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제국주의 극복 위해 ‘강한 민족적 자존심’ 유지 강조”

20018년 9월 9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주체사상국제연구소와 조선사회과학자협회 공동주최로 주체사상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70년에 관한 국제토론회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0018년 9월 9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주체사상국제연구소와 조선사회과학자협회 공동주최로 주체사상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70년에 관한 국제토론회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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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10월 21일자 6면에 게재된 “민족적 자존심은 자주적 발전과 번영의 초석”이라는 ‘정세론 해설’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현 세기에 들어와 일부 나라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자주권을 잃고 존엄을 유린당한 것은 ‘강한 민족적 자부심’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인민만이 민족의 자주적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라고 선전했습니다. ‘민족적 자존심’의 바탕에는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사는 긍지와 행복,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회주의제도에서 산다는 자부심이 놓여 있다”며 북한의 민족담론이 수령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중석: 어느 민족이든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며 민족적 정통성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것은 장려할 만한 사안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민족’개념은 일반적인 ‘민족’개념과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사에서 주장하고 있는 ‘민족적 자존심’도 북한만의 특수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관련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북한은 ‘한민족’ 용어 대신 ‘조선민족’을 사용하여 한국 국민을 민족에서 배제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100일 즈음에 “우리 민족 건국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김일성이고 우리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 민족”이라는 해괴 망측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 주장하는 ‘민족적 자존심’이란 결국 ‘김일성 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사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북한의 주체사상은 인간의 징표로 ‘자주성’을 들고 있는 데요. 이 자주성은 ‘자존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주성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이는 민족도 마찬가지여서 ‘민족적 자존심’이 없다면 민족의 존엄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없으므로 ‘민족을 이루는 매 성원들은 모두 민족적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적 자존심이 높은 인민은 “온갖 예속과 지배를 물리치고 독립되고 번영하는 새 사회를 건설할 수 있기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체의 힘’만을 강조하고 국가발전의 외부 요인이나 요소를 ‘온갖 예속과 지배’로 인식하는 북한식 ‘민족적 자존심’은 외부에 대한 필요이상의 경계심과 적대적 투쟁으로 발현되어 오늘날과 같은 ‘고립’을 자초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둘째, 제국주의는 출현하면서부터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하고 말살하기 위하여 책동해왔으며 오늘날에는 더욱 교활하고 악랄한 형태를 띠고 감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는 강권과 전횡을 부리면서 서방의 가치관을 내리 먹이고 원조와 협력을 미끼로 다른 나라의 자존심을 꺾고 수그러들수록 더욱 오만, 무례하고 포악하게 놀아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는 것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가 이미 종말을 고한 상황에서 북한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은 선린우호관계나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할 것입니다.

셋째, 북한이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군사적 대결, 제재와 봉쇄책동을 짓 부셔 버리고, 투쟁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는 것은 강한 민족적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 특유의 민족담론을 꺼내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민족적 자존심’ 바탕에는 “대대로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사는 크나큰 긍지와 행복,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자부심이 놓여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북한이 핵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민족적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며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9일 막을 내린 ‘아셈정상회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VID)와 비핵화 공약이행,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AIEA)의 조속한 복귀를 요구했습니다. 한가하게 민족적 자존심을 들고 나올 때가 아닌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기사는 북한이 과거 고난의 행군시기를 극복하고 핵 문제로 국제사회와 대립 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주체사상의 자주성과 민족적 자존심에서 찾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이 이런 기사를 대외 면을 통해 내보낸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과 북중(北中)정상회담 각각 3회, 미북(美北)정상회담 1회 등 6개월 동안에 7회에 걸친 ‘정상회담’을 갖고 핵 문제와 체제안전문제를 풀려 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 폐기에 대한국제사회의 진정한 신뢰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셈정상회의’ 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북한의 경제와 체제안전의 어려움은 한층 심화될 것입니다.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을 체제유지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주민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고양시켜 ‘사상적 요새’를 튼튼히 함으로써 다가올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제와 압력이 지속된다 해도 과거 ‘사회주의권 몰락’이나 ‘고난의 행군’시기를 견뎌냈던 것처럼 얼마든지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대외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은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민족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북한의 민족담론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과 북한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의 ‘민족’개념은 기본적으로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서 비롯되었고 폐쇄적이고 적대적이며 호전적이라는 특징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민족개념은 역사인식의 편협성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역사는 민족이라는 층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지정학, 문화, 자연생활환경과 같은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구촌시대에 경제와 문화예술은 지구 구석구석에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제2차 대전 이후 지구촌은 냉전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존하는 세계’로 전환되었다는 주장이 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더 이상 철 지난 민족담론으로 의식화시켜 역사적 퇴행을 강요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중석: 한반도에는 수 천 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한민족’이 있을 뿐입니다. 북한이 ‘김일성 민족’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한민족’을 둘로 나누는 것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예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민족과 관련된 담론에서 이러한 위험한 발상을 다시는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