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은 한류를 차단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혹독한 처벌이 따르는 법률을 잇따라 새로 제정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에 만들어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남조선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유포한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남조선 영화나 록화물, 편집물, 도서를 시청, 열람하도록 조직하였거나 조장한 경우’에도 사형이며, 단순한 시청에도 15년 로동교화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혜산에서 얼마 전에 한국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본 미성년자 학생 3명이 처형됐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2021년 9월에 만들어진 ‘청년교양보장법’도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별 것을 다 위법행위라고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에선 부부 사이에 ‘오빠’라고 하거나 애인을 남친, 여친이라고 부르게 되면 괴뢰말찌꺼기를 쓴다고 잡혀가야 합니다.
김정은은 왜 한류 열풍에 이처럼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제가 지난주에 베트남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했는데, 가보니 무서울 만도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면 한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없지만, 해외에선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이 한류를 막겠다고 전대미문의 강력한 처벌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있는 동안, 사회주의 베트남은 한류에 홀려 있었고, 북한이 괴뢰말찌꺼기라고 혐오하는 한국어는 베트남 사람들에겐 너도나도 배우고 싶은 언어가 됐습니다. 2021년 베트남 정부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습니다. 제1외국어가 되면 초중고 10년 교육 과정 내내 주당 3시간씩, 연간 105시간의 한국어를 배우게 됩니다. 내년에 베트남의 62개 학교에서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국어 과정에 등록해 공부할 예정이고, 53개 대학에 한국어과가 생겼습니다.
현지에서 한국어의 위상은 대단했습니다. 베트남 국립외국어대에 가보니까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야 한국어과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한국어과에 들어가는 겁니다.
한국에는 외국에 대한 한국어 및 한국문화 보급을 위하여 설립된 세종학당이란 것이 있는데,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세종학당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244개의 세종학당 중 23개가 베트남에 있는데, 2011년 베트남에 3곳으로 진출한 이후 10년 만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세종학당을 거쳐 간 수강생만 누적으로 58만 명에 이릅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한류 열풍과 더불어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어과를 다니면 3~4학년 때 한국 기업에서 미리 찜을 해놓고 졸업 이후 취직시키는데, 취업률이 100%라고 합니다. 현지에는 베트남어를 하면 월급이 1배, 영어를 하면 월급이 2배, 한국어를 하면 월급이 3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게 누구나 원하는 일이란 뜻입니다.
베트남 현지 대학 교수의 월급이 300달러 좌우인데, 한국 기업에 취직하면 그것보다 3배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 졸업자는 무조건 한국 기업으로 가려 합니다. 이 때문에 학교들에서 한국어 교사 부족 현상은 만성적인 일상이 됐습니다.
한국에 유학을 오는 베트남 학생들도 꾸준히 증가해서 2009년 한국 내 베트남 유학생 비중은 2.3%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3.5%로 10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지난해에 한국에 등록하고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약 18만 명으로, 25만 명의 조선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외국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공식적인 불법 체류자는 훨씬 많습니다. 몇 달 전에 강원도 양양국제공항을 통해 남한에 무비자로 들어온 베트남인 100여 명이 집단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들이 한국에서 불법 체류를 택한 이유는 베트남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익힌다면 나중에 강제추방이 되더라도 베트남 한국 기업에 취직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한다는 것은 베트남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문화를 남들과 다르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트남에서 강풍으로 커지고 있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언어가 갖는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줍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권력이자 동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비해 모든 것이 열세인 북한은 한국어를 괴뢰말찌꺼기라는 혐오의 단어로 규정해 한국에 대한 동경과 호감을 차단하려 하는 것입니다. 경제력과 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열등감을 혐오와 증오로 메우려는 것입니다.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는 한 김정은은 한국에 대한 동경이 커질까봐 한류에 대한 전쟁을 계속 진행할 것이고, 종전도 선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형의 언어와 전쟁을 선포한 일은 세계 역사에도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말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가뜩이나 먹고 살기 위해서도 전쟁을 몇 개씩 치르는 북한이, 말과의 전쟁까지 치르면 도대체 전쟁을 몇 개나 스스로 만들어 벌이는 걸까요. 늘 전쟁 중인 나라는 언젠가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적인 일에 힘을 써도 모자란데 무형의 허깨비와 전쟁을 치르니 앞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북한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청년들을 별치도 않은 일로 마구 죽이고 있으니 정말 분노할 일입니다. 이성을 상실한 이런 체제가 언제까지 존재해야 합니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