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10월 25일자 6면에 게재된 “천출위인의 통일의지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 이라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올해 들어 남북 정상회담과 교류협력이 크게 활성화된 것은 전적으로 김정은의 ‘통일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김정은을 조국통일의 ‘구성’이자 ‘태양’으로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북관계 진전상황을 김정은 개인 우상화 선전소재로 삼고 있어 북한 지도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인식이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사라고 하겠습니다.
오중석: 얼어 붙었던 남북관계의 급격한 활성화는 한국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을 초청하고, 북한이 선수단 참여의지를 밝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객관적인 한반도정세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정점을 이루고 있었고,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로 인해 미국의 강도 높은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체제는 심각한 위협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이런 국제관계나 한반도정세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거두절미하고 김정은의 ‘정세 주도력’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기사를 정론(正論)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이번 기사는 개인숭배 조장이라는 목적 외에도 진실을 은폐하고 허위사실을 과장하여 북한주민을 기망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2016년 5월) 총화보고에 담긴 통일관련 내용을 부각시켜, 김정은을 천재적인 안목을 가진 ‘민족지도자’인양 미화하고 있습니다. 당시 총화보고에 있는 “우리는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 같은 지향과 요구에 맞게 하루 빨리 분열의 장벽을 허물고 조국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야 합니다”라는 문장을 적시해 놓고, 이런 김정은의 ‘천명(闡明)’은 “경애하는 원수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용단”이며 “우리 겨레에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는 최고 영도자동지의 숭고한 의지와 탁월한 정치실력, 애국애족의 대 용단은 참으로 놀라운 전변을 안아왔다”고 김정은을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총화보고에 적시된 김정은의 ‘통일’관련 내용은 북한 주민은 물론이고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염원이며 소원입니다.
둘째, 올해 북한 신년사에서 언급된 ‘남북관계대전환 방침’에는 김정은의 “열렬한 민족애와 자주통일의지가 그대로 담겨있다”며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이 김정은의 민족애와 통일의지의 결단에 의해 이룩된 양 기만하였습니다. “김정은이 파국에 처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획기적인 방침을 제시한 것은 내외의 폭풍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김정은의 정력적인 영도에 의하여 우리 겨레는 마침내 그처럼 고대하던 감격의 시각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선전했습니다.
셋째, 지난 4월 27일 ‘판문점남북정상회담’ 당시 연출된 김정은의 태도와 모습을 극찬하는 방식으로 개인 숭배를 조장(助長)했습니다. 김정은은 회담에서 “시종일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상봉과 회담을 여유 있게 주도해나가는, 위풍당당하고 소탈한 인품은 만 사람을 매혹시키었다”고 적었으며, 이어서 “김정은의 애국애족의 열정과 탁월한 정치실력, 천하를 휘어 잡는 포옹력과 통일의지는 조국통일운동사에 길이 빛날 사변을 안아왔다”고 선전했습니다. 이 같은 개인숭배는 봉건시대 용비어천가를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넷째, 지난 9월 19일 평양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김정은을 ‘민족지도자 반열의 위인’ 인양 추켜세웠습니다. 김정은에 대해 “우리 민족의 숙원을 풀어 주실 분은 오직 경애하는 원수님뿐 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었고, 원수님 이야말로 우리 겨레가 순결한 마음으로 따르고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할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다”이라며 김정은의 ‘민족 및 통일지도자 이미지’를 날조하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였습니다.
오중석: 북한의 비핵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현재 진행중인 ‘남북관계’를 평가하고 주역들에 대한 논공행상이나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이 지금까지의 남북관계 진전성과를 김정은의 ‘공로’로 주장하는 선전기사를 계속하여 내보내는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 통치세력들은 핵개발 문제로 초래된 체제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북한은 한국을 방패막이로 삼아 체제위기를 넘겨보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에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김정은의 공로를 높이 추겨 세우는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습독재정권의 안정과 공고화를 위한 통치자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북한의 통치자는 고모부와 친형을 무참하게 처단하였으며 국제사회에 핵 전쟁불사를 위협하고 백 여명에 달하는 고위엘리트를 숙청한 평화파괴자 또는 포악한 압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남북관계 진전국면에서 보여준 김정은의 ‘일 거수 일 투족’은 김정은의 ‘통일, 민족지도자’ 이미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매우 적절한 소재였을 것입니다. 이에 더해, 이번 기사가 노동신문 ‘대남 면’(對南 面)에 실려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사회의 ‘북한 비핵화’여론을 ‘조국통일문제’로 전환시켜 한국내의 대북 비핵화 압력을 해소해 보려는 대남 선전선동책략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기사는 남북관계 진전이 한국의 포용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거두절미 한 채 북한 통치자의 ‘통일, 민족 지도자 상’을 만들어 내는데 몰두함으로써 인지상정의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빈번하게 보도되고 있는 이런 종류의 기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대외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남북관계는 어느 일방의 통일의지나 선의, 노력만으로는 진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또한 남북한관계는 지정학적, 지경학적으로 주변 4강의 사활적 이익이 첨예하게 얽혀 있는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관계 위에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라는 두 수레바퀴의 조화로운 전진에 의거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독불장군식 추진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볼 때, 이번 기사의 선전 내용은 대외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국이 북한의 통일의지에 이끌려 북한 비핵화는 뒷전으로 하고 국제규범을 어기면서 북한을 돕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경우, 오히려 통일보다는 분단이 고착화 되는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은 남북관계 진전국면이 어떤 배경과 인과관계 속에서 이루어 졌는지를 사실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첨단언론매체를 접할 수 있는 북한주민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과 진실을 은폐하는 선전선동기사는 더 이상 그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