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농업근로자 ‘내년 농사차비에 진력’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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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11월 23일자 3면에 수록된 “다음해 농사차비를 빈틈없이 갖추자”라는 사설입니다. 이 사설은 “농업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는 것”이라며, “올해 많은 단위에서 알곡증산과 다수확을 거둔것에 자만하지 말고, 농사에 최대의 힘을 집중하여 농업생산을 더 늘려나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농업근로자들은 “쌀로써 당을 받들자, 쌀로써 우리 혁명을 보위하자”라는 애국의 구호와 신념의 구호를 높이 추켜들고 농사차비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에게 ①기본적으로 우량품종 종자를 준비하고 ②질좋은 거름을 많이 생산하여 지력을 높이며 ③양수기 수리정비, 물길•저수지•저류지 건설, 우물파기 등 물확보사업을 전개하고 ④유실된 농업토지를 환원복구하며 ⑤뜨락또르부속품공장과 연결농기계공장의 생산보장, 농기계와 농기구수리정비 등 농산(農産)작업의 기계화비중을 높이는 사업을 전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에게 알곡생산증대를 위해 필요한 준비사항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제시하면서도 종자준비와 농기계 및 기구수리정비, 유기질비료의 충분한 생산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관련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사설은 자기단위의 지대적 특성에 맞는 우량품종들을 적극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에 선차적인 침을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자보관관리도 잘해 귀중한 종자가 한알이라도 허실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농산(農産)작업의 기계화비중을 높이는 사업은 농업생산을 비약적으로 늘이기 위한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농장마다 자체 수리기지를 꾸려 농기계수리정비를 다그치라는 주문까지 했습니다. 수령들은 “거름더미는 곧 쌀더미”라고 했다며, 질좋은 거름을 생산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이번 사설이 북한의 농업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지대특성에 맞는 우량품종을 개발하고, 지력을 향상시키며, 기계농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은 일응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의 수준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우량종자 개량이나 첨단농기계 및 기구생산은 농업선진국과의 교류와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농업근로자들에게, 올해 생산성과에 조금도 자만하지 말고, 내년도 농사차비에 잡도리를 단단히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쌀생산 부족이 마치 농업근로자들의 생산 의지와 준비 부족 탓으로 돌리고 있는 데요, 북한의 ‘쌀 생산과 공급 실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의 경작지는 논(畓)이 30%이고 밭(田)이 70%를 차지합니다. 쌀을 생산할 수 있는 논이 절대적으로 적습니다. 제때에 비료도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볍씨를 뿌려 모로 키우기 위해서는 비닐과 디젤유가 필요한 데, 이런 자재들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의욕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협동농장 책임자는 국가계획목표량을 하달받고 목표달성을 못할 경우 해임 또는 철직되어 일반노동자로 전락됩니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축소된 할당량을 받으려는 관행이 만연해 있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알곡생산 만년부족은 사회주의농업체제 자체가 안고 있는 중앙명령계획의 구조적 문제와 주체농법의 후진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쌀은 대외무역을 통해 공급해야 할 것이며, 농업근로자들에게 터무니 없는 책임을 더 이상 부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아직 올해 추수사업이 완료되지 않았고, 역대급 태풍과 폭우로 큰 고충을 겪고 있는 농업근로자들에게 “쌀로써 당을 받들자”라며 당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북한 통치집단이 농업근로자들의 ‘내년 농사차비’를 닦달하는 이유와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북한 통치집단은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전대미문의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팽배는 공식이데올로기와 사상, 규범을 부정하는 이른바 ‘이차의식’의 발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 통치집단은 ‘이차의식’이 ‘지역적 연대’와 함께 ‘집단적 저항’으로 발전하게 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북한 통치집단은 북한 주민들의 ‘이차의식’ 발현을 막기 위해 국가와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지금은 제국주의시대나 전시(戰時)가 아님에도 ‘항일유격대식 투쟁방식’과 ‘50년대 투쟁방식’을 외치고, 백두산혁명전적지 답사행군을 조직하는 행태들이 그 좋은 예들 입니다. 한 겨울, 농업근로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전방위 ‘농사차비 몰이’는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이념적 이탈을 차단해보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내년 농사의 풍요로운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농업근로자들뿐만 아니라, 나라의 모든 공민이 농업전선에 나서야한다며 전주민의 농업생산투쟁 첨여를 촉구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때 이른 동원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 통치집단은 경제난 이후 “쌀이 곧 당이요, 혁명”이라는 구호를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실질적인 농업개혁에 발벗고 나선 적이 없습니다.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을 축으로하는 사회주의집단영농은 ‘필요에 의한 분배’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붙잡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함으로써 국제제재를 해소하고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경제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쌀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령의 중앙명령, 밀식과 다락밭개간으로 상징되는 ‘주체농업정책’을 자발적으로 환영하고 나설 주민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중석: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