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9월 16일자 6면에 게재된 "숭고한 민족애가 안아온 자주통일의 새시대"제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불신과 대결로 얼어 붙었던 한반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대화와 접촉, 왕래의 문이 열리며 평화와 번영, 통일의 미래를 낙관하게 하는 성과들이 마련됨으로써 '조국통일업위'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은 모두 김정은의 특출한 정치실력과 숭고한 민족애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평양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은의 애국애족의 뜻을 받들어 거족적인 통일대행진을 힘차게 벌려 통일강국을 반드시 세우자"고 선동하면서 김정은을 '통일지도자'로 높이 띄우고 향후 한반도 쟁점을 통일문제로 전환하려는 정상회담상의 전략적 의도를 표출하고 있어 주목되는 기사입니다.
오중석: 미북(美北) '비핵대화'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번 평양남북정상회담(9.18-20)을 어떤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의 행간을 통해 북한이 정상회담에 임하는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관련 기사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이번 기사는 김정은이 신년사를 발표한 금년 1월 1일부터 9월 현재 평양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오직 민족통일을 위해 한반도정세를 주조(鑄造)해온 것으로 조망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의 모든 공(功)을 김정은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김정은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통일강국 건설의 웅지는 그의 가장 숭고한 풍모(風貌)라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조국통일의 밝은 앞날을 설계한 것"은 자주통일위업의 승리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며 김정은을 조국통일의 '화신'인양 선전하였습니다.
둘째,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개척해온 자주통일위업을 변함없이 계승하고 있으며 탁월한 영도력과 고결한 덕망으로 민족통일의지를 높이고 통일운동의 전성기를 펼쳐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례로 '김일성 출생 100돌 경축' 열병식 당시 "통일을 원하고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라는 말이 담긴 김정은의 연설을 꼽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힌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 발표, 4.27남북정상회담 및 5.26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이번 평양남북정상회담도 김정은이 통일운동의 전성기를 펼친 주요 사례라는 것입니다. 올해 남북관계의 굵직한 사안들을 모두 김정은 주도의 '작품'으로 선전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셋째, 김정은의 확고한 통일의지와 숭고한 민족애,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용력은 온 민족을 자주통일위업 실현으로 불러일으키는 원동력과 활력소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운명은 특출한 정치실력, 비범한 예지와 민족애를 지닌 위인을 영도자로 모실 때에만 빛나게 개척될 수 있다"며, "천출위인인 김정은을 높이 모신 '우리 민족'의 앞길은 끝없이 밝고 창창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정권에 국한했던 주체사상의 '수령' 개념을 남북한을 아우르는 민족전체에 적용시키고 있어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중석: 북한이 이번 평양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은을 '민족의 지도자', 조국통일의 '화신'으로 만드는 '상징작업'에 진력하고 있는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그 동안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제재와 막힌 경제지원 통로를 새롭게 열고, 하층통일전선과 지하공작만으로는 진전을 볼 수 없는 어려운 대남사업들에 대해 '단숨에 성과'를 획득하며, 대내외적인 난제들을 해결할 열쇠를 얻는 기회로 활용해왔습니다. 정상회담과 수많은 하위회담 그리고 교류협력과정을 통해 한국에 대한 고급정보를 '커다란 위험이나 제약' 없이 손쉽게 획득했던 것입니다.
이번 노동신문 기사는 이런 목적 외에 또 다른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김정은을 '민족지도자'로 부각시키고 '통일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은 한반도문제의 최대 쟁점인 '북한 비핵화'를 '민족통일'문제로 뒤바꾸어 한국과 미국의 '비핵화 압력'을 피해보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 기존 쟁점의 초점을 흐리게 하여 정세주도권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한국사회 각계에서 동원된 200여명에 달하는 평양방북단은 물론 모처럼 열린 평양선전공간을 통해 '민족애로 포장한 북한 통일방안'을 아무런 제약 없이 홍보함으로써 광범위한 동조세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셋째, 북한으로서는 방북자들이 사회각계를 대표하는 지도층인사라는 점과 이들의 북한일정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점을 활용하여 남북한 사회단체와 인사들이 참여하는 '통일협상'이 북한 주도로 진행되는 듯한 '연출'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얻으려는 것은 향후 통일논의에서 '통일국가'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점을 못박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 노동신문이 극히 한정된 '글쓰기자원'으로 6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 번에 걸쳐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각기 다른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객관적인 한반도정세를 무시하고 남북관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물안개구리' 식입니다. 이런 기사가 대내외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통일방안'이 자유민주주의, 인권보장과 같은 지구촌 사회의 보편적 이념과 대척점에 서있는 전체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우리식 사회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정치와 경제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근본 요인이 북한 주체사상의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이고도 세밀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역사적으로 폐기됐다는 사실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마저 배격하고 있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와 '수령'이 미래의 한반도 통일국가를 형성하거나 지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붉은 제국 구(舊) 소련은 핵이 없어서 몰락한 것이 아니며, 혹독한 독재와 경제실패, 자유와 인권부재로 '꿈이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어선 민중봉기로 인해 몰락했습니다. 북한의 3세대 주민들도 이런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노동신문의 선전행태는 이들의 반감만 키울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자주 갖는 다는 것은 '정치적 개방' 차원에서 볼 때 일부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독재정권 유지에 활용하거나 북한 식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보다는 주민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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