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수용소장이 된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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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7일 김정일 사망 10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의 얼굴이 남한에선 연말의 화제가 됐습니다. 30대라고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피부가 어두워졌고, 얼굴의 팔자 주름이 깊어졌습니다. 며칠 술을 퍼마시고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날 김정은의 얼굴은 37살이라고 믿어지지 않고 50대 같았습니다.

저는 그 얼굴을 보며 몇 달 보위부 감방에서 고문받다 나와도 저렇게까지 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한국은 37살이면 진짜 쌩쌩합니다. 남쪽에서 김정은과 동갑인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가면 여러분들은 20대 청년인 줄 알 겁니다. 그만큼 북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한 10년 이상 늙어 보입니다. 탈북자들도 한국에 처음 오면 여기 사람들이 다 나이를 10년쯤 높이 불러서 은근 기분이 나쁩니다.

갑자기 늙은 김정은의 모습을 보니, 약 10년 전인 2012년 4월 15일에 김일성 광장에서 했던 그의 첫 육성 연설이 떠올랐습니다. 앳된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의 김정은은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약속했습니다. 10년이 지나 보니 그 약속은 가장 황당한 거짓말이 됐습니다. 지금 북한 인민은 부귀영화는커녕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계 배터리가 다 떨어져 시간이 멈춰진 세상, 라이터 가스조차 소진돼 아궁이에 불도 지피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은 부귀영화 대신 사료를 먹는 사람이 돼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에 비해 식용유, 설탕, 조미료 가격이 5배 이상 올라, 대다수 사람들은 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음식에 기름과 조미료를 넣을 수 없어 음식 맛을 포기하고 산지 오랩니다. 먹을 것을 살 돈조차 없으니 옷이라고 제대로 사 입을 수 있을까요. 북한 거리는 점점 남루해지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연료나 식수라고 제대로 보장될 리 만무하죠.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지금 상황을 되돌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수십 년 되풀이된 케케묵은 구호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죠. 최근엔 '원료의 재자원화'라는 구호를 회생의 요술봉인 듯 내세우며 연일 독려하고 있습니다. 재자원화란 한마디로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모아 재생해 쓰라는 말인데 쓰레기도 잘 사는 나라에 많은 법입니다. 오랫동안 파철, 파동 등 쓸만한 자원은 빡빡 긁어 중국에 팔아 찾기도 어려운데 북한에 무슨 재활용할 만한 쓰레기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불과한 조치인데 그만큼 북한의 상황은 답이 없다는 뜻입니다.

북한은 경제 파탄의 원인이 대북 경제 제재와 코로나에 있다며 책임을 외부에 돌리고 있지만, 이것 역시 수십 년 되풀이된 상투적 변명입니다. 북한이 김정은의 노화 속도만큼 급속히 망가진 핵심 원인은 한마디로 김정은의 정책 실패 때문입니다. 김정은 집권 초기, 외국에서 오래 산 그가 북한을 어느 정도는 개방할 것이라는 기대도 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개혁은 수없이 떠들었지만 개방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적 왕래조차 할 수 없는 극단적 봉쇄정책을 폈습니다. 다른 나라는 뭐 문을 닫을 줄 몰라 안 닫습니까. 문 닫고 밖에 안 나가면 그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문을 닫고 아무리 경제개혁을 떠들어도 마찬가지 이유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건 유치원생들도 아는 이치일 겁니다.

대북 제재 역시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통계를 보니 1984년 이후 올해 10월까지 북한은 163회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는데 이중 80%가 김정은 시대에 한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김정은은 집권 10년 동안 129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는데 김정일 집권 18년 동안 16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이 이뤄진 것에 비하면 연평균 거의 15배나 많은 미사일 실험을 한 것이 됩니다. 핵실험도 김정일은 2차례 진행했지만 김정은은 4차례 진행했습니다. 제재를 풀 묘안도 없으면서 국제사회를 자극시키는 호전적 질주를 가속화했고, 미사일과 핵을 안고 굶어죽는 자살행위를 선택했죠. 그런 호전적 정책의 결과, 경제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사람들의 곡소리는 하늘을 찌르는데 가난해질수록 인권 탄압 역시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인민의 곡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소탕하라, 쓸어버리라, 짓부숴버리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계속 하달되고 있죠. 수많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체포되고, 고문과 성폭행은 일상이 됐고, 형기는 점점 늘어납니다. 정치범 수용소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김정일 시절에는 살기 어려우면 탈북이라도 했는데 김정은 시절에는 그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국경에 1~2㎞의 '완충지대'를 설정해 접근하면 사살하고, 깡통을 잔뜩 매단 철조망을 빽빽하게 쳤으며 대못판과 지뢰를 잔뜩 깔았습니다. 조명에 쓸 전기도 없는데, 국경 철조망엔 고압 전류를 흘러 보내라는 지시가 하달됩니다.

지난달 양강도에서 한 가족이 탈북하자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여러 차례 하달됐다고 합니다. 인민들은 얼어 죽고, 굶어죽는데 김정은은 탈북한 몇 명을 잡는데 더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집권 10년 동안 김정은이 가장 확실하게 한 것은 북한을 탈출할 수 없는 거대한 수용소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북한을 수용소로 만든 김정은은 지금 지도자가 아닌 수용소장 노릇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흘러야 북한이라는 이프성새(이프성쇠)가 무너질까요. 새해엔 제발 무너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성하, 에디터: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