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8월 27일자 0면에 게재된 “부르주아 사상문화를 허용하면 나라가 망한다“제하의 ‘정세론 해설’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부르주아 사상문화의 침투를 허용하게 되면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되기 때문에 ‘사상문화사업’에서 한치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사상문화 침투양상과 그 부작용을 열거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이 바라는 만큼 ‘사회통제’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 사이에 ‘사상문화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되는 기사라고 하겠습니다.
오중석: 북한이 선전하는 ‘사상문화적 침투의 위험성’은 외부 사상과 문화의 접촉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고 있는 유일사상정책과 ‘김씨 일가 세뇌교육’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몇몇 사회주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정치변동의 핵심 원인을 ‘부르주아 사상문화의 침투 결과’로 진단하는 것은 지극히 왜곡된 평가입니다. 관련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이번 기사는 독재국가들의 사회문화적 혼란과 이로 인한 정권붕괴의 위험성을 해당 독재정권의 ‘정당성 부재’와 혹독한 ‘사상통제정책’이라는 ‘내부 요인’에서 찾는 대신, 제국주의자들의 ‘부르주아 사상문화침투’라는 ‘외부 요인’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데요, 몇 가지로 내용을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김정일의 교시에 따르면,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 사상문화적 침투를 통하여 인민들을 사상적으로 병들게 하고 그 나라들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 저들의 지배와 통제 밑에 얽어 매려고 끊임없이 책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상문화사업(思想文化事業)에서 “한 걸음의 양보는 종당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망쳐먹는다”며 한 치의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김정일의 교시는 북한의 사상과 문화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합리적인 혁명사상’이라는 선전내용과 배치되는 패배주의적 사고의 결과로 혁명적 낙관주의와도 거리가 있습니다.
둘째, 부르조아 사상문화의 침투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수법으로, 과거에는 부르주아 사상문화가 침략의 길잡이 노릇을 하였다면 오늘은 그 ‘주역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와의 대결은 경제력과 군사력의 대결이기 전에 정신력의 대결이라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이 내놓고 말하는 ‘색갈혁명’ ‘무혈혁명’이 사상문화적 침투와 심리모략전의 산물(産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색갈혁명’ 이든 ‘무혈혁명’이든 이런 혁명을 뒷받침한 ‘사상과 문화’가 그릇된 것이라기 보다는, 혁명으로 몰락한 정권의 사상탄압과 전횡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색갈혁명’이 발생할 수 없습니다. ‘색갈혁명’은 정치사상적 탄압이 극에 달한 독재국가의 해당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혁명주권’을 행사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색갈혁명’이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 결과’라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셋째, 제국주의자들의 부르주아 사상문화 공세가 강화될수록 이를 차단하기 위한 ‘모기장’을 든든히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도서, 잡지, 사진, 그림, 영화, 음악 등을 대대적으로 들여 보내고 있다며, 이런 사상문화선전물들을 철저히 경계하여 뿌리내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반동적인 ‘부르주아사상문화’를 배격하고 이를 막기 위한 투쟁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벌려 나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북한이 ‘모기’에 비유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사상과 문화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접촉, 충돌, 동화, 공존, 융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북한 주장대로 마냥 부정적이거나 퇴폐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숨긴 채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문화’를 19세기 ‘부르주아 혁명 당시’의 사상문화로 왜곡하고 배격하는 것은 북한의 사상문화가 심각하게 ‘지체’되어 있으며, 비인간적으로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입니다.
오중석: 북한은 지난주에 노동신문 사설(8.19)을 통해, 주민 대상 ‘대내 사상전’(思想戰)을 지시한 데 이어, 이번 기사에서는 ‘대외 사상전’을 강경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대내외 사상전’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갈수록 엄중해지고 비핵대화(非核對話)의 물꼬가 트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일사상과 ‘김씨 가문’ 우상화, 폐쇄체제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허리띠’를 옥죄는 길밖에 없다는 정세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과 체제가 몰락하거나 교체되는 정치적 변동이 있을 때 마다 그 영향이 북한에 미칠 것을 우려해 ‘모기장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북한이 겹겹이 둘러친 모기장이 외부사조(外部思潮)의 침투를 철저하게 차단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모든 대외관계를 절연하지 않는 이상, 외부의 사상문화의 유입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후속조치 지연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고 군사적 압박까지 다시 거론되고 있는 부정적인 대북기류 변화에 대응해 강력한 체제단속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 노동신문은 ‘제국주의 사상문화’가 노리는 것은 ‘체제 몰락’이라고 단정 짓고 이를 막기 위한 사상전에 나설 것을 집요하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전공세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으며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먼저 북한이 주장하는 ‘제국주의 사상문화’의 실체가 희미하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제국주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일부 좌파 학자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혁명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세계 사회주의혁명 투쟁의 명분을 얻기 위해 ‘제국주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에 친화적인 사상과 문화를 ‘제국주의 사상문화’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북한 당국이 말하는 이른바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가 ‘나라와 민족과 개인’에 해가 되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강경한 사상문화통제는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혁명주권 발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이 현재 해야 할 일은 체제몰락을 차단하기 위한 ‘대내외 사상전’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피해 핵무기를 어떻게든 보유해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구체적이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핵 리스트’를 성실하게 작성하여 제출하는 일 일 것입니다. 이 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