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 우상화 절정으로 치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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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10월 18일자 3면에 수록된 ‘절세의 영웅 우리의 장군’이라는 정론입니다. 이 정론은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을 계기로 김정은에 대한 개인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말을 타고 흰 눈을 맞으며 백두산에 오른 일을 두고 “백두산이 하늘에 알려 이해의 첫 눈을 하얀 눈보라로 뿌려드리었고, 쾌청한 산정의 절경을 펼쳐드리었다”며 백두산이 마치 김정은을 위해 신비로운 조화라도 부린 양 선전했습니다.

오중석: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백두산을 독재정권 창출과 김씨 일가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는 대중조작(mass manipulation)의 핵심수단으로 이용해왔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김정은 정권이 대(代)를 이어 ‘백두산 팔기’에 나섰다는 것인데요. 관련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정론은 북한 주민들에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혁명의 성산’으로 각인돼 있는 백두산이 인간인 김정은을 높이 우러러 보고 있다는 식으로 김정은 지도자상을 조작해내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른 날을 두고 “백두산이 자기의 연륜에 자랑스럽게 기록을 새긴 날”이라고 선전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주변의 산천이 김정은의 등정을 감읍해 하는 양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백두산을 “지구의 가장 큰 대륙이 시작되는 첫머리에서 태평양을 발 밑에 딛고, 동방의 하늘을 머리에 떠 이고 선 세계의 최고봉”이라고 기술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김정은의 지도자상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리고 “백두산정에 천하제일명마를 타고 오른 김정은의 영상은 세계절정에 선 현세기 최강의 영수, 위대한 태양의 모습이었다”라고 하여 김정은을 신격화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북한이 한민족의 주산(主山)으로 한민족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명산인 백두산을 김정은 개인 우상화와 신격화의 도구로 악용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지 않은 훗날 역사의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중석: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개인우상화와 김씨 일가 가문 우상화를 위해 백두산을 끊임 없이 이용해왔습니다. 역대 북한 정권이 백두산을 대중조작에 어떻게 악용해왔는지 말씀해 주실까요?

이현웅: 김일성은 북한에서 독재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백두산을 선택했습니다. 백두산은 자신의 과거 경력을 부풀려 항일혁명투사로, 조선의 해방자로 조작하기 적합한 공간이었습니다. 일제시기 만주지역에서 마적(馬賊)과 유사한 활동경력 밖에 없던 김일성은 1인 독재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거 경력을 화려하게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한 것으로 세탁해야 했습니다. 북한이 백두 밀영을 조작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거점이자 김정일이 태어난 곳으로 선전하고 있는 백두 밀영은 김일성이 일방적으로 지정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백두 밀영 위 바위에 새겨진 ‘정일봉’이라 새겨진 대형 글씨체는 일제시대 필체가 아닌 것만 봐도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백두 밀영은 김일성은 물론 북한의 빨치산 출신 그 어느 누구도 활동했던 장소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백두혈통의 독재정권 세습 논리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이용한 상징조작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김정은은 대규모 도발과 숙청 및 공포정치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백두산을 등정했습니다. 김정은이 개정, 보강한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는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주체의 혁명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김정은 세습독재권력 강화를 위한 백두산 팔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오중석: 북한이 김정은의 백마 탄 백두산 등정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이유와 그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이번 정론은 김정은의 백마 탄 백두산 등정을 김정은 우상화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백두의 칼 바람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①먼저 백두의 칼 바람 정신은 국제사회의 전대미문의 제재압박을 짓 뭉개 버렸다고 선전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가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제재조치를 김정은을 정점으로 한 내부 단결을 통해 극복해보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②뿐만 아니라 백두의 칼 바람은 혁명의 배신자, 변절자들에게 철추를 내리는 날카로운 바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북한 통치엘리트 층에서 확산되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반감과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불신이 체제위협수준으로 치닫는 것을 차단해보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③ 특히 “무적의 명장과 영웅호걸들에게 준마는 그 행적과 무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며, 김정은이 백마를 탄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김정은을 단군과 동명 그리고 김일성과 같은 태양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런 우상화 선전은 신화적 인물들의 신비로움과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등에 업고 혈통세습과 독재권력을 합리화시켜보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오중석: 북한은 김정은의 이번 백두산 등정과 관련한 우상화 기사를 노동신문뿐만 아니라 여타 관영매체를 총동원하여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가 대내외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은 미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은 김정은을 김일성과 김정일로 대(代)를 이어 오는 혁명적 영웅 내지는 민족적 영웅 만들기 작업의 일환입니다. 혁명적 영웅 만들기가 대내 선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라면, 민족적 영웅 만들기는 대외 선전에 방점이 찍힌 것입니다. 이번 정론은 김정은이 지난 8년간 주력해온 핵무기 개발과 핵 무력 고도화 책동을,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북한 정권 창건, 김정일의 선군 정치를 통한 절체절명의 체제위기 극복과 같은 대등한 수준의 업적으로 미화함으로써 김정은을 초인적인 영웅으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도자 영웅 만들기’는 과거 전체주의 파쇼독재국가나 사회주의독재국가에서 독재권력유지를 위해 행한 선전선동 술책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이런 고답적인 선전책동을 활용하는 나라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들의 백마 탄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과 관련한 일사불란한 보도는 대내외 독자들에게 북한이 비정상적인 나라라는 사실과 비핵화 약속이 거짓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현웅: 오중석: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