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일 사망 8주기 계기 ‘혁명업적’ 선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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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12월 17일자 1면에 수록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가자”라는 사설입니다. 이 사설은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17일) 8주기를 맞아 김정일이 생전에 수행했던 과업들을 불멸의 혁명업적으로 칭송하면서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은 김정일이 유훈으로 남긴 ‘천하제일강국과 인민의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총매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오중석: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과거 지도자의 업적을 성공일변도로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좀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하고 천착하여 긍정적인 교훈과 부정적인 교훈을 모두 도출해 내 국가운영에 참고합니다. 이번 사설은 이런 상식을 벗어나 김정일의 생전과업을 절대불변의 가치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사설은 특히 “김정일의 혁명생애와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혁명업적으로는 “김일성주의 정립 체계화, 정치사상적 위력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 수령의 당건설, 인민군대의 정예화 및 강군화, 국방공업 강화로 무적필승의 혁명강군 마련, 자립경제 위력강화”를 적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체계화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주체사상관련 업적들은 고 황장엽 전 비서와 주체사상연구소 연구원들의 업적입니다. 수령의 당 건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폐기해야 할 적폐중의 적폐입니다.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당-국가 체제이며 당이 인민을 대표하여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북한이 당(黨)의 영도를 수령(首領)의 영도로 바꾸고, 당을 수령의 독재수단으로 만든 것은 당 독재를 수령 1인 독재로 변질시킨 것으로, 북한체제의 불행한 역사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국방공업을 강화하여 무적필승의 혁명강군을 추구한 것도 북한의 장기적인 균형발전 측면에서 볼때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 국방공업보다는 경공업을 살리고 활성화 시켰어야 옳았습니다. 그랬다면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삼백만명이 아사(餓死)하는 역사적 불행은 없었을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김정일의 생전과업을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때는 찬양하고 칭송할만한 업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 사망 주기때마다 김정일 업적을 찬양하기에 바쁩니다. 이런 북한의 행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현웅: 북한은 조선노동당이 수령의 권력장악과 권력행사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수령 한 사람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나라로 변질됐습니다. 당이 수령의 시녀가 됨으로써 사상과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권한은 수령 한 사람에게 집중됐습니다. 당과 국가기관은 수령이 내린 결정을 집행하고 감독하는 기구로 그 위상이 격하된 것입니다. 또한 수령은 절대적이고 무오류적인 존재로 되기 때문에 수령이 결정하고 지시한 사항은 실패할 수 없으며 그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성공적인 것으로 포장돼 발표되어야만 합니다. 북한에서 수령의 역할은 사상의 창시자, 사회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지식의 독점자입니다. 여기에다 수령은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전지자’,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전능자’라는 신적 인물로 격상돼 숭배대상으로 전환됩니다. 이런 연유로 ‘수령’ 김정일이 행한 모든 일은 성공적인 업적으로 둔갑하게 되며, 세습독재권력의 수중에 갇혀 있는 매체들은 찬양과 칭송 일변도의 보도에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수령제가 반드시 폐기 되어야 합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에서는 김정일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사상이론적 업적’을 꼽았습니다. 이처럼 북한 통치자에게 사상이론적 업적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김정은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사상이론적 업적이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사상이론적 업적이 빈약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수령만이 사상의 창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은 단지 수령이 제시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수령이 창시한 사상을 해석하고 전파하는 권한만 있습니다. 하지만 사상의 창시는 깊은 철학적 통찰력과 창조적 지식이 필요하며 지난한 과정이 요구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주의는 이 두 사람이 창시한 것이 아니라 황장엽을 비롯한 북한의 초창기 유학파 이데올로기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들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가로챈 것입니다. 김일성 시대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철학과 사상을 전공한 연구자들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수행됐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에 주체사상 창시자,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귀순한 이후 많은 사상분야 엘리트들이 숙청됨으로써 이들의 역할과 위치는 급속하게 위축됐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능력있는 사상이론연구 인력이 없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 시대에 사상이론 업적이 빈약한 이유입니다.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체계화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에 이름만 새로 덧 붙인 것입니다. 김정은의 새로운 사상이론적 업적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김정일의 유훈인 “천하제일강국과 이상사회 건설”을 “더 없이 성스러운 과업”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은 이 과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 피와 땀을 바쳐 나가야 한다고 선전했습니다. 이런 선전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이현웅: 북한은 체제 목표설정에서 인간본성의 합리성과 역사적 진실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미래의 이상사회를 마치 실현 가능한 목표 인양 설정해 놓고, 인간 본성과 역사적 경험으로 실증할 수 없는 실현 방식을 진리라고 억지 주장하면서 전 주민을 한 길로 몰아부쳤기 때문입니다. 북한 역시 대를 이어, 실현 불가능한 ‘천하제일강국과 이상사회 건설’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목표와 수단간의 괴리가 얼마나 크고, 허황된 주장인지를 독재정권 3대(代)를 거치면서 이미 깨달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천하제일강국과 이상사회 건설’이 아니라, 주민들의 실질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객관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입니다. 경제적 삶의 안정과 기본적인 인권의 충족이 그것입니다. 이번 사설의 주장은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중석: 위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