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4월 9일자 6면에 게재된 “주체사상은 세계 진보적 인류의 마음의 등대”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전 력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백과전서적인 혁명사상이며 인류의 미래를 향도하는 위대한 사상”이라고 주장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 주체사상이 어떻게 국제사회의 관심과 반향을 얻게 됐는지를 자기중심적 평가를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도 담보해줄 수 없는 주체사상을 ‘인류의 등대’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조선노동당내 이데올로기담당 핵심인물들의 창조성이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북한체제의 이념적 난국을 자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중석: 북한이 원래 ‘집단주의사상’으로 만든 주체사상은 북한 김씨 일가 세습독재정권의 유지기능 외에 그 역할을 다했다는 주장이 지배적인 평가입니다. 이런 주체사상이 지금도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요. 기사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북한 주체사상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김정일이 북한정권 실세로 등장하면서부터 세습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사상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번 노동신문 기사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난 4월 9일에 ‘주체사상국제연구소’가 창립 40주년을 맞이 했는데, 그 동안 “세계 진보적 인민들이 주체사상에 매혹되고, 역사발전과 혁명실천에서 주체사상을 따라 배우기 위한 활동이 5대륙의 방방곡곡에서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1976년 9월에 마다카스카르에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과학토론회’가 조직되었으며, 1977년 9월에는 북한에서 국제토론회를 갖고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창립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78년 4월 9일에는 일본 도쿄에 ‘주체사상국제연구소’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주체사상 연구보급활동의 거점이 마련되고 ‘세계자주화 위업실현’을 담당할 주체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둘째, 열렬한 주체사상 신봉자에게 주는 ‘국제김일성상’은 1993년 4월 13일에 제정되었으며 첫 수상자는 1993년 9월 7일 당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일본 사람 ‘이노우에 슈하치’였고, 1994년 4월 9일에는 주체사상 연구보급활동에서 특출한 공헌을 한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부이사장이자 아시아지역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인 ‘T.B.무케르지’가 ‘국제김일성상’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이사장 ‘라몬 히메네스 로뻬스’에게 ‘국제김일성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는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덴마크,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었으며 2012년에는 김일성 출생 100돌을 기념하기 위해 평양에서 ‘주체사상세계대회’를 개최했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세계 진보적 인류가 나아갈 길”을 환히 비치고 있으며, 주체사상에 의하여 “정의롭고 자주화된 새 세계는 반드시 건설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기사는 현재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체사상에 관한 국제토론회’가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주체사상을 열렬히 신봉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데요. 이런 왜곡된 선전기사를 싣고 있는 배경과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이 주체사상에 관한 1970년대 ‘국제사회의 반향’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선전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사상과 이념을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북한 ‘통치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무능과 복잡한 속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애초 ‘반(反)사대주의입장’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1970년대 초반에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자기자신” 이라는 ‘인민대중 중심’ 내용을 보강하고 이를 강조하였습니다.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은 이러한 ‘인간중심 주체사상’과는 모순되는 맑스-레닌주의와 봉건전제주의 사상을 혼합한 ‘수령중심 주체사상’을 접목시켰습니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강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주체사상의 내용적 모순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현실과 맞지 않는 ‘수령중심 주체사상’을 일방적으로 강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내 자신의 운명은 내 스스로 책임진다’는 의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중심 주체사상’을 강조함으로써 집단주의를 훼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주체사상의 국제적 반향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기사는 주체사상이 내용상의 논리적 모순과 함께 현실 상황과도 맞지 않고 있으며, 창시자 문제 등 많은 흠결을 갖고 있음에도 여전히 김일성 우상화 소재와 기본 통치이념 및 세계 사회주의 혁명사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의 주체사상은 1997년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 선생의 한국귀순으로 북한 내에서 정치사상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소멸되었으며 국제사회에서는 주체사상이 ‘김일성의 통치이념’이라는 상징성마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입니다. 북한에서 주체사상 교육을 받아 본 바 있는 많은 탈북자들은 교육 내용 중 지금까지 남는 기억은 “자기 자신의 운명은 자기자신이고 자기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자기자신”이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집단주의’를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상이 오히려 ‘개인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공은 항상 ‘지도자’ 한 사람이고 혁명과 건설의 결실도 모두 지도자가 독차지하는 것을 분개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중석: 현재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어려움은 주체사상의 억압과 폐쇄성이 낳은 ‘사상적 갈라파고스현상’ 에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폭넓게 교류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정상국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을 ‘주체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이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