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어떤 속내인지 갑자기 7일 저녁에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16강 전을 중계했네요. 조별리그는 아예 한국을 “그 밖의 한 개 팀”이라고 하더니 어찌된 일인가요. 이건 김정은의 지시가 없으면 방영할 수 없으니, 김정은이 보여주라 했을 겁니다. “우리 북한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2대1로 졌는데 남쪽은 4대1로 지니 우리가 더 세다”는 식의 우월감을 드러내려 했던 것일까요, 아님 북한에서도 누구나 관심 있는 브라질 경기를 중계하지 않으면 어차피 한국이 16강에 올라간 것이 다 알려질 것이니 어쩔 수 없이 한 것일까요.
그런데 북한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7대0으로 패했습니다. 한국은 이번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2대1로 이기고 16강에 올라갔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2번 만나 모두 이겼습니다. 그렇다고 세계 랭킹이 지금 9위인 포르투갈은 절대 약팀이 아니고 매우 강한 팀입니다. 호날두라는 걸출한 스타가 아직도 건재해 뛰고 있는 팀인데, 한국에는 지긴 했지만 같은 조인 우루과이와 가나는 이겨서 조 1위로 16강에 올랐고, 16강에서 스위스를 6대1로 대파했습니다.
한국은 16강에 가서 하필 세계 1위 브라질과 붙게 됐으니 운이 별로 좋진 않은 거죠. 브라질은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 나라죠. 그런 브라질도 역사상 최고 비극으로 꼽는 두 번의 참패가 있습니다. 1950년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에서 우루과이에 패한 마라카낭의 비극인데, 이때 20만 명이 경기장에 들어가서 지금도 기네스북에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한참 아래라고 평가됐던 우루과이에 2대1로 졌습니다. 그때 경기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 권총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막 나타났습니다. 12년 전 북한과 포르투갈 경기 때에도 북한에서 생중계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장성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열렸는데, 준결승에서 브라질이 독일에 무려 7대1로 졌습니다. 브라질 축구가 7실점이나 한다는 걸 상상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것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그런 참패를 당하다니 브라질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그럼 브라질에 수모를 준 독일은 또 어떨까요.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은 브라질을 이기고, 결승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이기고 우승컵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4년 뒤 러시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당시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에 져서 예선 탈락했습니다. 당시 지난 시즌에 영국 프로리그 득점왕이 된 세계적인 선수 손흥민의 골을 앞세워 한국은 독일을 2대0으로 이겨버렸습니다. 한국에 져서 독일이 예선 탈락한 것은 대이변이었는데, 2018년 월드컵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은 이번에는 일본을 만나 2대1로 져서 그 여파로 또 조별리그 탈락했습니다. 브라질을 7대 1로 이겼던 독일이 한참 낮게 평가하던 아시아 두 국가 한국과 일본에 연이어 져서 두 차례의 월드컵을 모두 망친 것입니다. 독일에 대패했던 브라질은 전열을 가다듬어 세계 랭킹 1위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이래서 축구공은 둥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조별리그에서도 서로 물리고 물려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을 이긴 가나를 이긴 우루과이를 이긴 포르투갈을 이긴 대한민국.” 이 나라는 이기고 이 나라는 져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결국 16강에 올라간 우리가 승자죠.
아시아에서 8강까지 간 나라는 우리 민족밖에 없습니다. 2002년 한국의 4강, 1966년 북한의 8강입니다. 물론 1966년은 16개 국가가 참가해서 조별리그 통과가 곧 8강이긴 했죠. 지금은 32개 국가가 참가하니 조별리그 통과해서 한 경기 더 이겨야 8강입니다.
축구란 것이 참 힘이 큽니다. 월드컵에 나간 국가는 물론 나가지 않은 나라들도 다 열광하면서 보지요. 그래서 세계인의 축제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축구 때문에 전쟁도 일어나고 전쟁이 멎기도 합니다.
1969년 북중미 예선에서 주먹다짐으로 가면서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축구 경기는 양국 국민들이 격앙돼서 서로 살인까지 불사하며 싸우다가 그해 엘살바도르가 전격적으로 온두라스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나흘 동안 벌어져서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양측 합쳐서 3,0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축구 때문에 평화가 온 사례 역시 엄청 많죠. 다 이야기할 시간은 없지만, 2006년 월드컵에선 코트디부아르팀 주장인 디디에 드로그바가 내전 중인 모국의 현실이 슬퍼서 경기 기간만이라도 싸움을 중지해 달라고 카메라 앞에서 애원했습니다. 결국 그의 노력을 받아들여 총성이 극적으로 멈추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일주일의 짧았던 휴전이었지만, 자국 출신의 최고 축구선수의 호소가 커다란 영향을 준 것입니다.
올해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를 2대1로 이기자 8년 동안 사우디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이 아랍 축구를 세계에 알렸다고 축하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게 축구입니다. 참고로 사우디는 지난 7년 동안 후티 반군을 겨냥해 무려 2만5,000여회의 공습을 가한 국가입니다. 이런 적에게도 축하한다고 하는데, 북한은 뭡니까. 같은 민족이 세계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면 축하는 못할망정, 속이 좁게 조별리그 중계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아예 빼버리고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것처럼 조작하니 참 치졸합니다.
김정은도 축구를 좋아한다고 알려졌는데, 축구만 좋아하지 말고 이런 월드컵의 정신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대한민국의 경기를 중계하기로 결정한 것은 참 잘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