 공산주의를 만들어서 잘 살아라. 우린 상관하지 않고 우리 길을 가겠다" 이렇게 살면 안 됩니까. 왜 남쪽만 수십 년 넘게 북한을 짝사랑하며 먼저 구애를 해야 합니까. 남녀의 사랑에서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늘 양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쪽이 세계 10위 국력을 갖고도 수십 년 북한을 향해 짝사랑하며 뺨을 맞아도 참고 웃어주며 손을 내미니 세상에서 손꼽히는 빈민국인 북한이 버릇이 잘못 들어 자기가 주인인줄 압니다. 그런 북한을 이젠 무시할 때도 됐습니다. 남쪽을 향해 도발하면 화끈하게 응징하고, 좀 도와 달라 손을 내밀며 그때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독일 통일의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분단되자 서독 정부 역시 남쪽 정부와 똑같은 고민을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면 동독의 반발을 사서 평화가 지켜지지 않겠지, 그렇다고 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보다 무책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서독 정부는 국토의 분단은 인정하되, 민족까지 분단될 수는 없다는 통일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동독 정부는 국가로 인정하되, 이산가족 교류와 같은 왕래는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정책이었고 정부가 여러 번 바뀌어도 이를 고수했습니다. 결과 민족의 끈이 끊어지지 않으니 마침내 통일을 한 것입니다.

남북관계도 이제는 분단을 인정하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민족의 동질성을 인정하는 일은 계속 추진하면 좋겠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남쪽에 북한을 향해 계속 일방적으로 짝사랑했는데 김 씨 일가는 거짓으로 유지하는 체제가 무너질까 봐 계속 남쪽의 손길을 거부했습니다.

이제 남북 관계는 "그렇다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로 바뀌는 것도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한은 점점 가난해져 파산상태로 몰리고 있습니다. 남쪽의 손을 잡을지, 상대의 뺨을 치고 불쌍한 인민들을 굶주리게 만들며 계속 파산의 길로 갈지 김정은이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오중석,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