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3월2일자 6면에 수록된 “제국주의자들의 분열와해전략에 각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세론 해설’ 기사입니다. 동 기사는, ‘제국주의자’들이 자주를 지향하는 나라들을 “분열, 이간시키기 위해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블럭불가담국가들’은 이러한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파탄시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며 ‘블럭불가담운동’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노동신문 기사는 북한의 21세기 국제정세 판단의 잣대가 얼마나 뒤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은 핵 문제를 놓고 미국과 한 치의 양보 없는 대립 각을 세우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 제재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날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신문이 ‘제국주의론’과 ‘블럭불가담운동’을 선동하고 나섰다는 것인데요. 기사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이 기사는 북한과 친선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과 냉전시대에 활발하게 움직였던 이른바 ‘제3세계’국가들에게, 미국에 대항해 ‘공동연대투쟁’에 나설 것을 선동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반(反)제국주의 투쟁에 나서야만 하는 이유와 원인을 날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국주의자들은 ‘세계 지배권’을 유지하가 위해 ‘자주성을 지향하는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불신과 알력을 조장하고 적대감을 조성하여 단결을 저해하고 지역분쟁에 끼어 들어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화와 반목, 적대감을 조성하여 진보적인 국가들의 단결을 분열 와해하는 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전략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둘째, 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의 말을 듣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체제와 정책, 지도부에 대한 비난과 허위선전, 비정부기구를 내세워 친미, 친서방세력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게 하고 원조와 협조, 교류 등을 통해 환상을 가지게 하는 비열한 수법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민족 및 종족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문제는 모두 제국주의자들의 분열과 이간책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제국주의자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평화’나 ‘원조’, 중재자 역할 자임 등은 ‘블럭불가담운동’을 분열 와해시키고 발전도상국가들을 각개격파하여 반제자주역량을 약화시켜 이들을 신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획책”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로 미국의 1990년 ‘이라크 침공’을 들고 있습니다.
넷째, 이처럼 제국주의자들로 인해 발전도상국가들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이 유린당하고 있고 여러 지역에서 전쟁과 분쟁이 그칠새 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제국주의자들을 주되는 공동의 원수이자 투쟁대상’으로 삼고 사상과 인종,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중석: 원래 제국주의론은 레닌이 창립한 사회주의혁명이론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현 시점에서 제국주의론을 언급하며 냉전시대에 주력했던, 시대착오적인 ‘블럭불가담운동’을 선동하고 나선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현웅: 먼저 그 이유를 살펴보면, 북한이 ‘미국을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자 민족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철 천지 원수’로 규정하고 있는 입장에서 레닌의 제국주의이론만큼 미국을 비난하는데 적합한 논리가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그 나름, 논리적인 분석력을 갖춘 효과적인 공격무기라고 판단한 데 따른 것입니다. 북한이 새삼 이런 이론에 얽매여 있는 것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비판 무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1916년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를 통해 제시되었는데요. 공산주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따라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 ‘제국주의’ 단계가 하나 더 있다는 것입니다. 레닌이 ‘제국주의’ 단계를 설정한 것은 ‘사회주의혁명이 한 나라 또는 몇 개 나라에서 먼저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이론적 모순과 흠결을 은폐하고 공산혁명 수출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또한 북한이 ‘불럭불가담운동’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의 후광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불어 닥친 위기를 타개해보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6.25전쟁 참패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벗어나기 위해 ‘비동맹회의’(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 접근하였으며, 1975년 8월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된 제2차 비동맹 외상회의에서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습니다. 북한은 이 비동맹회의를 무대로 주한미군철수, 민족해방혁명투쟁, 반제국주의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 바 있습니다. 김일성이 이루었던 과거 ‘대외적 성과’를 내세워 지금의 난관을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이 케케묵은 이론으로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것과 동시에 ‘제3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블럭불가담운동’을 호소하는 것이 북한에 어떤 반향으로 되돌아갈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이현웅: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레닌은 생산과 자본의 독점,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유착 및 금융과두정치 형성, 자본수출의 중요성, 자본가 국제독점동맹 형성 및 세계 분할, 자본주의 열강들의 세계 영토분할 등을 제국주의의 특징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런 제국주의는 대내외적인 모순과 갈등의 격화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망하고 사회주의가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레닌의 이론은 박제되어 박물관에나 가 있는 이론입니다 자본주의의 자기 보완적 수정과 발전이라는 측면을 보지 못한 한계 때문에 이미 폐기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구 소련이 몰락하고 러시아에서 레닌의 동상이 끌어 내려진 지금 북한만이 이런 이론에 목 매여 있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블럭불가담운동’ 역시 미중국교수교, 중국의 개혁개방,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정치경제적 원조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그 ‘불꽃이 사그러든 상태’입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원성을 사면서 철 지난 이론과 운동에 매달리는 것은 ‘대결과 갈등의 세계관’에 매몰되어 인류사회의 협력과 공존공영이라는 큰 가치와 그 실천노력들을 보지 못하는 ‘절름발이 시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세상에 공표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21세기 지진아’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제재로부터 벗어나 체제를 유지하고 정상국가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시대에 뒤진 ‘제국주의론’이나 ‘블럭불가담운동’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심사숙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 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