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민생활안정을 위한 ‘과학기술성과’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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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5월 23일자 1면에 수록된 “실제적인 과학기술성과로 올해 진군을 강력히 견인하자”라는 논설입니다. 이 논설은 과학기술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최소한의 지출로 최대한의 실리를 얻게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오늘의 시대는 과학기술로 발전하고 과학기술로 살아가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과학기술을 틀어쥐면 흥하고 과학기술에서 뒤떨어지면 망하게 되는 것이 현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경제전반에 대한 정비보강과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전략자산은 과학기술”이라고 강조하면서, “과학기술만이 현존경제 토대를 공고히하고 생산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인민경제의 자립성 강화와 생산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중석: 김정은 정권은 2012년 12월에 ‘제4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을 발표한 이후 인민경제발전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논설은 “오늘의 시대가 과학기술로 발전하고 과학기술로 살아가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이고, “과학기술을 확고히 앞세우는 것은 인민생활향상에서 인민들이 폐부로 실감할 수 있는 변화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최선의 방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은 이미 제4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할 당시부터 계속 나왔던 말입니다. 김정은 정권은 제4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에서 크게 세 가지 부문을 설정했습니다. 첫째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서는 ⓐ먹는 문제, ⓑ에너지, ⓒ기간산업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세부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둘째 지식경제 및 과학기술강국 부문에서는 ‘과학기술집약형경제’를 표방하고 ⓐ기초과학과 첨단과학기술, ⓑ정보, 생물, 나노기술산업 육성과 생산기지 조성, ⓒCNC공작기계 및 장비개발, 제조업의 CNC화를 강조했습니다. 셋째 국방과학부문에서는 ⓐ무장장비 현대화, ⓑ핵물질 및 무기체계 완비를 중점 추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셋째 국방과학부문에서 제시한 핵물질 및 무기체계 완비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결과 인민경제건설과 지식경제부문에서의 과학기술발전은 정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 과학기술은 국방 과학기술의 ‘과잉’과 인민경제 과학기술의 ‘결핍’으로 인해, 기형적인 ‘비대칭 과학기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인민생활 안정을 “가장 영예로운 혁명사업”이라고 주장하면서 인민생활향상에서 “과학기술의 실제적인 발전”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북한 통치집단의 ‘인민경제부문 과학기술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이번 논설은 “올해에 인민들의 식의주문제 해결에서 돌파구를 열고 인민들이 반기는 실제적인 결과들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인민생활과 직결된 부문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 특히 “인민소비품 생산량을 최대로 늘이기 위한 투쟁과 농업생산 증대, 먹는 문제 해결, 살림집 건설”에서 과학기술의 견인기적 역할을 높이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인민경제향상을 위한 과학기술발전은 김정일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구호’와 ‘선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정책으로 추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먹는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기술발전 주장은 1998년 김정일이 제1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에서부터 늘 강조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선군정치에, 김정은은 핵무기 및 미사일개발에 주력함으로써 인민경제향상을 위한 과학기술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이제와서 또 다시 ‘민수용 과학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적 물적 자원도 부족하고 축적된 과학기술도 없어, 하나의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중석: 북한 통치집단은 경제제재를 풀지 못하는 이상 ‘민수용과학기술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과학기술발전 결사관철’을 주장하고 나선 이유와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이번 논설은 북한의 과학기술발전을 ‘주체과학발전’이라는 ‘개념 틀’내에 묶어 놓고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과학기술 발전을 “자립, 자력의 새 길”을 열고, “자립경제발전과 자립적 토대강화, 생산정상화”를 위해 “오직 자기의 힘과 기술을 믿고 자체의 과학기술성과를 부단히 증대시키는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그 목적도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인민경제의 정비전략과 보강전략에 입각한 올해 경제사업”에서 “경제의 자립성을 더욱 강화”하는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논설이 주장하는 ‘과학기술발전’은 ‘개혁 개방 없는 과학기술발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김정은 정권의 자력갱생노선, 경색된 방역정책, 그리고 폐쇄적인 대외정책을 이번 ‘과학기술발전’ 주장의 이유와 배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모든 부문과 단위가 과학기술의 등불로 앞길을 밝히고 발전을 선도해 나갈 때 인민생활향상에서 새로운 성과들이 이룩될 것”이라고 선동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집단최면 걸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십니까?

이현웅: 북한의 산업은 기본적으로 전력, 노동력과 같은 자원을 과다소비하는 구조인데다, 낙후한 기술수준과 연구기자재 부족, 노후설비, 자생력 취약의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계획경제와 수입대체 생산의 한계로 재원 축적이 불가능하고 과학기술혁신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3대 혁명소조 중심의 생산현장 강조와 과학기술 혁신운동은 전통기술확산으로 이어질 뿐, 첨단과학의 도입이나 육성, 첨단 신산업의 창출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통치집단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보다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군사분야 과학기술발전에 집중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제1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98년 부터 매년 지속되고 있는 노동신문의 ‘과학기술발전 선전몰이’에 식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중석: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