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5월 13일자 1면에 수록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가의 기본징표”라는 논설입니다. 이 논설은 “충실성이 높아야 수령의 구상과 의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투쟁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실무에 능하고 두뇌가 비상하며 다문박식해도 수령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참된 혁명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하지 못한 실력가는 조국과 인민에게 참답게 복무할 수 없으며, 혁명의 배신자로 굴러떨어지게 된다”면서, 과거 ‘충실성을 지닌 일군’의 사례로 “김책과 1970년대 일군들”을 지목했습니다. 당정책관철에서 석차는 “실력의 차이이기 전에 충실성의 차이”라고 밝히고, 현 시대가 과학기술과 실력전의 시대이고 인재와 과학기술이 주되는 전략적 자원, 위력한 무기이며 그 역할이 나날이 부각되지만, 오늘날에도 ‘충실성이 기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중석: 나라 일군들의 덕목인 충실성의 대상은 ‘인민대중’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번 논설은 일군들에게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주장했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이 아닐수 없는 데요. 관련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논설은 “혁명의 지휘성원이자 대중의 교양자”역할을 수행하는 일군들에게 “과학기술을 알기 전에 수령을 먼저 알고, 수령의 은덕에 보답할 줄 아는 열혈의 충신이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자기 영도자를 가식없이, 대를 이어가며 변함없이 끝까지 받드는 충실성”이며, 충신의 인생행로는 “숨이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혁명임무수행에 혼심을 깡그리 바치는 것”이라고 밝혀, 일군들의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성을 강요했습니다. 정상적인 나라의 일군은 법에 따라 주어진 권한의 범위 안에서 자기가 맡은 임무를 근면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합니다. 오늘날의 충신은 수령이나 최고지도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절을 다 바치는 인물을 뜻합니다. 충성이나 충실성의 대상은 최고지도자 개인이나 죽은 ‘수령’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건시대가 아님에도, 충성을 최고지도자나 수령에게 하는 것은 ‘우상화 노름’입니다. 노동신문은 일군들을 ‘우상화 노름’의 마름으로 전락시키려는 선전만행을 당장 멈춰야 할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일군들의 석차(席次)를 ‘전문성과 실무능력, 성과’를 기준으로 판별하기 보다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기준으로 결정한다는 ‘인사방침’을 밝혔습니다. 북한 통치집단의 이러한 ‘일군인사방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북한은 과학기술인력 중시정책을 펼칠 때나 실리주의경제정책을 실시할 때 조차도 간부나 일군들에 대한 평가기준은 언제나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기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북한 저발전’의 핵심 원인중 하나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시대 수령에 대한 충실성 여부를 판별하는 세부 기준은 북한의 실질적 ‘최고지상법’인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이었습니다. 이 원칙은 1967년 6월 28일 김영주에 의해 처음 작성되었으며, 1974년 4월 14일 김정일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고, 2013년 6월 19일 김정은이 다시 개정하여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으로 공표했습니다. 북한이 정상적인 나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일군들의 석차 평가에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적용할게 아니라, 그들의 전문성과 실무능력,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 체제의 앞날은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한 전문지식인들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설은 ‘김책과 1970년대 일군 같은 충신되기’를 요구했습니다. 이런 낡은 발상의 ‘충신타령’에 나선 이유와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이번 논설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전범(典範)으로 김책의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1970년대 일군들의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제시했습니다. 김책은 학력과 전문성이 부족한 빨치산출신임에도 1946년 2월 북한 최초의 군사정치학교인 ‘평양학원’을 설립하고, 김일성 지시에 절대충성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1970년대 일군들은, 김정일이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을 당과 정권기관, 군부 등 북한사회 전부분에 일색화하여 적용하는 데 몰두함으로써, 김씨 일가 세습권력 창출에 앞장섰던 일군들이었습니다. 김책과 1970년대 일군들의 ‘충성의 성격’을 고려해 봤을 때, 이번 논설의 ‘충신타령’은 북한체제안정과 경제성과를 위한 ‘내부 기강잡기’의 일환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북한 비핵화 요구가 구체화될 경우에 대비한 ‘일군들의 일사불란한 결속’이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 조치’의 실질적인 진전없이, 일군들에 대한 ‘충신되기’ 강요만으로는 대내외 정책에서 그 어떤 성과도 얻기 힘들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현 시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이고, 인재와 과학기술의 역할이 나날이 부각”되고 있지만, 그래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기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충성심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십니까?
이현웅: 이번 논설은 모든 일군들과 당원, 근로자들에 이르기까지 전(全) 주민들에게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주민들에 대한 ‘충성강제’는 정치적 탄압입니다. 현대는 주민들이 주기적인 선거참여를 통해 지도자의 정치능력을 평가하고 교체하는 시대입니다. 지도자가 주민들에게 충성을 다해야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도자의 주민들에 대한 충성을 스스로 검증하고 평가하는 ‘지도자 선거시대’가 빨리오길 학수고대할 것입니다.
오중석: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