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80일전투에서 ‘자력갱생 혁명정신’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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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11월 9일자 1면에 수록된 “자력갱생대진군으로 80일전투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룩하자”라는 사설입니다. 이 사설은 80일전투의 목표달성은 외부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힘’에 있으며, 그 추동력과 실제적인 힘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제손으로 만들고, 제땅에서 찾아내며, 발전과 비약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창조정신이 차넘칠때 “남에 대한 의존심, 수입병은 말끔히 사라지고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투쟁기풍이 자랑스런 국풍으로 확립 될것”이라며, 자력갱생 정신무장을 주문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첨단과학기술연구와 도입에 선차적 힘을 넣을 것”을 촉구했습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남에게 의존”하거나 외부로 부터 “수입하는 것”을 극도로 부정하면서도 “첨단과학기술의 도입”을 강조해, 이중적이고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사설은 일군들에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심장이 자력갱생열로 펄펄 끓어 번지게 하라”고 하여, ‘전주민의 자력갱생 혁명정신 체득화’에 주력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계적 추세와 먼 앞날을 내다보며 자기식의 과학적이고 독특한 기업전략, 경영전략을 내세우고 완강하게 추진해나가야 한다”며, 외부 추세에 민감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더 나아가 “첨단과학기술연구와 도입에 선차적 힘을 넣어 시대의 발전수준, 인민의 자향과 요구가 비낀 명제품, 명상품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 대중이 우리것을 선호하고 즐겨 찾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사설의 이중적 모호성은 80일전투 현장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80일전투의 ‘돌격전, 철야전, 전격전’을 주장하면서 전투의 전(全) 과정을 “주체적 힘, 내적 잠재력을 강화하는 데로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병영식 “자력갱생 혁명정신 체득화”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이윤을 위한 생산’을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로 비난하면서 ‘사용을 위한 생산’으로 바꿀 것을 주장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용’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할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생산을 관리하는 당 관료와 수령이 독점하고 근로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사용’만 허용했습니다. 북한의 인민경제는 국제적 표준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구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목표 부실’을 숨기기 위해 ‘자력갱생 혁명정신’이라는 사상적 억압구호를 앞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자력갱생노선이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①북한의 계획당국이 “몇 년까지 개인소득 3000불에 해당하는 ‘부유한 소강사회 실현”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방법을 제시하지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80일전투의 목표가 “제8차 당대회를 빛나는 성과로 맞이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대목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②병영식 노력동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의사가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당 정치국회의에서 몇몇 사람이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합니다. 그리고 ③목적지상주의로 인해 목적이 어떻게 성취되고 얼마 만큼의 비용이 드는 지에 대해서는 실천적 계산이 결여돼 있습니다. 전주민이 80일 동안 돌격전, 철야전, 전격전을 전개한다는 사실만 강조할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력갱생 혁명정신 체득화’는 실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중석: 최근 북한이 대내외 선전매체를 동원해 문제투성이인 ‘자력갱생 혁명정신’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 김정은 정권은 미북하노이회담이 결렬(2019.2)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문제를 자력으로 풀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자력갱생을 부쩍 강조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력에 맞서 자체 힘으로 체제를 유지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겠다는 의지이자 수단으로 ‘자력갱생’을 앞세운 것입니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자력갱생 혁명정신’ 강조는 ①대내적으로, 핵보유정책에 대한 전주민들의 일사불란한 지지와 결사옹위전을 이끌어 내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②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정권교체기 차기정부 인사그룹에 핵보유 의지가 변함없다는 사실을 전달해보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미국 차기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가 세계평화와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유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핵이 북한에 그 어떤 실익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이 이런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핵보유를 위해 경제발전을 희생시키고 80일전투로 노예적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에게 ‘자력갱생 혁명정신’ 무장을 강요하는 것은 비난 받을 만한 비인도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중석: 지난 한 달 동안 80일전투에서 “충성의 돌격전, 치열한 철야전, 과감한 전격전”으로 내몰려, 극한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이번 노동신문의 ‘자력갱생 혁명정신’ 강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의 ‘자력갱생노선’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북한체제 전(全)부문에 적용되는 ‘체제노선’으로 격상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노동신문은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을 ‘혁명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자력갱생노선이 특정 기간을 설정하여 추진하는 적극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노선이 아니라, 체제유지를 위한 방어적이고 수세적이며, 기약이 없는 ‘노선’이라는 점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계획은 기간도 끝나기 전에 실패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 해인 올해 강제 노력동원운동인 80일전투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독재권력의 사상적 억압수단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는 ‘자력갱생 혁명정신’ 무장 강요에 회의만 느낄 것입니다.

오중석: 네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