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노동신문 6월 11일자 6면에 수록된 “자주성에 기초한 공정한 국제관계를 수립하여야 한다”라는 ‘정세론 해설’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많은 나라들이 침략과 전쟁, 지배와 예속이 없는 세계, 자주권과 평등이 보장되는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고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공정한 국제관계 수립을 위하여 떨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자주성을 지키고 자주성을 서로 존중할 때 공정한 국제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가장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외정책 기조가 ‘자주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중석: 북한은 당 규약 전문과 헌법 제17조에서 대외정책의 기본이념이자 외교활동의 원칙을 “자주, 평화, 친선”으로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의 ‘자주성’은 첫 번째 대외정책 이념인 ‘자주’를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기사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6차 대회에서 “자주, 친선, 평화”를 대외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천명한 이래 지금까지 이를 외교활동의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자주성’은 공정한 국제관계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자주성을 지키고 자주성을 서로 존중할 때 공정한 국제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친선적인 새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교시’를 인용하면서 공정한 국제관계수립의 ‘공통적인 자막대기’는 ‘자주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고 존엄이며 자주독립국가의 상징으로, 각 나라들의 ‘자주성’이 보장될 때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 평등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째, ‘자주성’은 공정한 국제관계수립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정권은 있어도 “자주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남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면, 진정한 자주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대외관계에서 자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도 없으며, 나중엔 불평등한 주종관계에 얽매이게 되며 나라와 민족을 망쳐먹게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 만큼 독자적인 판단과 결심에 따라 대외정책을 세우고 일관성과 원칙성을 가지고 관철해나가는 입장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국제문제를 “자주성을 척도로 평가하고 처리하는 것”이 당과 국가의 정책이자 활동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비록 지난날에 적대관계에 있었다 하더라도 자주권을 인정하고 우호적으로 나온다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관계개선과 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이 북한의 자세이며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셋째, 모든 나라는 자기에게 알맞은 사상과 제도, 이념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므로 그 누구도 이에 대해 간섭하거나 시비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을 깔보고 지배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어리석은 망상으로 자주성의 시대에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들 사이의 참혹한 전쟁과 분쟁들은 모두 일방이 타방의 자주성을 존중하지 않고 말살하려는 데로부터 생산된 것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중석: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국제관계와 관련된 ‘김정일의 교시’까지 언급하며 ‘자주, 평화, 친선’이라는 대외정책 이념을 선전하고, 이중에서도 특히 ‘자주’ 이념을 강조하고 나온 배경과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먼저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대내 정치적 메시지입니다. 한국, 중국, 미국과 갑작스런 정상회담개최 등 급격한 대외적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현재의 대외활동이 ‘선대 수령’들이 해온 대외정책의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선전함으로써 대내적인 정권안전을 담보하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다음은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놓고 미국과의 장기적인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국에 대해 ‘체제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 달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에게도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오중석: 북한은 ‘자주’라는 대외정책 이념에 대해 일반적인 해석과는 달리, “국제관계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북한)혁명의 이익’에서 출발하여 풀어가는 것”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평화’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전쟁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서 만 수호할 수 있다”며 ‘군사동맹해체, 해외주둔군 철수, 비핵지대창설’을 구체적인 대외정책과제로 추진해왔습니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북한의 대외정책 추진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미칠 파장과 문제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은 스스로 결정한 ‘이념과 정책’은 물론, 다른 나라들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에 서명한 문건의 경우에도 핵심 ‘용어’들을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갈등을 조장하여 관계진전을 원점으로 돌려 놓곤 했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 용어는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됩니다. 북한이 국제관계 또는 나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이런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외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국가이익’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이익’은 ‘생존과 번영’을 최우선시 하는 데요. 북한의 ‘자주’ 외교이념에는 ‘생존과 번영’ 이외에 ‘혁명운동으로서 외교’라는 개념이 ‘착종’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대외선전매체에서 “반제자주, 민족적 계급적 해방, 세계 사회주의운동”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북한이 ‘자주’라는 외교이념에서 ‘혁명운동’의 의미를 거세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대외활동은 어떤 경우라도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노동당의 국제부나 외무성 일군들이 대외정책을 구상하고 입안하는 단계에서부터 일반적인 ‘국가이익’ 실현과 ‘국제혁명역량 강화’라는 이중적 목표를 전제하게 됨으로써 ‘실효성 있는 대외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1964년 2월 2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3대 혁명역량강화노선’은 현재의 북한 정치경제상황에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노선입니다. 지구상의 사회주의국가들이 모두 체제전환을 이룩한 상황에서 ‘국제사회주의역량강화’라는 외교 목표는 북한에게 더 이상 불가능한 과제로, 체제보장의 이면에서 그 잔영마저 씻어내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 위기는 물론, 외교적 고립만 자초할 것입니다.
오중석: 냉전시대 사회주의 국가들의 외교 노선이 ‘혁명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올해로 탈냉전이 선언(1989년 몰타)이 있은 지 29년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자주’ 외교 이념에 대한 ‘의미’를 현 시대에 맞게 새롭게 규정하고 체제안정과 발전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 위원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