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적에서 동반자로, 베트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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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월드컵 이야기 말고, 제가 지난달 다녀온 베트남, 북한에선 웰남이라고 배웠던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드릴까 합니다. 지난달 저는 KBS, 한국일보, 서울신문 이런 매체에 근무하는 기자 9명과 함께 베트남 시찰을 갔다 왔습니다. 제가 20년차 경력의 고참이라 기자단 단장을 맡았습니다.

가서 북한으로 치면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통신사 사장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베트남 공산당 부부장급 고위 간부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과거에 베트남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 갔을 때 택시를 탔더니 돈을 더 받으려고 노골적으로 빙빙 돌아가는데 제가 뭐라고 해도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 이쪽저쪽 도는 겁니다. 그걸 보며 베트남은 발전되긴 참 멀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2019년 2월에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이렇게 호평했습니다.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번영하는 흔하지 않은 나라로 북한이 비핵화하면 베트남처럼 될 것이며, 그것도 매우 빠르게 될 것이다. 베트남이 짧은 기간에 이룬 것을 본다면 김정은 위원장도 아주 빠른 시간에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

그 말을 접하고 저는 뭔 소리냐고 생각했죠. “아니, 개혁개방한지 30년 넘었는데 이제야 겨우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130위권인 2,000달러 남짓에 불과한 베트남이 북한의 본받을 나라라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하노이, 호치민 등을 방문하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회주의 베트남이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구나. 그것도 다름 아닌 수십 년 전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던 대한민국이 베트남 번영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가 되고 있구나.”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을 선포했는데, 당시 베트남 국민총소득은 367억 달러였습니다. 그리고 15년 뒤인 2002년엔 그보다도 더 떨어진 35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개혁개방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최근 10년은 다릅니다. 그동안 베트남의 국민총생산액이 3배 이상 급성장했는데 2009년 1,060억 달러에서 지난해 3,626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인당 소득도 2010년 1,690달러에서 2021년 3,716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드디어 깨어나는 겁니다. 베트남의 이런 성장은 한국 기업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당국이 1988년부터 2021년말까지 외국 기업의 누적투자액을 집계한 결과 한국이 1위였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베트남에 비공식 투자까지 포함하면 900억 달러 넘게 투자했는데, 이는 2위 투자국인 일본보다 1.5배 더 많은 액수입니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9,000여 개에 이르는데, 베트남 도시 곳곳에 한국 기업 광고판들이 붙어 있습니다. 특히 미중 무역 전쟁이 확대되면서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은 올해엔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습니다. 베트남이 이런 관계를 맺은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인도 3개국뿐인데, 한국이 4번째가 됐습니다. 그만큼 한국은 베트남의 중요한 경제협력 국가입니다.

작년 베트남 무역에서 한국산의 비중은 두 번째로 많고, 한국의 입장에선 베트남이 세계에서 일본을 넘어 3번째의 수출시장이 됐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무역 규모는 최근 10년 동안 4배 이상 급성장했고, 지난 30년 동안 누적으로 한국은 베트남을 상대로 3,0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 중 선두주자는 단연 삼성그룹인데, 이미 215억 달러를 투자했고, LG그룹도 베트남에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롯데그룹의 경우 2030년까지 베트남에 일자리 5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만약 현실화되면 재계 순위 5위의 한국 기업이 인구 1억 명의 베트남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됩니다. 일자리 500만 개면 북한 사람들 다 취직시켜도 남습니다. 하노이에서 제일 높은 고층건물 2, 3위인 72층, 65층 건물은 다 한국 기업이 지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고속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은 미군과 함께 참전해 현재 정권과 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런 어제의 적이 오늘은 가장 중요한 벗이 된 것입니다. 베트남이 여전히 사회주의임에도 한국을 과감히 받아들여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거꾸로 한국을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면서 점점 경제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습니다. 인구 2,000만 명에 불과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안팎인 북한은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10년 안에 국민소득을 몇 배로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말도 같고, 교육 수준도 높으며, 또 붙어있으니 베트남보다 훨씬 유리하죠.

그러나 북한과 베트남의 근본적인 차이는 핵무기 보유 여부입니다.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유엔의 대북제재로 현재는 어떤 기업도 북한에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 기업의 진출로 북한이 부유하게 되면 김정은은 체제 유지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서 권력 세습과 핵무기가 북한을 어떻게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정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1억 인구의 베트남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잘 지켜보길 바란다. 북한을 번영시키는 것은 어쩌면 정말 쉬운 일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인민들을 잘 살게 하겠다고 베트남을 본받을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베트남을 보니 김정은의 인질이 된 북한 인민들이 다시 한번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베트남 다녀온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