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5월 31일자 1면에 수록된 “일군들의 모든 사업은 책임성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라는 논설입니다. 이 논설은 “혁명은 높은 책임성을 요구한다”고 운을 뗀 뒤, “책임성은 일군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혁명의 지휘성원이며 핵심인 일군이 무책임(無責任)하면 사회주의 건설이 지체되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된다며 일군들에게 “당의 사상과 방침을 자(척도)로 하여 당의 과업을 몸이 열쪼각, 백쪼각 나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일군, 유능한 작전가, 완강한 실천가가 될 것”을 주문했습니다. 북한의 오늘 현실은 “수령이 제시한 노선과 방침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했던 김책(金策)처럼 “투철한 혁명적 수령관”을 지니고, “당의 전략적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며, 당중앙(黨中央)과 발걸음과 호흡을 맞추어나가는 일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사업에 대한 소심성과 소극성, 협소한 이익과 당면이익만 추구하는 주먹구구식, 하루살이식 일본새는 무책임성이 가져오는 필연적 귀결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일군들은 혁명적 진군에서 선구자, 기수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갈것”을 촉구했습니다.
오중석: 북한 정권은 지난해 12월 살인적인 추위에도 불구하고, 전국당선전일군, 직맹과 농근맹일군, 성과 중앙기관 일군 등 각계 각층 일군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행군을 조직해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체득시키는 백두의 혁명정신교육을 강행했습니다. 이제는 일군들이 백두의 혁명정신을 만장약한 만큼 그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인데요, 관련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지난 5월 1일자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해 4월 말까지 1,000여개 단체에 5만 6000여명의 일군들과 근로자들, 인민군 군인들, 청년학생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5월 30일자 보도에서는 “우리 당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 행군대오의 앞장에 일군들을 내세워 주웠는데, 여기에는 혁명의 지휘성원인 일군들을 백두산 정신을 체질화한 견결한 투사들로 철저히 준비시키려는 숭고한 뜻과 크나 큰 믿음이 깃들어 있다”고 일군들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번 논설의 행간에서 북한 정권이 기대한 만큼 일군들의 책임과 역할, 그에 따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리지킴이나 눈치놀음, 침체와 부진” 등 무책임성(無責任性)에서 나오는 사례들을 나열함으로써 일군들의 활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침체돼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오늘의 총체적 난국이 일군들의 무책임성이나 역할 미흡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의 무능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김책은 수령이 제시한 노선과 방침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한 우리 당의 충직한 일군이었다”며, 김책을 ‘모범일군’의 전형(典型)으로 내세웠습니다. 북한이 김일성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김책 따라 배우기’를 촉구하고 나선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이번 논설은 김책이 경제와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 신념으로 간직”했기 때문에 수령이 맡겨준 중책들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일군들은 “김책처럼 투철한 ‘혁명적 수령관’을 지니고 혁명임무를 한치의 드팀이나 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무조건 끝까지 집행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일군선발과 중용원칙이 실력과 능력이 아니라 김정은에 대한 충성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일군의 책임과 역할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유와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주민친화적 책임수행’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군들의 ‘책임’은 김정은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인민에 대한 책임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은 ‘일군’에 “혁명의 지휘성원, 당정책관철의 제일기수, 단위발전의 기관차”라는 ‘값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례하여 이번 논설은 일군들에게 “높은 책임성과 비상한 책임감”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은 지난 해 12월 조선노동당 제7차 제5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전당, 전군, 전민을 총동원하여 준 전시동원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정면돌파전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우리 식 사회주의체제의 불안정성과 모순은 갈수록 확대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내부 고삐 조이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김정은 정권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회의에서 국무위원 5명을 교체하고 5월 23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대규모 군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대폭물갈이 인사’에 대한 정당성을 홍보하고, 새로 선발됐거나 승진 또는 영전배치한 일군들에 대해 김정은에 대한 멸사충성을 요구하며,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일군들에 대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 충성을 다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논설은 일군들에게 ‘혁명적 수령관’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김정은과 당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비상한 각오와 의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 일군들은 이런 ‘주마가편(走馬加鞭)’식 끝없는 책임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현대 사회에서 ‘책임’은 법적 책임 뿐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까지 흡수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 통치자는 75년 동안 수 많은 정치 경제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몰 역사적이고 무책임한 통치구조에서 일군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책임을 부과하며 혁명적 수령관에 철저한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 수없습니다. 정신적 물질적 자원이 완전히 고갈돼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북한 일군들은 이번 논설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오중석: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